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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 디스토피아의 우화, 편견과 혐오가 낳은 사회적 낙인

독창적 시네아스트(Cineaste)로 불리는 박세영 감독이 실험적 독립영화 〈지느러미〉를 내놓았다. 독일과 카타르가 함께 참여한 글로벌 작품인만큼 해외 영화제에 먼저 소개되고 뒤늦게 국내 개봉하게 된 작품이다.

박세영 감독의 영화 ‘지느러미’ 출처 네이버

독창적 시네아스트(Cineaste)로 불리는 박세영 감독이 실험적 독립영화 〈지느러미〉를 내놓았다. 독일과 카타르가 함께 참여한 글로벌 작품인만큼 해외 영화제에 먼저 소개되고 뒤늦게 국내 개봉하게 된 작품이다.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검은 빗방울이 입 안으로 떨어졌다. 툭! 툭! 툭!”

절망적인 목소리의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배경은 어둡고도 섬뜩한 검붉은 색으로 덮여 있고 건물은 폐건물인 듯 허름하기 짝이 없다. 바닷가 돌들과 진흙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오물과도 같다. 더러워진 공기와 수질오염으로 인물들의 얼굴은 더럽고 머리는 떡져 있다. 전광판에 ‘더러운 얼굴은 애국’이라는 표어가 흘러가는 도시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습하며 매캐하고 비릿하다.

매크로 렌즈로 접사촬영한 전경은 기괴하기 그지없다. 스크린에 맺힌 미세한 입자들이 시각적 촉각을 자극시킨다. 그로테스크한 접근이라 예민한 관객은 촉감까지 자극받아 소스라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카메라는 집요하게 비주얼에 집착한다. 실내 불빛은 값싼 장식전구가 토해내는 형광빛을 카메라가 한껏 일그러뜨려 놓아 생으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트로트가 흘러나오는데 늘어질 대로 늘어진 테이프마냥 처진 박자 속에 비브라토가 귀에 거슬린다. 이른바 디스토피아를 구현한 미장센이다.

통일 한국의 근미래. 환경오염은 세상을 디스토피아로 변모시켜놓았다.

독백이 이어진다. “푸른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처음 마주한 검은 물에는 쓴 맛이 느껴졌다. 밤새 기침을 했다.”

오염된 바다를 막기 위해 4000㎞에 달하는 장벽이 세워져 있다. 유전적 변화로 발가락이 길어지고 독성 있는 지느러미(우리가 알고 있는 해양동물의 지느러미라 하기에는 너무도 흉측한 썩은 족발 덩어리로 보인다)가 생겨난 변이자를 사람들은 ‘오메가’라 부르며 전염 위험군으로 간주하고 자신들과 분리시킨다. 이들을 장벽 밖 바다청소에 투입, 이동과 노동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노동착취 존재로 전락시켜놓았다.

박세영 감독의 영화 ‘지느러미’ 출처 네이버

이들을 관리하는 ‘대한 자유 청년 공무원’은 일제히 노란 잠바를 입고 구호를 외친다. ‘더러운 얼굴이 애국의 상징’이라서 공무원들의 얼굴은 모두 검정칠을 하고 있다. 국가 전반에 스며 있는 과도한 성취주의와 성과주의 아래 개성과 권리를 도외시하고 노력이라는 피상적 목표만 남은 직업군이다.

지느러미는 사회적 낙인이다. 이 낯설고 기괴한 신체부위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가른다. 오메가들은 지느러미를 숨기고, 인간들은 지느러미를 쫓는다.

낙인 찍힌 오메가들에게 오염된 바다는 어쩌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생존수단인 셈이다. 붉은 노을이 드리워진 오염된 바다로 오메가들이 걸어 들어가는 신은 롱숏이다. 이른바 카메라의 거리두기이자 오메가들을 부품으로 간주하는 냉정한 사회적 시각이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비극성을 극대화하려는 감독의 의도일 것이다. 이는 곧 우리 사회가 소수 약자를 롱숏으로 바라보는 입장인지를 짚어보게 한다.

국가의 반복 주입식 선전(propaganda)으로 학습된 사람들은 오메가를 “다 죽여” 하며 극혐오한다. 사회주의가 흡수된 통일한국의 모습이라니…. 국가 시스템이 인간을 어떻게 비인간화하고 도구화하는지 영화는 사회적 알레고리를 점차 확장해 나간다.

어느날 오메가 한 명이 통제구역을 벗어나자 사회 전체가 술렁인다. 공무원인 수진(배우 김푸름)은 낚시터 직원 미아(배우 배우 연예지)를 의심하던 터라 미아를 주목하고 미아를 찾아온 오메가(배우 고우)를 색출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알아간 것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극혐하는 오메가가 그렇게까지 극혐할 만했는가?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미 명칭과 기호만 다를 뿐 오메가들을 시시각각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오메가가 갖고 있는 지느러미는 타인을 향해 끝없이 자라나는 인간의 편견을 상징화한 것이라서다. 편견이 낳은 사회적 낙인은 혐오로 발전한다. 오메가가 소멸하면 또다른 이름의 오메가가 등장한다. 이 굴레는 점차 확대되어 사회‘는 더 욕망하고 더 혐오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굴레야말로 낙인과 혐오를 재생산해가며 사회를 굴러가게 만드는 동력이라 말하기도 한다. 유토피아에 선순환이 있듯 디스토피아에 악순환은 필연이다.

감독은 사회가 어떻게 마이너를 만들어내는지, 루저·아웃사이더를 만들어내고 배제하는지 한국사회를 향한 차별과 혐오의 우화를 담았다. 영화가 갖는 시각성에 집중하고 있어서 잠시 눈을 감거나 한눈을 팔다간 놓칠 수 있을 만큼 상징과 은유를 앞세운 영화라 불편한 점이 다소 있었으나 젊은 감독의 도전적 실험정신 만큼은 높이 사고 싶다.

박세영 감독의 영화 ‘지느러미’ 포스터.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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