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군사 쿠데타에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관여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은 적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쿠데타 발생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사관학교 통합을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라고 당시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방송화면 캡처/ 박연수 예비역 대령 제공
영국의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이 쓴 ‘오만과 편견’이란 소설은 영화로도 대중에 선보이면서 오늘날까지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자신을 반성하며 돌아보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중요함을 전한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이 심해지면 문제가 커지기 마련인데,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에서도 이러한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그 폐해 중 하나가 사관학교 통폐합이라는 무리수다. 각계 전문가들이 숱한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제기해도 충분히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다. 따라서 이를 다시 비판해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오만(傲慢·pride)은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고 타인을 업신여기는 태도다. 특히 권력을 가진 자가 자기 확신에 빠지면 비판과 조언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판단하며,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게 된다. 심해지면 자신의 판단을 절대시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오만 증후군(Hubris Syndrome)’의 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편견(偏見·prejudice)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으로, 자신의 경험과 선입견에 갇혀 타인을 공정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 자신의 잘못은 상황 탓으로 돌리고 타인의 잘못은 과장하며, 자신과 다른 의견도 배척하게 된다.
오만과 편견은 서로를 강화한다. 특히 권력을 가진 자가 스스로 경계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잘못된 판단과 독단이 반복돼 자신은 물론 국가와 국민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 8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군사 쿠데타에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관여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은 적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또한 육사 출신들이 군 고위직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문제시하면서,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사관학교 통합을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라고 당시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지난 8월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사관학교 통합을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라고 당시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안 전 장광은 국군사관학교 창설계획을 보고했다. 박연수 예비역대령 AI 그림
이 장면은 TV, 인터넷, 유튜브 등 각종 매체를 통해 널리 전파됐다. 대통령이자 국군통수권자가 공개석상에서 이러한 발언을 한 것에 적잖이 놀랐다.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사관학교 동문들과 예비역 사회에서 큰 반발이 일어났고, 육사 출신 장교들과 사관생도들의 명예에도 상처를 줄 수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든 간에, 과거의 일부 사건을 오늘날의 교육기관 전체와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이며 편견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쿠데타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합동성 강화라는 명분하에 국군사관학교로 통합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주장은, 통합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논리로 보기 어렵다. 과거 쿠데타에 가담한 개인들의 책임을 오늘날의 교육기관과 출신 장교들에게 연결하는 것도 부당하다. 동문들은 물론이거니와 육사에 재학 중인 사관생도들과 그들을 기대하고 있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기가 막힐 일이겠는가.
이러한 접근은 오히려 군의 중립성을 해치고 군내 출신 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쿠데타 방지를 위해서는 군의 정치적 중립성과 민주적 통제를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지, 사관학교 통합이 반드시 해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로 인해 해군·공군사관학교까지 통폐합될 상황에 놓였다. 이에 육·해·공군 사관학교 총동창회는 이 대통령의 통폐합 방침을 철회하라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관학교 통폐합 선행연구의 졸속성과 편향성, 군별 전문성 약화, 합동성 강화 효과에 대한 의문, 막대한 국방예산의 소요, 지리·공간적 제한, 안보상황과의 부적합성, 결론을 미리 정해 놓은 정책 추진이라는 문제점 등 전문가들의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19일 경복궁 일대에서 가진 사관학교 폐교저지 범국민 총궐기대회 팸플릿. 사관학교 총동창회 제공
각 군의 전통과 사관생도들의 교육 및 진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설명만으로는 이러한 문제점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반면 여당 일각에서는 사관학교 통합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대응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보다 갈등을 더욱 확대할 우려가 있다.
2027학년도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 모집요강. 육사 제공
군 간부들은 출신을 떠나 서로 신뢰하고 국가안보를 위해 함께 노력해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온전히 억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군 내부의 출신 문제를 지나치게 부각한다면 오히려 상호 불신을 키우고 군의 결속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접근이 국가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장 현실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북한군은 이 순간에도 비무장지대(DMZ) 북측 지역에서 방벽과 전술도로를 구축하고 있다. 군사분계선(MDL) 침범도 이어지면서 국지적인 충돌 위험이 커지고 있다. 우리 군은 1년 전쯤인 지난해 북한군의 지뢰 매설 의심 정황을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위협에 대한 사전 대비와 관계기관 간 대응이 충분했는지를 놓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27학년도 해군사관학교 사관생도 모집요강. 해사 제공
이러한 가운데 지난달 21일 서부전선 DMZ의 아군 지역에서 수색작전 중 지뢰 폭발로 우리 군 간부 3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이후 합동참모본부는 유엔군사령부와 공동 현장조사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토대로 북한군이 MDL 이남에 설치한 수지반보병지뢰(플라스틱 대인지뢰)가 폭발한 것으로 최종 판단했다. 이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으로, 정부는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만으로 충분한 것인지 의문이다. 북한의 지뢰 매설과 군사분계선 영토침범을 억제하기 위한 보다 단호하고 실효적인 군사적 조치가 필요하다.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묻고, 유사한 도발이 재발되지 않도록 확고한 대비태세도 다시 정비해야 한다.
2027학년도 공군사관학교 모집요강. 공사 제공
공교롭게도 지뢰 폭발 사고가 발생한 그날, 이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중단과 대북 제재 완화를 연계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북한이 핵 개발을 동결한다면 제재를 일부 완화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북한이 핵 동결을 약속하더라도 검증을 거부하거나 합의를 위반할 경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북한은 그동안 여러 차례 비핵화 관련 합의를 위반하거나 협상을 지연해 왔다. 중국과 러시아 등이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우리 대통령까지 제재 완화를 언급하는 것은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고착시키고 완전한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문제의 출발은 국가기관이나 군사조직 자체가 아니다. 거기에 속해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의 가치관과 도덕성, 그리고 판단이 문제다. 사관학교를 통합하고자 한다면 군사적 필요성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군 내부의 충분한 검토가 선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그럴 만한 국가적·군사적 상황과 심사숙고한 다각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 여건도 성숙해야 한다. 관련자들이 명예롭게 새로운 체제로 전환되는 것을 수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감대도 형성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통합의 명분부터가, 군사교육의 본질적 필요성보다는 과거 쿠데타에 대한 정치적 문제의식에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언젠가 북한을 포함한 주변국들과의 적대적 관계가 해소되고, 국내외 안보환경과 군사전략적 여건이 성숙된다면 그때 사관학교의 전면적인 개편을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국군통수권자라고 해서 군사(軍事)에 관한 중대한 제도 변경을 충분한 검증 없이 추진해서는 안 된다. 특히 사관학교나 ROTC 등 장교 양성기관의 체계 조정은 국가안보의 장래와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므로 더욱 신중해야 한다. 돌이켜 보건대, 오히려 국군통수권자의 권한이 헌법과 법률, 민주적 통제의 원칙에 따라 행사되도록 그 절차와 책임을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박연수 예비역 육군대령·애널리스트·KSCI 연구위원. 前 합동참모본부 JWSC 책임분석관. 박연수 예비역 육군대령 제공
그동안 대한민국은 여러 차례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대통령의 하야, 탄핵, 구속, 피살과 같은 불행한 역사를 경험했다. 군사 쿠데타나 비정상적인 정권 교체도 있었다. 어떤 대통령은 북한의 침략으로 절멸의 위기에 몰렸던 대한민국의 국체를 수호했는가 하면, 어떤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을 앞세우면서 안보정책의 방향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국가 지도자의 행위가 국가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불행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요즈음 정치적 갈등은 심화되고 안보상황도 엄중해지고 있어서 여느 때보다 주의해야 할 시기다.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는 우리나라를 세계 5위의 군사 강국으로 평가했다. 우리 군이 수준 높은 군사력을 갖추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군사력을 관리·운용하는 국군통수체계와 군의 리더십이다. 이것은 항상 국가안보의 원칙 위에 똑바로 서 있어야 한다. 언제 도발을 자행할지 모르는 적(敵)만 경계해서도 안 된다. 역사를 보건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 요인이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부의 잘못된 판단과 권력 행사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었다. 이를 예방하지 못하면 국가의 존립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 국가안보가 무너지는 데 반드시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관학교 통폐합 구상은 지나친 확신과 과거에 대한 편견이 정책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소설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해피엔딩을 맞는다. 자신의 판단을 돌아보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며 고집을 내려 놓았기 때문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이재명 대통령은 사관학교 통폐합 추진을 중단하고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기 바란다. 현재의 사관학교 체계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하는 현명한 용단도 필요하다. 그리하여 육군ㆍ해군ㆍ공군사관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이 그 곳에서 저마다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연마하여 국가 안보에 헌신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박연수 예비역 육군대령·애널리스트·KSCI 연구위원. 前 합동참모본부 JWSC 책임분석관
정충신 선임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