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응민 기자] 바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생명체, 플랑크톤에서 시작된다. 플랑크톤은 단순히 작은 생물에 그치지 않는다. 광합성을 통해 바다에 산소를 공급하고, 수많은 어패류의 먹이가 되며, 거대한 바다의 탄소 순환을 주도하는 기초 에너지원이다.
만약 플랑크톤이 줄어들면 이를 먹고 사는 작은 물고기가 사라지고, 결국 최상위 포식자인 고래마저 굶어 죽는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거대한 고래가 바다를 호령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생존의 열쇠는 가장 낮은 곳의 미생물들이 쥐고 있는 셈이다.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를 흔들고 있는 정부발 '약가 인하'의 칼바람을 보면 이러한 생태계의 섭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보건당국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명분 아래, 기등재 의약품 재평가와 사후관리 등 전방위적인 약가 압박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비명에 가깝다. 이번 약가 인하의 칼날이 향하는 곳이 단순히 제약사의 이윤 주머니가 아니라, 우리 산업의 뿌리이자 기초 체력인 '생태계 하부 구조'를 직격하고 있는 까닭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중소 제약사와 바이오벤처는 생태계의 플랑크톤과 같은 존재들이다. 대형 제약사들이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글로벌 임상과 대규모 생산에 집중할 때, 이들은 대형 제약사가 미처 살피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메우고 기초 연구의 불씨를 지핀다.
특히 바이오벤처는 실패 확률이 높은 초기 단계의 혁신적 시도를 도맡으며 '신약 후보물질'이라는 영양분을 끊임없이 공급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K-제약바이오의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은 바로 이들 기초 생태계가 건강하게 살아 움직일 때만 작동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전방위적 약가 인하는 당장 기초 체력이 부족한 중소 업체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신약 개발의 꿈은 커녕, 당장 기존 제네릭 의약품의 수익성 악화로 영업이익률 보전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연구개발(R&D) 비용은 가장 먼저 삭감 대상이 되고, 자금난에 처한 벤처들은 신약 후보물질의 권리를 헐값에 넘기거나 아예 개발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게 될 것이다. 바다의 '플랑크톤'들이 말라 죽게 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그 다음 단계에서 '진짜 위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기초 생태계가 무너지면 그 충격은 시차를 두고 반드시 중견·대형 제약사로 전이된다. 대형 제약사가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유망한 기술과 파이프라인을 끊임없이 수혈받아야 한다.
하지만 플랑크톤인 벤처들의 씨가 마르면 기술 수출의 원천이 사라진다. 또한 중소 제약사들이 담당하던 위탁 생산(CMO) 기반이 흔들리면 산업 전반의 공급망 구조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고래가 아무리 힘이 세고 헤엄을 잘 쳐도, 먹이가 사라진 빈 바다에서 홀로 영생(永生)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의 약가 정책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낮춘다는 측면에서 일정한 정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정부 스스로가 '국가 전략 산업'이자 '제2의 반도체'로 치켜세운 분야다.
한쪽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신약 개발을 장려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산업의 원천이 되는 수익 구조를 파괴하는 모순된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눈앞의 재정 몇 푼을 아끼려다 '글로벌 제약 강국'이라는 국가적 비전의 엔진 자체를 꺼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기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산업 생태계는 단절된 개체들의 집합이 아니다. 영세 제약사의 매출 하나, 벤처의 실험실 불빛 하나가 모여 대형 제약사의 신약 신화가 탄생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하향식 약가 인하가 아니라, '플랑크톤'부터 '고래'까지 공존하며 성장의 과실을 나눌 수 있는 정교하고 지속 가능한 보상 체계다. 기초가 무너진 바다 위에 세워진 거대 제약 강국의 꿈은 결국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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