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전은 다영역 작전이 분명하나, 육군은 지상에서 공군은 하늘에서 해군은 바다에서 싸우는 건 불변이다. 오상봉 예비역 대령 제공
국방부와 사관학교 통합론자들은 첨단기술과 미래전을 입에 올리며 “군종(軍種) 간 경계는 구시대의 낡은 칸막이”라고 강변한다. 다영역 통합작전(MDO)이 뉴노멀이 됐으니 사관학교를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전장(戰場)의 본질과 인간의 한계를 도외시한 착각이다. 다영역 통합전장은 산꼭대기에서 멀리 바라본 전장의 겉모습일 뿐이다. 현미경을 들이대고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안에서는 여전히 각 군이 자신이 속한 물리적 영역에 맞춰 가장 원초적인 고유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다.
1. 육·해·공의 경계가 무너지기 위한 비현실적 3대 조건
육·해·공군의 분리는 관료주의가 만든 행정적 칸막이가 아니다. 인간이 극복해야 하는 중력(지상), 부력(해상), 양력(공중)이라는 절대적 물리 법칙의 차이다. 만약 이 군종의 경계가 무너지고 단일 사관학교가 타당성을 가지려면, 최소한 다음 세 가지 SF(공상과학)적 조건이 현실화돼야만 한다.
▲ 영토 점령 메커니즘의 소멸: 인간이 흙을 딛고 살아가는 생물학적 존재임을 포기하거나, 물리적 거점 확보 없이 가상·원격 타격만으로 적국의 국가 의지를 100%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 물리적 도메인의 단일 플랫폼화: 전차, 구축함, 스텔스 전투기의 구분이 사라지고, 하나의 무기 플랫폼이 우주·공중·해상·수중·지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모든 전투를 홀로 수행해야 한다.
▲ 전쟁 수행 주체의 완전 무인화: 인간의 전술적 결심, 장병들의 사생관, 전장의 공포를 이겨내는 야전성이 완전히 배제되고, 양국의 중앙 AI(인공지능) 슈퍼컴퓨터 간 알고리즘 연산 대결로 승패를 인정해야 한다.
과연 이런 세상이 올 수 있는가? 인간이 육체적 생명을 지닌 유인원으로 존재하는 한, 그리고 땅을 밟고 영토를 지켜야 국가가 존속하는 한 그런 세상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왜 지상, 해상, 공중에서 싸우는 방식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가?
2. 인간의 인식과 의지: 세 전장이 요구하는 생존 메커니즘
전술의 본질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인지(知·智)와 의지(決·行)라는 인간의 천부적 능력이 빚어내는 결합이다. 불교에서 오관(색·성·향·미·촉)을 통해 들어온 감각 정보를 분별하고 법(法)을 향해 결단과 실천으로 나아가듯, 전장의 군인은 오감으로 위험을 인지하고 강인한 의지로 행동을 폭발시킨다. 그런데 지상, 해상, 공중은 인간의 뇌와 감각이 적응해야 하는 생존 논리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 지상 전장: 극도의 마찰과 불투명성, 그리고 동물적 야수성
지상은 은폐와 엄폐가 지배하는 불투명한 2차원 공간이다. 지상 지휘관에게 필요한 감각은 계기판의 수치가 아니라, 능선 하나, 수풀의 흔들림, 흙먼지의 각도에서 적의 살기를 직관적으로 읽어내는 야수적 육감과 지형 직관이다. 동시에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본능적인 움츠림을 극복하고 참호 밖으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돌격하는 원초적 돌파 의지가 요구된다. 부하와 진흙탕을 함께 뒹굴며 눈빛으로 신뢰를 나누는 인간적 스킨십이야말로 지상전 의지의 원천이다.
▲ 해상 전장: 무한한 고립감, 체계 중심 지각, 그리고 동주공제(同舟共濟)의 규율
바다는 지형지물이 없는 투명한 공간이며, 인간은 함정이라는 기계 요새를 벗어나면 단 몇 분도 살 수 없다. 해군 장교의 인지는 육안이 아니라 레이더 파형, 소나 음문, 3차원 데이터링크를 머릿속에서 입체 좌표계로 재구성하는 추상적·체계적 공간 지각이다. 지상군은 불리하면 흩어져 숨을 수 있지만 군함은 도망갈 곳이 없다. 어뢰에 맞아 격벽에 물이 차오르고 불길이 치솟아도 자리를 지키며 방수 밸브를 조이는 절제된 냉정과 기계적 복종, 즉 “배가 침몰하면 모두가 끝장”이라는 운명공동체적 결속 의지가 전장을 지배한다.
▲ 공중 전장: 초음속의 3차원 역학, 감각의 부정, 그리고 얼음 같은 단독 결단
공중은 중력가속도(G)가 피를 쥐어짜고, 전정기관이 착각을 일으켜 하늘과 바다를 거꾸로 인식(버티고)하는 비인간적 3차원 공간이다. 공군 조종사는 자신의 신체 감각을 불신하고 오직 계기만을 믿는 초이성적 기하학 인지로 0.1초 만에 4차원 시공간 에너지를 계산해야 한다. 3만 피트 상공에는 엄호해 줄 참호도, 도와줄 전우도 없다. 적 미사일 경보음이 울리는 절대적 고독 속에서 심박수를 통제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얼음 같은 자기통제 의지가 필수적이다.
통합론자들은 3군 사관학교의 교과목 70%가 중복된다며 통합의 당위성을 강변한다. 그러나 이는 교과목 명칭만 훑어본 무지다. 과목명이 비슷할지라도,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기초군사학과 물리, 역학 교육은 각 군의 전장 특성에 맞춰 수십 년간 진화해 온 고유한 실천지능의 결정체다. 육군의 물리가 탄도와 지형 극복을 다룬다면, 해군의 물리는 부력과 수중 음향을 다루고, 공군의 물리는 양력과 초음속 공기역학을 다룬다. 결코 하나로 뭉갤 수 없는 전문화의 영역이다.
이것을 억지로 섞어놓은 ‘2+2 체제’는 필연적으로 장교단의 치명적인 하향평준화를 부른다.
통합론자들은 타군을 조기에 이해하고 다영역 전장에 익숙한 융합형 장교를 기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민간 사회를 보라. 한 사람이 육상 운송과 해운, 항공 물류를 두루 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거친 파도를 넘는 선장이나 초음속을 다투는 기장의 조종간을 맡기지 않는다. 각 영역의 진정한 전문가는 수천 시간 동안 뼛속까지 해당 환경에 젖어든 장인이어야 한다. 지상·해상·공중을 두루 오가며 일할 수 있는 직책이란 현장의 극한 메커니즘을 꿰뚫는 전문직이 아니라, 어디서나 통하는 일반 관리직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장은 서류를 다루는 일반 관리직이 아니라, 극한의 물리적 마찰 속에서 부하의 생사를 걸고 승부수를 던지는 야전 지휘관이 필요한 곳이다. 타군을 폭넓게 이해한다는 화려한 수사는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그 어느 영역에서도 고유의 칼날을 벼리지 못한 채 겉핥기식 상식만 읊조리는 어설픈 군사 행정가를 양산할 뿐이다. 제 영역의 전문성조차 온전히 체화하지 못한 초급장교가 타군을 안들 전장의 위기 앞에서 도대체 무엇을 결단하겠는가.
군에서 하향평준화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전쟁은 단 0.1%의 차이로 생사가 갈리는 현장이며, 전장에서의 실패는 복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로마의 군사학자 베게티우스가 설파했듯, 일반 사회의 업무에서는 잘못을 벌충할 수 있으나 전쟁은 그렇지 않다. 전장에서의 과오는 치명적이며 결코 구제될 수 없는 즉각적인 피의 응징이 따른다. 전장에서는 ‘얼마나 아꼈는가’가 아니라 ‘임무를 완결했는가’라는 신뢰성과 완전성이 절대 기준이다. 단 한 번의 결정으로 부대의 생사와 조직의 존망이 갈리기 때문에, 군은 어설픈 타협 대신 극한의 완전성을 추구해야만 한다.
둘째, 인간의 인지적·신체적 한계 때문이다. 최근 미군이 적진 고립 인원 구출작전에 같은 지상 특수부대 둘을 굳이 나눠 투입한 이유를 생각해 보라. 한 부대는 엄호와 근접전을, 다른 부대는 조종사 구출과 공역 통제·항공 화력 유도만을 전담하도록 역할을 철저히 분리했다. 인간의 한계 때문에 한 팀에 두 가지 임무를 다 맡기면 둘 다 실패하기 때문이다.
같은 지상에서도 역할을 쪼개 훈련시키는 마당에, 땅·바다·하늘이라는 완전히 다른 전장의 전문성을 2년 만에 섭렵하겠다는 것은 장교단을 미숙한 아마추어로 전락시키는 자해 행위다.
3. 멀리서 보면 다영역 융합, 가까이서 보면 고도의 분업과 전문성
종합병원을 보라. 의사, 간호사, 임상병리사, 원무행정과 시설관리 인력이 각자의 영역에서 극한의 전문성을 발휘하고, 이들이 전산망으로 실시간 연결될 때 환자를 살려낸다. 협진을 잘하겠다고 의사와 간호사, 행정직원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2년간 똑같은 기초 교육을 시킨다면 그 병원은 파탄에 이를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예산 절감이라는 경제 논리로 사관학교 통합을 밀어붙이는 것 또한 안보를 대학 구조조정 보듯 회계 장부로 다루는 치명적 착오다.
다영역 작전(MDO)도 정확히 이 분업과 전문성의 원리다.
사령관이 숲을 바라보며 결심을 내리면, 초고속 킬웹(Kill Web)과 C4I 네트워크를 통해 타격 명령이 하달된다. 그러나 그 명령을 실행하는 일선의 세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싸운다. 보병은 포복과 참호전으로, 해군은 수중 음파와 유체역학적 기동으로, 공군은 초음속 공역 기동과 에너지 관리로 싸운다.
바뀐 것은 전장의 본질이 아니라 데이터가 오가는 네트워크의 속도뿐이다. 딛고 선 물리적 공간이 다르고, 뇌와 근육이 적응하는 인지 메커니즘이 전혀 다른데, 가성비를 앞세워 사관생도 시절 2년을 한데 모아 가르치겠다는 발상은 군대를 설익은 집단으로 만들겠다는 소리와 다름없다.
오상봉 예비역 육군대령. 전 삼성반도체 예비역 여단장. 육군 신지식인. 오상봉 예비역 대령 제공
4. 2년 공통교육은 군대를 아마추어 잡종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인간의 뇌세포가 지상, 해상, 공중이라는 극한의 환경에 적응하여 야전성(Soldiership, Seamanship, Airmanship)을 본능으로 체화하는 데는 4년의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갓 스무 살 청년들을 2년간 섞어놓는다고 전장에서의 합동성이 생기지 않는다. 진정한 합동성은 사적인 동문 친목이 아니라, 각 군의 엄격한 교리와 정교한 지휘통제 시스템과 훈련 숙달, 그리고 자군 전술에 통달한 영관급 장교들이 고등 군사교육(합참대 등)을 통해 완성하는 것이다.
물리 법칙을 부정하고, 인간 인지 메커니즘의 차이를 무시하며, 전장의 거시적 외형만을 보고 사관학교를 통폐합하겠다는 발상은 국가 안보의 근간을 허무는 위험한 탁상공론이다. 지상과 해상과 공중의 전문성이 서슬 퍼런 칼날처럼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대한민국을 지키는 진정한 다영역 통합작전도 완성되는 것이다.
최첨단 시설에 사관학교를 통합하여 가르친들, 육사는 육군답게, 해사는 해군답게, 공사는 공군답게 키워내는 지금의 체제를 결코 능가할 수 없다.
오상봉 예비역 육군 대령. 전 삼성반도체 예비군 여단장·육군 신지식인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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