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성 대기자 〈리서치센터 국장·칼럼니스트〉
■ 그들은 왜 남묘호렌게쿄를 외울까
■ 법당도 승려도 없었다…설교보다 삶이 먼저였던 좌담회,
150만 회원의 의미까지 짚었다
■ 낯선 주문처럼 들렸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처음 들으면 주문처럼 들린다.
누군가는 일본 종교라고 하고, 누군가는 불교라고 말한다.
기자가 궁금했던 것은 논쟁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는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왜 같은 말을 반복하는가.
지난 9일 저녁, 서울 용산 서빙고지역에서 열린 한국SGI 구역 좌담회를 찾았다.
특정 종교를 비판하거나 홍보하려는 취재가 아니었다.
회원들이 무엇을 믿고, 그 신앙을 일상의 삶과 어떻게 연결하는지 직접 보기 위한 현장 취재였다.
■ 법당도 승려도 없었다
첫인상은 예상과 달랐다.
웅장한 법당도 없었다.
종교적 권위를 드러내는 승려도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공간에 회원들이 하나둘 모였다.
서로 안부를 묻고 웃으며 자리를 잡았다.
잠시 뒤 참석자들은 법화경(法華經) 일부를 읽는 근행(勤行)을 했다.
이어 같은 말을 반복해 불렀다.
남묘호렌게쿄.
남묘호렌게쿄.
남묘호렌게쿄.
처음에는 낯설었다.
시간이 흐르자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일정한 호흡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정면을 바라보며 또렷하게 따라 했다.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흩어진 생각을 거두고 자신의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시간에 가까워 보였다.
한국SGI는 이 수행을 창제(唱題)라고 설명한다.
남묘호렌게쿄를 반복해 부르며 자신의 생명 안에 있는 불성과 지혜, 용기와 자비를 일깨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 종교 이름이 아니었다
남묘호렌게쿄는 종교단체의 이름이 아니다.
한자로는 남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이라고 쓴다.
남무는 귀의하거나 몸과 마음을 맡긴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묘법연화경은 대승불교 대표 경전 가운데 하나인 법화경의 정식 명칭이다.
이를 풀면 묘법연화경에 귀의한다는 뜻에 가깝다.
이를 신앙 수행의 중심에 세운 인물은 13세기 일본 승려 니치렌(日蓮)이다.
니치렌은 모든 사람이 불성을 지니며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강조했다.
한국SGI의 교리적 뿌리도 이 니치렌 불법에 닿아 있다.
■ 구역예배와 닮았지만 달랐다
좌담회는 기독교의 구역예배나 가정예배와 닮은 점이 있다.
생활권이 가까운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목회자나 성직자가 설교를 주도하는 구조와는 달랐다.
이날 모임도 지역 회원이 직접 진행했다.
근행과 창제 뒤 교재를 읽고, 참석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한국SGI는 좌담회를 신앙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고 설명한다.
지역 문화회관에서 열리기도 하고, 회원들의 집을 돌아가며 개최하기도 한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국SGI 본부 이케다기념강당 전경. 한국SGI는 지역 문화회관과 구역 좌담회를 중심으로 신앙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한국SGI 자료
■ 이날 교재는 현불미래기
참석자들이 이날 함께 읽은 배독어서는 현불미래기(顯佛未來記)였다.
한국SGI 교재에 따르면 현불미래기는 니치렌이 1273년 사도 유배지에서 쓴 글이다.
제목은 부처의 미래기를 나타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법화경의 가르침을 부처 사후 누가, 어떻게 전할 것인지를 다룬 글이다.
▲한국SGI가 2026년 7월 서빙고 좌담회에서 사용한 배독 교재 현불미래기. 니치렌이 1273년 사도 유배지에서 쓴 어서의 배경과 법화경 유통의 계보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철성 기자
교재에는 창가학회 3대 회장 이케다 다이사쿠의 지도문도 실렸다.
인간혁명과 생명존엄, 평화, 광선유포라는 단어가 반복됐고, SGI가 세계 192개국 및 지역으로 확대됐다는 자체 설명도 담겼다.
두려움이나 심판보다 한 사람의 변화와 미래를 강조하는 내용이 중심이었다.
■ 설교보다 삶이 먼저였다
좌담회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것은 일방적인 설교가 아니었다.
회원들의 삶이었다.
건강 문제를 겪은 이야기, 가족과의 관계를 돌아본 이야기, 직장에서 흔들렸던 시간을 견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극적인 기적담은 나오지 않았다.
한 참석자는 말했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제 마음부터 바꾸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힘든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견디고 넘어설 힘이 생겼다는 취지로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힘든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겨낼 힘이 생겼습니다.”
교재에서 말하는 인간혁명(人間革命)도 같은 방향으로 설명됐다.
세상을 단숨에 바꾸겠다는 선언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과 말, 행동을 바꾸는 것.
어제의 자신보다 오늘의 자신이 조금 더 성장하는 것.
회원들은 그것을 신앙 실천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고난을 성장의 계기로 바꾼다는 변독위약(變毒爲藥), 운명을 체념하지 않고 삶의 방향을 바꾼다는 숙명전환(宿命轉換)도 같은 맥락이었다.
■ 1930년 일본에서 시작됐다
창가학회는 1930년 일본에서 교육자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와 도다 조세이가 설립한 가치창조교육학회에서 출발했다.
한국SGI는 1961년 재일교포 회원들을 통해 신앙이 전해졌고, 1963년부터 조직적인 활동이 본격화됐다고 설명한다.
초기 정착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964년 당시 문교부 종교심의회는 창가학회를 반국가적·반민족적 성격의 집단으로 판단했고, 같은 시기 정부는 포교금지 방침을 세웠다.
이후 신앙과 집회의 자유를 둘러싼 법적 다툼에서 신자 측이 승소하며 활동이 이어졌다.
1975년 서울 신설동에 중앙사무국이 설치됐고, 2000년 재단법인 한국SGI가 출범했다.
■ 승려 없는 재가불교
한국SGI에는 승려가 없다.
전문 종교인이 아니라 회원들이 좌담회를 진행하고, 교재를 읽고, 체험을 나눈다.
창가학회는 재가 신앙운동으로 출발했다.
오랫동안 일본 니치렌쇼슈(日蓮正宗)와 관계를 맺었지만 1990년대 초 결별한 뒤 승려 조직과 분리된 재가 신앙공동체로 독자 노선을 강화했다.
한국SGI 역시 사찰보다 문화회관과 지역 조직, 좌담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신앙을 가정과 직장, 인간관계 안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를 강조한다.
■ 광선유포, 가치 확산과 포교 사이
좌담회에서 인간혁명과 함께 반복된 또 하나의 말은 광선유포(廣宣流布)였다.
법화경의 가르침을 널리 전한다는 뜻이다.
한국SGI는 이를 생명존엄과 평화의 가치를 사회에 확산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활동도 광선유포의 중요한 실천으로 다뤄진다.
광선유포에는 평화와 생명존엄이라는 가치 확산과 종교적 포교라는 두 성격이 함께 있다고 볼 수 있다.
■ 이케다 다이사쿠를 보는 두 시선
한국SGI 교재에는 이케다 다이사쿠의 지도문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회원들은 그를 이케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니치렌 불법을 현대사회에 확산한 스승으로 받아들인다.
스승과 제자가 같은 목적과 책임을 공유한다는 사제불이(師弟不二)의 정신도 강조한다.
교재와 학습 자료에서 이케다의 글이 비중 있게 사용된다는 점은 한국SGI 신앙문화에서 그의 위치가 작지 않음을 보여준다.
반면 일부 탈퇴자와 비판자는 지도자 개인에게 권위가 지나치게 집중됐다고 지적한다.
회원들은 신격화가 아니라 신앙과 삶의 실천을 배운 스승에 대한 존경이라고 설명한다.
어느 한쪽의 주장만으로 이케다의 위치와 창가학회 문화를 모두 규정하기는 어렵다.
회원들의 신앙적 해석과 외부의 비판을 함께 놓고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 150만 명, 무엇을 기준으로 셌나
한국SGI는 SGI가 세계 192개국 및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 회원은 약 150만 명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150만 명이라는 숫자의 집계 기준은 공개 자료만으로 분명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현재 정기적으로 좌담회나 신앙 활동에 참여하는 인원인지, 과거 입회자를 포함한 누적 회원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가족 단위로 집계되는지, 장기간 활동하지 않는 회원이나 탈퇴자는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공개된 기준이 뚜렷하지 않다.
세계 192개국 및 지역이라는 수치 역시 각 지역에 독립 법인이 있다는 뜻인지, 회원이나 연락 조직이 존재하는 곳까지 포함한 것인지 구체적인 산정 방식이 필요하다.
숫자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공적인 기사에서 인용하려면 한국SGI와 SGI가 밝힌 자체 통계라는 점과 집계 기준이 외부에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함께 적는 것이 타당하다.
■ 이해와 검증은 함께 가야 한다
한 번의 좌담회로 한국SGI 전체를 말할 수는 없다.
기자가 참석한 이날 모임에서는 강한 입회 권유나 과장된 분위기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국의 모든 좌담회가 같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지역과 진행자, 참석자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현장에서 보지 않은 것을 봤다고 쓸 수 없듯, 확인되지 않은 비판을 사실처럼 쓸 수도 없다.
종교를 이해하려면 단체의 설명과 현장의 모습, 역사적 기록과 외부의 평가를 구분해 함께 살펴봐야 한다.
적어도 이날 만난 사람들에게 남묘호렌게쿄는 기적을 부르는 주문이 아니었다.
자신을 돌아보고, 고난을 견디며,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실천의 언어였다.
처음에는 낯선 주문처럼 들렸다.
좌담회가 끝날 무렵에는 자신의 삶을 붙잡기 위해 반복하는 다짐처럼 들렸다.
그 설명에 동의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이해와 검증은 어느 한쪽도 빠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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