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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계·로봇·AI'라는 도깨비 방망이, 손잡이는 누가 쥘 것인가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 AI 자율제조 R&D 컨소시엄은 제조 전문기업, 정부 출연연구기관, 로봇 전문기업, 시스템 통합기업, IT 기업 등 다섯 기관이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의 자산은 컨소시엄이 도입한 로봇이나...

'기계·로봇·AI'라는 도깨비 방망이, 손잡이는 누가 쥘 것인가

AI 자율제조 시대에는 로봇·디지털 트윈·머신비전 기술만큼이나 공정 데이터를 축적하고 활용하는 역량이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 지역의 중소·중견기업들은 AI와 로봇 도입 과정에서 데이터 자산화와 개방형 협력 구조 구축이라는 새로운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현장 경험에 AI·공정 이해를 결합한 융합형 인재를 키우는 일 또한 한국 제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열 두 번째는 정일화 건솔루션 센터장이다.

자율생산 확산 속 인재·기술·협업 구조를 다시 설계할 때

스마트팩토리 성패, 결국 누구를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지금 도깨비 방망이를 마주하고 있다. 기계, 로봇, 인공지능(AI)이 그것이다. 한 번의 명령으로 부품이 가공되고, 로봇이 24시간 생산라인을 지키며, 생성형 AI가 텍스트와 이미지, 설계 도면까지 만들어 낸다. 인간의 손과 머리를 확장하는 이 새로운 방망이는 제조 현장과 일상 곳곳에 스며들며 산업의 지형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스마트팩토리와 AI 자율제조 현장에 몸담고 있는 산업 종사자로서, 필자는 이 방망이의 위력과 한계를 동시에 체감한다. 위력은 분명하다. 디지털 트윈으로 가상에서 검증한 제조 공정을 실제 라인에 옮기고, 머신비전 AI가 짧은 순간에 미세한 결함을 잡아내며, 로봇 팔이 사람이 손대기 어려운 위험·고난도 작업을 대체한다. 인구 감소와 숙련 인력 고령화라는 한국 제조업의 구조적 위기 앞에서, 이 새로운 방망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되었다.

기계·로봇·AI라는 방망이는 결코 저절로 작동하지 않는다. 학습을 위한 양질의 현장 데이터가 필요하고, 공정과 설비를 이해하는 도메인 지식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그 모든 요소를 시스템으로 통합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방망이는 손잡이가 있어야 비로소 휘둘러진다. 그 손잡이의 자리, 바로 그곳에 산업과 대학이 함께 서야 한다.

지역의 중소·중견 제조기업이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원과 인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AI와 로봇 도입은 부담스러운 투자처럼 여겨지고, 도입을 결심하더라도 끝까지 끌고 갈 자체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로봇기업·연구기관·대학이 함께 자율제조 경쟁력을 만들어가는 모습이다. 정일화 건솔루션 센터장은 자율주행 로봇·4족 보행 로봇·휴머노이드를 하나의 관제 플랫폼으로 통합한 사례를 들며, 한국 제조업의 미래는 협업 구조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미지=챗지피티

설비 가동 로그 등 데이터 자산화 해야

이때 기업이 견지해야 할 첫 번째 방향은 ‘데이터의 자산화’이다. 자사의 공정 데이터, 설비 가동 로그, 품질 이력은 그 자체로 AI 시대의 가장 값진 원자재이다. 이를 외부에 흘려보내기보다 기업 안에서 체계적으로 축적·정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데이터 없는 AI는 손잡이 없는 도깨비 방망이와 같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 AI 자율제조 R&D 컨소시엄은 제조 전문기업, 정부 출연연구기관, 로봇 전문기업, 시스템 통합기업, IT 기업 등 다섯 기관이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의 자산은 컨소시엄이 도입한 로봇이나 장비가 아니라, 공정 단계마다 빠짐없이 축적·정제되는 가공 데이터다. 이 데이터로 학습된 AI가 비로소 사람의 개입 없이 공정 변동에 스스로 대응하는 ‘자율제조’의 토대를 만든다. 데이터를 흘려보내지 않고 자산으로 다루기 시작한 기업과, 그러지 못한 기업의 격차는 앞으로 더 깊어질 것이다.

두 번째 방향은 ‘협력의 개방성’이다. 지역 대학, 연구기관, 동종업계 기업과의 컨소시엄형 R&D, 공동 실증, 상호 인력 교류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한 기업이 모든 것을 갖출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 내에서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이 서로의 강점을 엮어 낸다면, 미국·일본·유럽과의 글로벌 기술 격차를 좁히는 동시에 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 등 아세안 신흥 제조시장으로 함께 나아갈 토대가 만들어진다. 한국의 AI 자율제조 기술은 선진국의 사례를 흡수하면서, 동시에 동남아 제조업 성장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그 가교의 한쪽 끝은 반드시 지역 산업현장이어야 한다.

정일화 센터장이 건솔루션 테크센터를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로봇을 하나의 관제 시스템에 올려

한 공공기관이 발주한 ‘로봇융합 관제 시스템’ 관련 사업은 어느 한 기업의 기술만으로는 그릴 수 없는 그림이었다. 설비를 점검하고, 자율 순찰하는 자율주행 로봇(AMR), 계단과 험지를 오르는 4족 보행 로봇, 그리고 정밀 조작 영역까지 확장되는 휴머노이드 등 서로 다른 제조사가 만든 다양한 형태의 로봇을 단 하나의 관제 플랫폼 위에 묶어 내야 했기 때문이다. 발주처와 시스템 통합사, 그리고 복수의 로봇 제조사가 개방형 표준 위에 한 자리에 모이는 순간, 단일 기업으로는 결코 진입할 수 없었던 공공 인프라 시장이 비로소 열렸다. ‘협력의 개방성’은 구호가 아니라, 사업 발주서에 함께 이름을 올린 컨소시엄 안에서 매번 새로 검증되는 원리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산업현장의 시각에서 대학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결국 ‘사람’이다. 다만 그 사람은 과거의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 기계공학자가 알고리즘을 설계할 줄 알고, AI 전공자가 공정과 설비를 이해하며, 로봇 연구자가 비즈니스 모델까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 단일 학문의 깊이만으로는 도깨비 방망이의 손잡이를 단단히 쥘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AI 자율제조 시대 인재상 5가지

AI 자율제조와 디지털 트윈을 경험하는 융합인재

필자의 센터에는 현장 실무 중심의 교육 과정을 거쳐 입사한 한 젊은 연구원이 있다. AI 분야에서 그는 동료들과는 다소 다른 출발선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학교에서 익힌 현장 실무 감각, 즉 설비를 직접 만지고, 도면을 읽고, 작업 현장의 흐름을 몸으로 이해하는 그 단단한 기초 위에 입사 후 AI 자율제조와 디지털 트윈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차곡차곡 쌓아 가면서, 그는 어느새 우리 센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구 인력이 되었다. 융합형 인재는 어디 먼 곳에 따로 있는 사람이 아니다. 걸어온 길이 다를 뿐, ‘현장의 손’에 ‘데이터의 머리’를 더해 가는 모든 사람이 그 후보군이다. 산업현장은 그 후보군이 빈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마지막 한 걸음을 함께 걸어 줄 책무가 있다.

이를 위해 대학과 지역기업의 협력은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어야 한다. 단발성 산학과제를 넘어, 학생이 학기 단위로 기업 현장에 머물며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장기 현장 인턴제, 기업의 미해결 과제를 대학원 학위 주제로 연결하는 공동 지도 체계, 그리고 재직자 재교육·평생학습으로 이어지는 양방향 파이프라인이 그 예이다.

필자 자신도 기계공학 전공으로 출발해 산업현장에서 20년을 보낸 뒤, 다시 대학원의 문을 두드려 제조인공지능 석사 과정을 마쳤다. 산업현장의 한 사람이 거꾸로 대학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그 경험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대학이 산업과 얼마나 더 가까이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대전환의 시대, 도깨비 방망이는 분명히 우리 손에 들어와 있다. 그러나 그 방망이는 한 손으로 휘두르기에는 너무 무겁고, 잘못 휘두르면 누군가의 일자리와 산업의 기반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산업현장은 데이터와 문제를, 대학은 지식과 인재를 들고 같은 자리에 서야 한다. 지역의 중소·중견기업이 흔들림 없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일, 그리고 한국 제조업이 글로벌과 아세안을 잇는 가교가 되는 일은 모두 이 두 손이 만나는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도깨비 방망이의 진짜 마법은, 어쩌면 방망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손잡이를 함께 쥔 두 손에 있는지도 모른다.

정일화

건솔루션㈜ AI/DT Center 센터장

정일화 건솔루션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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