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사관학교 창설, 어찌 3군 사관학교 폐교가 아니란 말인가에 대한 설명도. 조병설 예비역 대령 AI 그림
정부가 육·해·공군사관학교를 통폐합해 국군사관학교를 창설하는 안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 이를 두고 과거 국방부 대변인이 ‘기존 사관학교를 폐교 또는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더니, 새로 임명된 국방장관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시된 통합 구상의 핵심은 독립된 3개 사관학교를 하나의 국군사관학교로 재편하는 것이다. 즉, 서울 노원구 태릉·경상남도 창원시 진해·충청북도 청주에 있는 육·해·공군사관학교를 대전 자운대에 하나의 국군사관학교로 통합, 1·2학년은 공통교육을 받고 3·4학년은 육군학부·해군학부·공군학부에서 군별 전문교육을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과연 기존 사관학교가 존속한다고 할 수 있는가? 명칭에서부터 위치, 소속, 지휘체계까지 바뀌는데 폐교가 아니라는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일제의 한일병합으로 ‘대한제국’은 사라졌다. 이름과 주권이 바뀌면 그 나라는 존재가 끝난다는 설명도. 조병설 예비역 대령 AI 그림
일제의 ‘한일병합(韓日倂合)’, 대한제국은 존속했는가?
역사를 돌아보자. 1897년 고종은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국임을 선포했다. 그러나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면서 이를 ‘한일병합’이라고 불렀다.
당시 일제는 한국과 일본의 행복 증진과 동양평화를 내세웠지만, 그 결과는 대한제국의 멸망이었다.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는 사라졌고, 일제는 식민통치 지역을 ‘조선’이라 부르며 조선총독부를 설치했다. 독립국가의 주권과 통치권은 일본에 넘어갔다.
백성과 영토는 그대로이고 일부 행정조직과 관리들도 남아 있었지만, 주권을 상실하여 대한제국이라는 나라는 사라진 것이다.
물론 일제의 강제병합과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의 사관학교 통합정책을 같은 사건으로 볼 수는 없다. 전자는 외세의 불법적인 국권 침탈이고, 후자는 군사교육제도 개편이다. 그러나 명칭이나 주권(통치권, 지휘권) 등이 바뀌면 그 나라나 조직은 존재가 끝난다는 역사적 교훈은 분명하다.
사관학교의 명칭과 지휘체계, 독립성을 없애면서 폐교가 아니라니. 이것이 과연 기존 사관학교의 존속인지를 묻는 설명도. 조병설 AI 그림
사관학교의 명칭과 지휘체계, 독립성을 없애면서 폐교가 아니라니!
정부의 국군사관학교 통합 구상에서 기존 육·해·공군사관학교는 국군사관학교 아래 3,4학년만의 육·해·공군학부로 재편되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다. 지금까지 각 군이 독립적으로 생도를 선발하고 4년간 교육해 장교로 임관시키던 체제가 하나의 학교로 통합되는 것이다.
기존 각 군 사관학교의 독립적인 법적 지위와 생도 선발·교육권이 사라지고, 각 군 예하 학교장 중심의 지휘체계가 국방부 직속 국군사관학교장 아래의 학부 체계로 바뀐다면 이는 사실상 기존 사관학교의 해체가 아닌가?
4년제 육군사관학교와 3,4학년뿐인 육군학부가 같은 학교인가? 해군사관학교와 해군학부, 공군사관학교와 공군학부가 같은 교육기관인가?
독립된 대학이 다른 대학의 학부로 편입돼 독립성을 상실했다면 이를 기존 대학이 그대로 존속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학교 터와 역사·전통까지 잃는데 페교가 아닌가? 기수, 교훈, 교가, 제복, 모든 역사와 전통이 무너진다는 내용의 설명도. 조병설 AI 그림
더구나 학교 터를 떠나고 역사와 전통까지 잃는데 폐교가 아닌가?
사관학교는 단순한 교육시설이 아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생도들이 조국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선배들의 희생과 군인정신을 계승해 온 역사적 공간이다.
육군사관학교의 서울 태릉 화랑대, 해군사관학교의 진해 옥포, 공군사관학교의 청주 성무대는 단순한 학교 부지가 아니다. 각 군의 역사와 전통, 정신적 정체성이 깃든 상징적인 장소다.
그곳에는 생도들이 뛰던 연병장과 교육훈련장, 선배들의 발자취가 담긴 기념물과 역사적 시설들이 있다. 졸업생들에게는 군인의 길을 시작한 정신적 고향이며, 후배들에게는 선배들의 명예와 전통을 배우는 살아 있는 교육현장이다.
그런데 정부의 자운대 4년 통합안이 시행되면 3군 생도들은 각자의 모교를 떠나 대전의 하나의 캠퍼스에서 생활하고 교육받게 된다.
기존 학교 터가 다른 용도로 전환되거나 사관학교의 본래 기능을 상실한다면, 수십 년간 이어온 장소와 교육의 역사적 연속성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교기와 기념물 몇 개를 새 캠퍼스로 옮긴다고 역사와 전통까지 옮길 수 있는가? 최첨단 스마트캠퍼스를 새로 건설한다고 수십 년의 역사와 전통을 새로 만들 수 있는가?
학교의 명칭과 터, 교육체계와 정체성이 모두 바뀌는데 어찌 기존 사관학교가 그대로 존속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어찌 폐교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기수와 교훈, 교가와 제복은 어떻게 할 것인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각 군 사관학교가 오랜 세월 계승해 온 고유한 역사와 전통이다.
사관학교에는 일반 대학과 다른 기수문화가 있다. 육사 몇 기, 해사 몇 기, 공사 몇 기라는 기수는 단순한 졸업연도가 아니다. 선후배 사이에 이어져 온 전우애와 명예, 책임과 헌신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통합 후 기수는 어떻게 되는가? 국군사관학교 제1기부터 새로 시작하는가, 아니면 기존 육·해·공군사관학교의 기수를 각각 유지하는가?
각 군 사관학교의 교훈과 교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모표와 제복, 생도들의 각종 의식과 전통은 그대로 계승되는가? 국군사관학교라는 하나의 학교에 들어간 생도들이 각기 다른 교가를 부르고 서로 다른 제복을 입으며, 독립된 학교의 기수를 계속 사용하는 것인가?
기존의 것을 모두 유지한다면 굳이 하나의 학교로 통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반대로 이를 통일하거나 폐지한다면 수십 년 동안 이어온 각 군 사관학교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군인의 명예와 자긍심, 군종별 정체성과 군인정신의 계승에 관한 문제다.
정부는 이처럼 중대한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보장책부터 제시해야 한다.
조병설 예비역 육군대령·수필가. 前 야전군 지휘관 및 참모·육사 지휘심리학 교수·나라사랑운동본부 안보교수. 조병설 예비역 대령 제공
사관학교는 단순한 대학이 아니다
사관학교의 본질적인 임무는 전쟁에서 부하를 지휘하고 승리할 수 있는 초급장교를 양성하는 것이다.
육군은 지상전, 해군은 해양전, 공군은 항공우주작전이라는 서로 다른 전투환경과 임무를 가진다. 각 군의 전문성은 몇 개의 전공과목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생도 선발부터 생활교육과 군사훈련, 지휘통솔과 야전실습까지 4년간 일관된 교육체계 속에서 형성된다.
정부는 합동성 강화와 미래전 대비를 통합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합동성을 강화하려면 반드시 독립된 사관학교부터 없애야 하는가?
미국을 비롯한 군사강국 대부분, 병력 30만 이상 대군을 보유한 국가 22개국 중 20개국은 각 군별 분리된 사관학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도 기존 사관학교의 독립적인 선발·교육체계를 유지하면서 상호방문, 공동교육과 합동훈련을 확대할 수 있다. 임관 이후 위관·영관장교 단계에서 합동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실질적인 합동작전 능력 발전에 더욱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각 군의 전문성과 합동성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국방장관은 폐교의 의미부터 명확히 밝혀야 한다
국방장관에게 다시 묻는다.
육군사관학교를 육군학부로 바꾸고 독립적인 교육기관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없애도 육군사관학교가 존속하는 것인가?
해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 명칭이 바뀌고, 독립적인 선발·교육권이 사라지며, 수십 년간 역사와 전통이 축적된 학교 터마저 떠나게 하는데 폐교가 아니라는 주장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정부가 진정 폐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기존 3군 사관학교의 법적 지위와 선발·교육권, 학교장 지휘권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기수와 교훈·교가·제복은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화랑대·충무대·성무대의 역사적 교정은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부터 명확히 밝혀야 한다.
1910년 대한제국은 일제에게 강제 병합돼 국호와 주권을 빼앗겼다. 백성과 영토, 일부 행정조직이 남아 있었지만 그 국호와 주권이 바뀌어서 “나라를 잃었다”라고 한다.
하물며 사관학교 통폐합 과정에서 일부 형식만 계승한다고 기존 학교가 존속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독립된 교육기관으로서의 지위와 권한, 역사와 전통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학교의 이름을 바꾸고, 독립적인 지위와 권한을 없애고,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교정마저 떠나게 하면서 폐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폐교라고 하는가?
국방장관은 ‘폐교가 아니다’, ‘폐지가 아니다’라는 말장난으로 통합의 본질을 흐리고 반대 여론을 잠재우려 할 것이 아니다. 각 군의 전문성 강화도, 합동성 제고도, 미래전 대비도 기존 사관학교의 독립성을 없애야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오죽하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폐교 부정’ 발언을 두고 ‘말이야 방구야’라는 질타가 쏟아질까.
정부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그 필요성과 타당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사관학교 통합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국가안보와 미래 장교 양성의 근간을 바꾸는 중대한 정책을 명분과 수사만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관학교 통합이 아니라, 기존 육·해·공군사관학교의 독립성과 역사·전통을 지키면서 교육의 질과 합동작전 능력을 발전시키는 실질적인 군사교육 개혁이다.
조병설 예비역 육군대령·수필가. 前 야전군 지휘관 및 참모·육사 지휘심리학 교수·나라사랑운동본부 안보교수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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