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시중은행 지점에서 고객들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오승현 기자
주요국 장기국채 금리가 일제히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등한 것은 중동 사태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과 함께 재정 건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장기국채 금리 안정을 위해 바이백(재매입) 규모를 확대했으나 잭슨홀 미팅 이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 인상 기대감이 커지면서 다시 국채가격이 하락(금리상승)하고 있다.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 등도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주요국 금리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 주요 빅테크들이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를 위해 회사채 발행을 늘린 것 또한 국채금리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 역시 글로벌 금리 상승과 함께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편성 등으로 국고채 금리가 일제히 상승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930%로 전 거래일보다 0.052%포인트 상승하면서 연고점(3.959%)에 근접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 역시 4.418%로 전 거래일 대비 0.047%포인트 올랐다.
문제는 외부 효과다. 시장금리는 국내와 국외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한은이 두 번 연속 금리를 올린 상황에서 주요국의 국채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다. 특히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에서 연쇄적으로 금리가 치솟고 있어 한국도 시장금리 상승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비슷한 물건(국채)을 파는데 옆 가게의 가격이 떨어지면(금리 상승) 주변 상점도 싸게 팔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OCBC 은행의 외환·금리전략 책임자 프랜시스 청은 “유럽과 영국은 인플레이션 기대치 상승이 더 큰 요인인 반면 미국은 여전히 높은 실질금리에 의해 금리 상승이 아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국내외 요인으로 국고채금리가 뛰면 금융채·회사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가계와 기업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모건스탠리의 내년 1분기 기준금리 3.5% 전망 기사를 공유하면서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을 사실상 용인하자 금리 상승 흐름이 빨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은 기준금리가 3.5%까지 오를 경우 2022~2024년 수준의 강력한 통화 긴축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이 커지면 시장금리는 선제적으로 움직인다. 실제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5년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날 4.72~7.12%로 지난해 12월 말(3.93~6.23%) 대비 0.79~0.89%포인트 올랐다. 기준금리는 7월 이후로 불과 0.5%포인트 올랐는데 주담대 금리는 더 큰 폭으로 빠르게 상승한 셈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산한 가계신용은 2019조 8000억 원으로 사상 처음 2000조 원을 돌파했다. 자영업자 대출 잔액도 올해 3월 말 기준 1095조 5000억 원으로 2015년 3월 말(399조 8000억 원) 이후 10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한 상태다. 전체 자영업자의 12.8%는 저소득·저신용·다중채무 등 취약차주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가계와 자영업자 이자 부담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전체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1조 8000억 원 증가한다. 자영업자 차주 한 명이 부담하는 이자 또한 224만 원 증가한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 세력을 겨냥했지만 금리 상승으로 인한 부담은 모든 가계와 자영업자들이 나눠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은의 금리 인상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재정 확대로 시장금리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은 총지출 820조 9000억 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12.8%(93조 원)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내년 국고채 순발행액은 96조 3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12% 줄어들지만 2018~2026년 연평균인 81조 7000억 원보다 많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국가부채 증가로 장기채 금리가 오르는 것은 전 세계 공통 현상이지만 미국·일본·유럽은 기축통화국이라 한국과 상황이 다르다”며 “국가부채를 계속 늘리면 국내 물가·금리가 오르는 속도는 다른 국가보다 더 빠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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