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투자 상품 될 때 문제 발생
돈이 산업·기술로 흐르지 않아
정책도 가격 억제에 그쳐선 안돼
지방 분배·삶 형태 맞춤 공급을
조승석 경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얼마 전 딸이 ‘청년미래적금’ 가입을 신청했다. 왜 주택청약은 넣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청약에 당첨되어도 집값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차라리 적금으로 자산을 모아 빚을 덜 지고 집을 사는 편이 낫겠다는 대답이었다.
그 말은 체념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계산이기도 했다. 요즘 청년들에게는 내 집 마련의 꿈보다 과도한 대출 부담을 줄이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소유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먼저 마련하려는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는 듯했다. 집을 갖기 위해 대출을 끌어오고, 그 대출을 갚기 위해 삶의 많은 가능성을 미루어야 하는 시대에 청년들은 이미 집을 꿈이 아니라 위험으로 배우고 있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1990년대 서울을 방문한 뒤 한국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주목했다. 서구에서 대단지 아파트가 도시의 단절과 실패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한국에서는 오히려 성공과 안정의 이름으로 욕망되었다. ‘아파트 공화국’은 바로 이 역설을 파고든 책이다. 한국의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형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중산층의 표지였고, 자산 증식의 통로였으며, 때로는 계층을 가르는 이름표가 되었다. 어느 지역의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는 질문은 어느새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지 묻는 질문처럼 변했다.
문제는 집이 삶의 터전이 아니라 투자 상품이 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집이 없는 사람은 계속 뒤처질까 두려워하고, 집이 있는 사람은 집값이 떨어질까 불안해한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일자리, 교육, 교통, 문화 인프라가 집중되면서 집값은 지역 간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국민 자산의 큰 부분이 부동산에 묶이면 돈은 새로운 산업과 기술, 창업으로 흐르기보다 다시 집값 상승에 기대게 된다. 집이 사다리가 아니라 성벽이 되어 버린 셈이다.
공급의 문제도 작지 않다. 한국은 대규모 아파트를 중심으로 주택 수를 빠르게 늘려 왔지만,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보다 경기 흐름에 따라 공급이 크게 늘었다 줄어드는 현상을 반복해 왔다. KDI(한국개발연구원) 정책포럼은 이러한 공급 변동성이 준공 후 미분양, 건설사 재무 악화, 주택금융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쪽에서는 집을 구하지 못해 절망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요와 맞지 않는 집이 남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집을 삶의 조건이 아닌 수익의 대상으로 바라본 결과에 가깝다.
그러므로 해결의 출발점은 집을 다시 주거의 언어로 돌려놓는 데 있다. 부동산 정책은 단기적인 가격 억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수도권에 집중된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지방 거점 도시로 나누고 지역별 인구 구조와 생활 방식에 맞는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1인 가구, 청년, 신혼부부, 고령층에게 필요한 집은 모두 다르다. 공급은 숫자가 아니라 삶의 형태를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삶이 불안정해지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집을 향한 과열된 욕망도 낮아질 수 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지를 단 여성이 조심스레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았다. 배 속의 아이에게 어머니의 몸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첫 집일 것이다. 철학자 볼노브가 말한 거주도 이와 닮아 있다. 거주는 단순히 내가 머무는 공간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삶이 보호받고, 나의 자아가 자라나며, 인간다움을 실현할 수 있는 자리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가치 있는 부동산은 시세가 가장 많이 오르는 집이 아니라, 가족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도란도란 살아갈 수 있는 가정의 환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화목한 오두막이 불화한 궁전보다 낫다’는 서양의 오래된 격언을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붙은 도시의 풍경을 볼 때마다 떠올리곤 한다. 집 안에 많은 것이 쌓여 있어도 화목이 없다면 그곳은 온전한 집이 되기 어렵다. 집은 가격표 이전에 안식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주거가 다시 그런 자리가 될 때, 부동산 문제도 비로소 사람의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
/조승석 경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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