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범죄수사청이 경찰이 중대 범죄로 분류해 통보한 금융기관 해킹 사건에 대해 수사를 개시하지 않기로 했다. 경찰이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 등을 거쳐 중수청 수사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지만 중수청은 기존 수사 진행 상황 등을 이유로 사건을 맡지 않기로 한 것이다. 공소청의 기존 직접 수사 사건 이첩 과정에서도 중수청이 일부 사건의 수용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준비 부족에 따른 중대 범죄 수사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지방중수청은 23일 금융기관 해킹 사건에 대해 “경찰에 수사 불개시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중수청은 “경찰이 개청 이전부터 수사에 착수한 사안으로 수사가 상당 부분 진행됐고 해외 유관 기관과 국제 공조도 진행 중인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0일 금융기관 해킹 사건을 중수청에 통보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당초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 등을 토대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해킹 피해 시스템이 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금융기반시설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중수청 수사 대상인 중대 범죄로 분류한 것이다.
현행 중수청법에 따르면 경찰은 중대 범죄를 인지하면 중수청에 통보해야 한다. 중수청은 서면 통보를 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수사 개시 여부를 회신해야 하며 이첩을 요구하지 않으면 경찰이 수사를 계속한다.
중수청은 경찰이 수사를 이어가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입장이지만 법조계에서는 대규모 해킹 사건을 감당할 수사 역량이 부족한 점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서울지방중수청은 사이버범죄수사과장 자리가 공석이다. 디지털 압수수색에 필요한 과학수사 장비 일부도 수사 유예기간에 따라 공소청이 계속 사용하고 있다. 해킹 범죄는 피의자 특정과 혐의 입증에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 인력과 장비 부족이 수사 착수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공소청과의 사건 이첩 과정에서도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공소청은 19일부터 기존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한 사건 가운데 약 300건을 우선 이관 대상으로 분류해 경찰과 중수청에 순차적으로 이송하고 있다. 그러나 중수청이 일부 사건에 대해 경찰로 이첩할 것을 요구하면서 기관 간 신경전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중수청이 인력과 시설·전산망 등 수사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사건 위주로 선별해 넘겨받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중수청 측에서 사무실이 협소해 사건 기록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까지 대며 이첩을 꺼리고 있다”며 “일부에서는 ‘바로 구속할 수 있는 사건 위주로 넘겨줬으면 좋겠다’는 요구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수청이 경찰의 중대 범죄 통보 사건에 대해 수사를 개시하지 않고 공소청과도 사건 이첩을 둘러싼 이견을 보이면서 형사사법 체계 개편에 따른 수사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사·기소 분리로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와 달리 수사기관들이 사건 인수를 꺼리는 상황이 반복되면 중대 범죄 대응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사이버 범죄 수사 경력이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이버 테러 사건을 유권해석까지 거쳐 중대 범죄로 분류했는데도 기존에 경찰이 수사해왔다는 이유로 맡지 않은 것은 중수청의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대형 사건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수사를 맡기 어렵다는 내부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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