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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삼성전자 노조 파업, K반도체 공급망 신뢰를 흔든다

최근 삼성전자 노사가 임금과 성과급 지급을 둘러싸고 충돌하고 있다. 노조는 성과급 산정 기준의 투명화와 상한 폐지를 요구하며 쟁의 찬반 투표를 가결했고, 협상이 결렬되면 5월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했다.

[기고] 삼성전자 노조 파업, K반도체 공급망 신뢰를 흔든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삼성전자 노사가 임금과 성과급 지급을 둘러싸고 충돌하고 있다. 노조는 성과급 산정 기준의 투명화와 상한 폐지를 요구하며 쟁의 찬반 투표를 가결했고, 협상이 결렬되면 5월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했다. 회사는 6.2% 임금 인상안과 추가 보상책을 제시했지만, 성과급 상한의 영구 폐지에는 선을 긋고 있다. 중요한 건 지금의 상황이 단순한 임금 분쟁을 넘어 삼성전자의 공급 안정성을 시험하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는 디램(DRAM) 전량과 낸드(NAND)의 상당 부분을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런 기업에서 장기 파업의 가능성이 거론되는 순간, 글로벌 고객은 단지 ‘얼마나 생산이 줄어들까’만 계산하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 ‘앞으로도 이 회사를 안정적인 공급자로 믿을 수 있는가’를 묻게 된다. 그 의심이 시작되는 순간 공급망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다.

반도체 경쟁력은 기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뢰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고객사는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납기가 안정적이고 위기 대응이 가능한 공급자를 선호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확대로 메모리 수요가 커진 지금은 더욱 그렇다. 이런 시기에 핵심 공급자의 파업 위험이 커지면 고객사는 재고를 더 쌓고, 발주를 분산하며, 경쟁사와의 거래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게 된다. 단기적 방어 조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기적인 공급망 재편의 출발점이 되기 쉽다. 한번 거래선이 바뀌면 파업이 끝난다고 해서 곧장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파업이 AI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엔비디아, 구글,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고성능 메모리(HBM)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공급이 흔들릴 경우 빅테크들은 즉각 공급선을 다변화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산업은 장기 계약 기반 산업이므로 고객사는 공급 안정성을 기준으로 수년 단위 계약을 체결한다. 따라서 한번 공급망이 흔들리면 계약 구조 자체가 바뀌고, 다시 원상복구되는 데에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단순한 물량 감소가 아니라 시장 지배력 약화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이뿐만 아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정책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미국의 반도체법(CHIPS Act) 등으로 글로벌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국제질서는 더 이상 자유무역의 낙관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공급망, 기술, 금융, 에너지, 물류는 이제 국가들의 이해가 충돌하는 전략 공간이 됐다. 한때는 생산 효율과 가격 경쟁력이 세계시장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누가 위기 속에서도 납기를 지킬 수 있는가’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런 국제질서에서 반도체는 단순한 수출상품이 아니라 국가의 신뢰와 협상력을 떠받치는 전략 자산의 성격도 갖게 된다.

삼성전자가 만약 파업에 들어간다면 진짜 위험은 더 이상 며칠의 생산 차질에 그치지 않는다. 더 큰 위험은 한국이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쌓아온 ‘믿을 수 있는 공급자’라는 평판이 흔들리는 데 있다. 지금 시장은 가격과 효율뿐만 아니라 생산 안정성과 복원도 중요하게 평가한다. 이런 시대에 공급망 신뢰의 손실은 단지 한 기업의 손해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균열이 될 수 있다. 파업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다. 그러나 공급망 핵심 산업에서 파업을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관철할 경우 그 비용은 자칫 노사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로 되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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