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돌보다 문득 느끼는 피로
‘황혼 육아’라는 현실에 직면
적절한 수준으로 긍정적 효과
조부모 수당 정책적 지원 필요
전재학 前 인천 산곡남중 교장
젊어서는 직장에 매이고 사회적 관계를 위해 부부 중 어느 한쪽은 독박 육아를 담당하거나 아니면 아이의 양가 조부모의 도움을 받아 자녀를 키웠다. 그래서인지 자녀에 대한 육아는 늘 직장 업무에 밀려 한 순위 낮은 단계에 머물렀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이 말의 진실된 고백은 자녀를 키웠음에도 직접적인 부딪힘과 노력에 따른 육아 노동은 어느 정도 기억 저편에서 간접적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년 퇴임을 한 이후 시간이 흘러 60대 중후반에 이르게 되면서 젊어서 겪어보지 못한 직접 육아의 경험을 손주들 돌봄으로 대체해 경험하는 현실을 맞이한다. 손주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하듯 손주 돌봄은 젊어서 어른들의 도움에 의해 벌었던 시간들을 그대로 토해내듯이 봉사와 헌신, 희생이라는 본래의 역할로 바뀌어 재현되고 있다.
오늘도 손주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질 때 노년의 일상은 새로운 생기로 채워지지만, 해가 질 무렵 밀려오는 육체적 피로와 관절과 허리의 통증은 ‘황혼 육아’라는 현실을 직면하게 만든다. 오늘날 수많은 노년층이 자녀 세대의 경제적 안정과 손자녀의 바른 성장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일상을 내어주고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무조건적인 희생은 자칫 노년의 신체적·정서적 소진을 초래하여 삶의 주체성을 흔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손주를 돌보는 일상이 단순한 ‘소모적 노동’에 그치지 않고 노년의 건강과 삶의 의미, 나아가 깊은 행복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돌봄의 본질에 대한 사회적·개인적 차원의 관점 전환과 실천적 대안이 필요하다.
첫째, ‘황혼 육아’의 과학적 가치를 재인식하고 자발적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최근 국내외 연구들은 적절한 수준의 손주 돌봄이 노년기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증명하고 있다. 예컨대, 손주를 돌보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노쇠 발생 위험’이 22%나 낮았다. 또한 미국심리학회(APA) 학술지 ‘심리학과 노화’ 연구는 손주와의 상호작용과 학습 보조 활동이 조부모의 인지 기능 저하를 막고 사고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돌봄은 몸과 뇌를 활성화하는 ‘능동적 생명 활동’이자 ‘격대교육(隔代敎育)’의 실천으로 삶의 주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둘째, 지속가능한 돌봄을 위한 ‘행복한 경계선’을 구축해야 한다. 독일 샬리테 대학병원과 베를린 자유대학의 연구진이 발표한 유명한 ‘베타 노화 연구’에 의하면, 적정한 수준의 돌봄을 제공하는 조부모의 사망 위험률이 현저히 낮았으나, 체력을 초과한 과중한 육아는 오히려 심혈관계 질환과 우울증을 유발했다고 한다. 따라서 자녀 세대와의 소통을 통해 주 3~4일, 하루 5시간 이내 같은 구체적인 ‘경계선’을 설정하고, 자녀로부터 적절한 경제적·정서적 보상을 공식화하는 ‘돌봄 계약’의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셋째, 국가와 지자체의 ‘조부모 돌봄 지원 시스템’이 확충되어야 한다. 노년의 돌봄을 개인과 가정의 희생에만 맡겨두어서는 안된다. 서울시의 ‘조부모 돌봄수당’이나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손주 돌보미 교육 프로그램’과 같은 정책적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 나아가 지역 사회 복지관과 육아종합지원센터를 중심으로 ‘황혼 육아 조부모 모임’을 활성화해야 한다.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동년배들과의 연대는 정서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올바른 아이 양육 정보를 공유하는 훌륭한 창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에게는 노인이 필요하고 노인에게는 어린이가 필요하다”는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의 말처럼 조부모와 손주의 만남은 가장 아름다운 ‘세대 간 심리적 통합 장’이라 할 수 있다. 손주를 품에 안고 온기를 나누는 일은 노년기에 누릴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숭고한 기쁨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기쁨은 노년 스스로의 건강과 삶의 주체성이 담보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당당한 삶의 주인으로서 건강한 경계선을 지키며 돌봄의 봉사를 실천하고 세대를 뛰어넘는 삶의 지혜를 전수할 때, 손주들의 웃음소리와 재롱은 노년의 삶을 밝히는 가장 눈부신 활력의 축복이 될 것이다.
/전재학 前 인천 산곡남중 교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