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영국 뉴캐슬의 바이커 주거단지(Byker Estate)를 걸으며 주택의 배치와 주변 공간을 눈여겨보았다. 도로변을 따라 길게 놓인 높은 공동주택의 남쪽으로 저층주택이 이어지고, 그 사이에는 보행로와 작은 외부공간들이 자리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주택의 배치뿐 아니라 주민들이 걷고, 쉬고, 이웃과 만나는 일상까지 고려한 공간계획이었다.
바이커는 1969년부터 건축가 랄프 어스킨(Ralph Erskine)이 설계에 참여한 공공주택 재개발사업이다. 낡은 노동자 주거지를 정비하면서 건축가는 동네의 기존 상점 건물을 주민과 설계안을 논의하는 장소로 활용했다. 주민들은 이곳을 찾아와 도면을 살펴보고 새집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었다. 기존 주택을 한꺼번에 철거하지 않고 구역을 나누어 공사를 진행한 것도 주민들이 가능한 한 익숙한 동네에 머물며 이웃과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집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도 지키려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전북에서 15만 명이 줄어든 10년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2015년 말 187만 명에 가까웠던 전북의 인구는 지난 9월 171만 6,229명으로 줄었다. 10여 년 사이 약 15만 명이 감소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인구를 늘리려 하지만, 전국적인 저출생과 고령화 속에서 모든 지역이 동시에 성장하기는 어렵다.
인구감소가 곧 주택 수요의 감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1·2인 가구의 증가로 전체 가구 수가 늘어날 수 있고, 노후주택의 대체나 주거 수준의 향상에 따른 수요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 공급의 규모와 위치는 인구뿐 아니라 가구구조의 변화, 기존 주택의 노후도와 공급 현황 등을 종합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주에서 추진 중인 주택 개발사업을 살펴보자.
우아동·호성동 일대에서는 약 7천 세대를 공급하는 전주역세권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감나무골 재개발사업(1,914세대)은 올해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기자촌(2,226세대)과 동양아파트 인근(654세대)에서도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효자주공(2,053세대)과 오성대우(418세대) 등에서는 재건축 절차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 여섯 사업의 계획 세대수를 합하면 1만 4천 세대 안팎이다. 그러나 사업마다 공급 시기가 다르고, 이 숫자가 실제로 늘어나는 주택 수를 뜻하지도 않는다. 기존 주택을 철거하고 다시 짓는 경우에는 사라진 주택을 빼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 ‘순증 주택(Net Additional Dwellings)’이다. 새로 지은 주택뿐 아니라 건물의 용도변경이나 분할로 늘어나거나 줄어든 주택, 철거로 사라진 주택까지 반영해 실제 증가량을 계산한다. 영국 잉글랜드에서는 이를 주택 공급의 주요 통계지표로 사용한다.
주택의 순증 규모를 파악했다면 이를 장래 수요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주택 수요가 발생하더라도 반드시 새로운 택지를 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시가지에서도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주택을 공급할 수 있고, 노후주택의 개보수를 통해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도 있다. 따라서 신규 택지 개발과 기존 시가지의 정비를 도시 전체의 주택 수요와 공급 여건 속에서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새집이 들어서면, 기존 동네는 어떻게 될까
주택을 설계하다 보면 건축설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마주한다. 집의 단열과 채광, 평면은 개선할 수 있지만 골목의 폭이나 동네의 주차 문제까지 바꾸기는 어렵다. 좋은 집 한 채가 지어진다고 주변 동네까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새 아파트를 선택하는 이유도 건물 자체의 품질에만 있지 않다. 편리한 주차장과 안전한 보행로, 놀이터와 녹지, 체계적인 관리가 함께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래된 주거지에서도 이러한 여건을 갖출 수는 없을까. 개별 주택의 개보수와 골목의 보행환경 개선, 공원과 놀이터의 확충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재개발 역시 낡은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러나 새 아파트가 들어서더라도 원래 살던 사람들이 높아진 주택 가격과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감나무골과 기자촌의 재개발이 완료된 뒤 기존 주민들은 얼마나 돌아올 수 있을까. 바이커가 주민들의 생활을 이어가려 했던 것처럼, 전주의 재개발에서도 주택 공급 규모뿐 아니라 기존 주민이 다시 입주할 수 있는 여건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택지를 개발하는 경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전주역세권에 계획된 약 7천 세대에는 누가 입주하게 될까. 다른 지역에서 이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주의 기존 동네에서 옮겨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 주거지에 몇 명이 입주하는지뿐 아니라 그들이 떠나온 동네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도 살펴야 한다. 새로운 주거지에 사람이 모이더라도 도시 전체의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 새로 만드는 도시와 이미 만들어진 도시
새로운 주거지를 조성하면 도로와 상하수도, 공원과 놀이터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도 함께 만들어진다. 반면 오래된 동네에는 여전히 좁은 골목과 부족한 주차공간, 아이들이 놀 만한 곳이 없는 주거지가 남아 있다. 기존 도로와 공공시설을 관리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곳에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부족한 시설을 채우고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다.
인구가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도시의 범위가 계속 넓어진다면 새로운 주거지의 시설을 유지하면서 오래된 동네를 개선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새로 개발하는 곳에 얼마나 투자할 것인지뿐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도시를 어떻게 가꾸어 갈 것인지도 함께 고민할 문제다.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는 주택이 몇 세대 공급되는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생활권마다 인구와 가구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주택의 신축과 멸실에 따른 실제 증가량은 얼마나 되는지, 공원과 놀이터 같은 생활시설은 어디에 부족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개발 이후 기존 주민이 얼마나 다시 입주했는지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도시개발의 성과를 새 건물의 수뿐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로도 살펴보자는 것이다.
바이커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집을 새로 지으면서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을 함께 생각했다는 점이다. 전북의 인구가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구가 늘지 않더라도 기존 주거환경을 개선할 방법은 있다. 생활권마다 부족한 공원과 놀이시설, 걷기 불편한 길을 살펴보고, 공공 유휴부지나 활용도가 낮은 공간을 찾아 작은 쉼터와 녹지로 바꿀 수도 있다. 개별 주택의 개보수와 골목의 보행환경 개선을 연계한다면 오래된 동네에서도 더욱 안전하고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다. 새로운 주거지를 조성하는 데 투자하는 만큼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개선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여 보면 어떨까. 도시는 더 커지지 않더라도, 더 좋은 곳이 될 수 있다.
/ 강미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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