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와 빅테크의 실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을 읽고 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누구의 지지를 받고 무슨 정치를 하고 있는지 그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극우에 포획된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는 한때 국왕이 없는 첫 번째 민주제 나라로 유명했던 미국은 더 이상 민주정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두루두루 잘 짚어 주고 있다. 한 마디로 미국은 ‘올리가르키, oligarchy’에 의해 운영되는 비민주 국가로 변질했다는 지적이다. ‘올리가르키’는 소수 엘리트 집단에 의한 국가 운영, 소수에 의한 지배, 과두정치를 뜻한다. 지배적 자본을 쥔 소수 엘리트가 국가 권력을 통합적으로 장악할 때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구조적 지배 형태인데 이미 고대 그리스 정치에서도 선을 보인 적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재선시키는 데 앞장선 스티브 배넌은 극우 정치의 전략가이자 브레이트바트 뉴스의 전 대표로 ‘대안우파’의 결집을 설계한 핵심이다. 그는 버지니아의 백인 노동자 지역에서 성장했고, 해군 장교로 복무한 뒤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 월가에 진입했지만 금용자본의 행태에 실망하여 여러 번 회의감을 표명했다. 그는 “미국 노동계급 기반을 재건하기 위한 혁명가”라고 자처했고, “정치는 문화의 뒤에서 움직인다”며 문화전쟁론을 제기했다. 한 마디로 언론·종교·교육·문화 영역을 장악하지 못하면 정치적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청교도들이 이민을 와서 식민지 모국인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수입했으나 남북전쟁을 통해 이들을 해방했던 만큼 용광로와 같은 연방 국가 통합을 실현해 왔다. 그런데 배넌은 이런 인권·다양성·사실 기반의 공적 언어로 표현된 ‘정치적 올바름’을 “좌파 엘리트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언어독재”라고 주장하고, ‘정치적 올바름’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사회를 경직시킨다고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극우정치의 땔감은 욕망과 혐오, 공포와 굴욕이다. 이런 극우세력의 감정 정치는 다른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민주제의 맹점, 민주정의 취약점을 메운다면서 주권자의 불안심리를 자극했다. 미국 극우는 1980년대 레이건시대 이후 자본주의 국가 운영 질서의 기조를 구성한 새로운 자유주의 사조를 신봉해 왔다. 신자유주의는 미국 지배구조가 첫 번째 대전환을 이룬 산업자본 우위에서 금융자본 패권으로 옮겨갈 때부터 등장했다. 이 금융자본 시대로 들어서며 공업지대였던 러스트 벨트의 생산 기반이 무너졌고, 이들 제조업 노동자들이 지지했던 민주당도 기반을 잃었다.
신자유주의는 감세와 군비 확장을 추진해 세계 최강의 국가, 미국을 군사비 지출 1위, 부채 국가, 재정적자 국가로 전락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라 균형과 견제, 절제의 미국 민주제를 화석화시켜 정상적 민주정 절차가 작동하지 않는 수리 불능의 민주제 국가로 추락하도록 만들고 있다. 트럼프는 재선에 실패하자 의사당 공격을 선동했다.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정작 헌정 질서 자체를 위협하고, 부정했던 파시즘 국가처럼 국가 운영을 일부 권력 엘리트만이 좌지우지했다. 헌법 개정 자체가 불가능한 경직된 헌법 규정조차 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공화당에서도 비주류였던 트럼프는 이 변화의 틈새를 파고들어 금융자본-군산복합체-빅 테크놀러지 업체 수장들을 결합해 냈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MAGA’라는 선거 구호를 외쳐 지지 세력을 규합해 이를 기반으로 이들의 폭발적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으로 재선되었다. 그는 부동산업자 출신으로서 리얼리티 쇼 사회자 경험이 거이 전부였고,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까지 워싱턴 특구의 연방 정치와도 무관했다. 이 책 ‘극우에 포획된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 보면 한국에서의 극우 본질과 실체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12·3 비상계엄과 내란을 옹호하고 편드는 이들의 언동은 우리의 민주공화국을 위험에 빠트리는 범죄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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