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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명승부에 재 뿌린 V리그 로컬 룰

경고’ 할 게 아니라 글로벌하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KOVO는 “다음 시즌 도입을 목표로 AI 비디오 판독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했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V리그의 명예와 팬의 신뢰를 위해 개혁이 시급하다.

[기자의 시각] 명승부에 재 뿌린 V리그 로컬 룰

지난 4일 V리그 남자부 챔피언 결정전 2차전 종료 후 비디오 판독 결과에 항의하는 필립 블랑(오른쪽) 현대캐피탈 감독을 헤난 달 조토 대한항공 감독이 말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대한항공의 우승으로 끝난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챔피언 결정전 5차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패장(敗將) 필립 블랑 현대캐피탈 감독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그는 흥분을 누른 목소리로 “대한항공에 축하를 건넨다”면서도 “2차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고 말했다.

2차전에선 비디오 판독 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현대캐피탈이 1점만 내면 승리하는 상황에서 넣은 서브의 인(in)·아웃(out) 여부를 가리는 비디오 판독 결과 아웃이 선언됐는데, 현대캐피탈은 납득하지 못했다. 거센 항의 끝에 재개된 경기에서 현대캐피탈은 역전패했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은 한참 동안 코트를 떠나지 않고 판정에 항의했다.

판정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 화면상 공이 선에 걸쳐 있어 국제 경기라면 인이 맞지만, 공이 바닥에 최대한 눌렸을 때 선을 모두 가려야 인으로 판독하는 한국만의 ‘로컬 룰’로는 아웃이 맞는다. 호크아이 기술을 활용하는 국제 경기와 달리 방송 중계 화면에 의존하는 국내 현실에 따른 판정이다. 그렇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였고, 직전에 비슷한 장면에선 인이 선언됐기에 현대캐피탈이 억울할 만했다. “분노를 에너지 삼아” 2패 후 2승으로 승부를 5차전까지 끌고 간 현대캐피탈의 투지도 눈부셨다.

하지만 이후 현대캐피탈 감독이 보여준 언행은 도가 지나쳤다. 그는 “연맹 총재(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와 심판이 같은 편 같다” “대한항공의 부끄러운 승리” “우리가 비공식 챔피언” 같은 험한 발언으로 여론전을 펼쳤다. 4차전 승리 후엔 손가락으로 ‘3승 1패’를 표시하며 실질 우승을 주장하는 등 감정적 대응에 치중했다. 양 팀 선수들의 명승부에 재를 뿌린 감정 싸움이라 안타까웠다. 우승 후 대한항공 베테랑 한선수는 “우리가 잘하고도 왜 웃음거리가 돼야 하나”라며 “이를 꽉 깨물었다”고 했고, 주장 정지석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로컬 룰’ 논란이 수년째 반복되는데도 국제 기준을 외면하는 V리그 판독 시스템의 낙후성이다. V리그는 올 시즌 역대 최다 관중(63만5461명)을 모으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선수 평균 연봉은 일본 리그의 2배, 최고 연봉(남자부 12억원)은 세계적인 배구 스타에 견줄 수준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판독 기술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국제 기준과 다른 구식 규정을 적용하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로컬’이 아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동네 규칙을 내세우며 감독에게 ‘엄중 경고’ 할 게 아니라 글로벌하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KOVO는 “다음 시즌 도입을 목표로 AI 비디오 판독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했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V리그의 명예와 팬의 신뢰를 위해 개혁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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