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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 맛과 향으로 채우는 그리움, 영화가 건네는 요리의 위로

‘흑백 요리사’ 같은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가져오는 셰프에 대한 폭발적 인기는 근래에도 지속중이다.

아멜리 보냉 감독의 영화 ‘리브 원데이’. 출처 네이버

‘흑백 요리사’ 같은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가져오는 셰프에 대한 폭발적 인기는 근래에도 지속중이다. 그간 주부를 위한 프로그램이었던 요리 콘텐츠는 21C 들어 웰빙(well-being) 아이템의 일환으로 자리를 잡다가 2012년 ‘마스터 셰프’들의 서바이벌 콘텐츠가 만들어지면서 셰프들의 유명세를 높이고 대중화를 꾀하는 ‘셰프테이너’ 현상으로 나아가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쿡방이나 먹방이 예능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연예인들을 동원한 요리 참여 프로그램이 늘어나자 그동안 요리와는 관계없다 여기던 남성층에 ‘요섹남’(요리하는 멋진―섹시한― 남성) 트렌드를 불러일으켰다.

대체 왜 그러한 시대변화를 가져왔을까? 현재의 미디어가 오감 중 미각과 후각 외 식감이라는 촉각까지 구현할 수 없는 제한점을 뛰어넘어 시각과 청각만으로 트렌드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많은 사람들은 1인가구의 증가를 이유로 든다. 부엌을 가진 가구수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배달음식의 확산, 배달음식에 물린 손쉬운 요리법 추구, 집밥에 대한 그리움, 대리만족 등의 이유로 요리 프로그램이 늘었다는 것. 2025년 말, 대한민국의 1인 가구는 36.1%까지 증가했다. 초고령화 사회를 이루는 70세 이상 여성(29%)이 가장 많고 29세 이하(17.8%)와 30대(17.4%), 60대(17.6%)가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절반은 ‘정서적 고립’을 느끼고 있으며 1인가구의 2/3가 여가를 ‘동영상 콘텐츠 시청’으로 보내고 있다 한다.

이 콘텐츠의 대종을 이루는 쿡방은 인간의 3대 본능 중 하나인 식욕만을 자극하지 않는다. 현대인에게 결핍되기 쉬운 정서적 허기를 채우는 행위이기도 해서다. 호모 코쿠엔스(요리하는 인간)는 사회적 본능이다. 요리를 해서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식구(食口)를 통해 공동체의 신뢰를 쌓고 사회성을 성장시키며 맛과 향, 시각적 미학을 통해 정서적 만족감을 나누는 문화이어왔으므로, 쿡방은 호모 코쿠엔스의 원초적 향수를 자극한 것이 된다. 요리 서바이벌 우승 셰프에 대한 각광은 이러한 욕구와 맞물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요리의 본고장인만큼 프랑스에서의 요리 서바이벌 우승자에 대한 인기는 적잖이 높을 것이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탑 셰프’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스타 셰프가 된 세실(배우 줄리엣 아르마네)은 자신의 이름을 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준비중이다. 오픈이 코앞인데도 신메뉴 고민이 여의치 않고 계획에 없는 임신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와중인데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연락까지 받는다. 레스토랑 오픈을 함께 준비중인 남자친구 소피앙(배우 듀피크 잘랍)의 권유로 세실은 잠시 고향을 다녀오기로 한다.

고향에 도착한 그녀를 맞이한 것은 심장 쇼크 후에도 요양병원보다는 휴게소 식당 일을 고집하는 고집불통 아버지(배우 프랑수아 롤랭)와 어머니(배우 도미니크 블랑). 아버지의 못 말리는 셰프 본능은 세실과 어머니의 가십 거리다. 세실은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첫사랑 라파엘 (배우 바스치알 부이용)을 만나 옛 추억에 잠긴다. 남자들도 촉이 있나 보다. 뒤이어 내려온 소피앙은 라파엘과 신경전을 벌이다 한 대 갈기고 만다.

아멜리 보냉 감독의 영화 ‘리브 원데이’. 출처 네이버

“누가 지금까지 마요네이즈로 샐러드를 만들어요” 해가며 파리의 주방보다 더 대책불가인 부모님의 주방에서 세실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아버지의 진심을 들여다보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 주방을 배경으로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자랐는지를, 오늘의 스타 셰프의 기반이 그곳이었고 가족이었음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영화는 스토리의 결절이나 전환을 뮤지컬로 풀어낸다. 감독의 첫 장편이니만큼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이를 무마해내는 그녀만의 신선함이 있었다. 인물의 심리나 인물 간의 갈등이 심각해질 만하면 뮤지컬 시퀀스로 중화를 시켜 다음 시퀀스와 연계를 해감으로써 지루함이나 단조로움을 밀어낼 수 있는 수단으로써 차용하고 있었다. 주역을 맡은 줄리엣 아르마네가 싱어송라이터라서 뮤지컬 신을 더욱 신선하게 만든 것도 있었다.

스크린 위에 맛과 향을 그리는 요리 영화라 일컫는 〈카모메 식당〉(2007), 〈아메리칸 셰프〉(2014), 〈리틀 포레스트〉(2018) 등은 음식을 정서적 허기를 채우는 수단뿐 아니라 관계의 공백을 채우는 강한 소통이자 힐링의 매개체임을 보여준다. 필자에게는 개인적으로 〈3일의 휴가〉(2023)가 가장 강력했다. 이 영화에서 음식과 요리는 현세와 내세를 이어주는 사모곡이자 다시 살아갈 위로였으므로.

97세인 필자의 어머니는 손맛이 좋은 분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칭찬해 마지않았던 여름반찬 고추무름을 다음에 가면 상세히 물어봐야겠다. 많은 기억이 사라져버렸지만, 기억을 해내주기를 기대하면서.

아멜리 보냉 감독의 영화 ‘리브 원데이’.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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