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혁명의 시대, 사피엔스의 마지막 항해-8편
[파이낸셜뉴스] "계산기는 절대 학교에 가져오지 마라. 발견 즉시 압수다."
1980년을 전후해, 손바닥만 한 크기에 숫자 버튼이 촘촘히 박힌 작은 플라스틱 기계가 교실 책상 위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기계에 기대기 시작하면 머리가 물러진다." "구구단도 외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미국 전국수학교사협회는 계산기 사용에 반대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고, 학부모들은 학교로 전화를 걸어 교육의 방향을 되물었다.
1972년 출시된 세계 최초의 개인용 전자 계산기 카시오 미니. 전자계산기는 인간의 ‘이해’나 ‘통찰’ 없이도 정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적으로 인식시킨 기계였다. 내부에 담긴 것은 지능이 아니라 계산하는 규칙을 담은 시스템이었고, 그것은 훗날 체스판 위에서 인간을 압도한 ‘딥블루’의 원형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수학 실력이란 종이와 연필만으로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숫자를 계산할 수 있는가를 뜻했다. 연산 능력이 곧 지능의 척도였다. 그런 인식 속에서 계산기는 학습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학생들의 사고 과정을 건너뛰게 만드는 위험한 장치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당시의 우려가 어느 정도는 맞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마트 계산대 앞에서 간단한 덧셈 뺄셈만 마주해도 머릿속이 하얗게 굳어버리기 일쑤다. 가족의 전화번호조차 가물가물한 것이 현실이다. 단순한 사칙연산과 암기력이라는 잣대만 들이댄다면 우리의 뇌는 분명 과거보다 무뎌졌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더 되짚어볼 부분이 있다. 과연 이것을 인류 지능의 집단적 퇴화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대답은 단연코 아니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단순 연산이라는 중노동에서 해방된 순간 인류는 그 여분의 에너지를 이전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던 고차원의 사고 영역으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손으로 로그표를 뒤지고 미분 방정식을 계산하느라 밤을 새워야 했다면 아폴로 11호는 달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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