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98번째 레터
는
20년 만에 돌아온 속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입니다. 29일 개봉을 앞두고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8일 내한 기자간담회
를 했는데,
간담회 하루 전에 맛보기 시사회
를 했습니다.
20분쯤 일부 분량만 보여주는
거에요. 기자들이 질문을 하려면 내용을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하니까요. 정식 시사는 아마 개봉 직전에 할 것 같습니다. 저희 지면에 두 배우의 간담회 기사가 나간 후에 주변 반응을 보니 다들 이번 속편에 대해 관심이 많더군요. 그래서 맛보기 시사회에서 본 2편이 어땠는지, 빨리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번 레터 준비했습니다. 저는 약간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여러분 의견은 어떠실지, 개봉 기다리시면서 들어보시죠.
8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답변하고 있는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입니다. 일본을 거쳐 한국, 다음에 중국으로 건너가는 바쁜 일정으로 열심히 영화 홍보 중인 두 사람, 속편에선 둘 사이가 어떻게 될지 개봉이 무척 기다려집니다./장련성 기자
제가 위에서 약간 걱정된다는 표현을 썼는데, 어디까지나 20분 분량의 공개된 부분만 보고 드리는 말씀이라는 점, 감안해서 들어주세요. 20년 전이면 강산이 두 번이 변할 시간인데 여전히 많은 분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편을 기억하는 힘, 그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저는 ‘악마’ 미란다(메릴 스트립)를 이해하게 된 앤디(앤 해서웨이)의 자기 발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이 원작 소설과도 다른데요, 영화만 보신 분들은 아마 소설 읽으면 실망하실 거에요. 소설의 앤디는 아무런 발전이 없거든요. 아마 원작자 로렌 와이즈버거가 보그에서 일할 때 안나 윈투어를 진짜로 내내 미워만 했나봅니다. 정말로 아무 것도 배울 사람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거나 그런 부분을 살려주기 싫었거나.
영화는 그야말로 환골탈태, 미란다와 앤디, 앤디와 에밀리, 앤디와 나이젤이 서로를 알아봐주고 인정해주면서 한 발짝씩 나아가는 스토리가 탄탄하죠. 원작에는 그런 얘기가 전혀 없어요. 영화 마지막 부분에선 각자의 길을 가면서도 응원해주고, 특히 미란다는 기어이 기자를 하겠다는 앤디를 냉정하면서도 따뜻하게 보내줍니다(미란다로서는 그 정도면 엄청나게 따뜻한 걸로).
8일 오전 내한 기자간담회를 마친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오후에 열린 레드카펫 행사에 참여한 모습입니다. 사진도 찍고 팬들도 만나고 싸인도 하고 두 분이 이날 종일 바쁘셨네요./뉴스1
자, 이런 엔딩을 본 우리에게 20년 후의 그들을 보여주겠다고 나섰으면,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까요. 2편은 마치 20년 전 그들이 쌓았던 관계가 아예 없었던 것처럼 시작합니다. 그냥 가볍게 알아보는 정도?
1편에서 20년이 흐른 후
,
22살이던 앤디는 원하던 대로 기자가
됐고, 40대 중견 기자로 기자상도 받습니다. 영화는 시상식장에서 앤디가 해고 통보를, 그것도 문자로 받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경영난에 시달리던 회사가 여러 기자를 동시에 해고합니다. 같은 시기
미란다의 잡지 ‘런웨이’는 스캔들 기사가 터지면서 휘청이고
, 사태 수습을 모색하던 ‘런웨이’ 회장(1편과 같은 배우가 맡았어요)이 때마침 직장을 잃은 앤디를 ‘런웨이’ 기자로 고용해요. 미란다는 출근한 앤디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데, 이거야 미란다의 캐릭터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옆에 있던 나이젤도 앤디를 무시하다시피 하다니. 1편에서 애써 쌓아놓은 관계를 무너뜨리고 무엇을 얻으려 한 것인지, 이야기 후반부를 봐야 확인되겠지만 현명한 선택인지 모르겠군요. 앤디에게 패션의 눈을 뜨게 해줬던 나이젤이 1편 초반보다도 못한 무관심으로 앤디를 맞다니.
에밀리는 디올의 임원
으로 나와요. 이 부분은 흥미롭죠. 디올은 ‘런웨이’의 주님, 정확하게는 광고주님이시니까요. 스캔들로 광고를 잃을 위기에 처한 ‘런웨이’의 미란다에게는 ‘디올’이 갑이니, 에밀리와 미란다의 관계가 역전된 모습입니다. 미란다의 한마디에 쩔쩔 매던 1편의 에밀리와는 격세지감. 에밀리는 미란다와 함께 디올을 방문한 앤디를 보고 깜짝 놀라는데 역시나 알아보는 정도이지 한때의 전우를 인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요. 아, 20년 세월은 어디에.
그들의 관계를 당황스러울 정도로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새로 시작하도록 설정한 것은 아마도 2편의 이야기 구도를 짜기에 편해서 그랬을 것 같습니다. 앤디는 다시 미란다의 인정을 받고 자기를 증명하려 애쓰고, 나이젤은 또 앤디에게 패션 세계의 문을 열어보여주고요. 1편의 유효타를 재현할 수 있는 설정인데, 나이젤이 1편에서 런웨이의 화려한 옷장을 열어 앤디를 완전히 탈바꿈시켜줬던 장면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신이 나옵니다. 그래도 20년 후 디지털 격변이라는 사회 변화는 그대로 가져가면서 관계의 역사만 원점으로 돌려놓은 건 1편의 엔딩을 기억하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운 부분이네요. 속편이 나올 때마다 그간의 기억을 다 지우고 시작해야 하는 걸까요.
8일 오후 레드카펫 행사장에서 마주 보고 웃는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 영화의 미란다와 앤디도 서로를 보고 이렇게 환하게 웃어줄지 궁금하네요./뉴스1
그러나 고작 20분만으론 영화가 어떻다고 결론내릴 순 없죠. 후반부에 “사실은 말야~” 하면서 숨겼던 속내를 보여줄지도요. 1편에서
미란다가 처음으로 앤디의 이름을 불러줬던 장면
을 기억하시나요. 앤디가 자신의 이름을 안드레아라고 알려줘도 굳이 ‘에밀리’라고 불렀던, 개별 인격체가 아니라 ‘에밀리1′ ‘에밀리2′처럼 언제든 갈아치울 소모품으로 여겼던 미란다가 앤디의 철저한 일처리를 확인하더니
“안드레아, 오늘밤엔 네가 책을 갖고 우리집으로 와, 에밀리한테 열쇠 받아서”
라고 합니다. 이 말을 하기 직전에 미란다가 앤디를 흘깃 다시 쳐다보는데 이런 사소한 디테일까지 살린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새삼 감탄스러웠던 장면이었조. 이때 비로소 앤디는 많고 많은 에밀리 중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과 자리를 가진 안드레아가 됩니다.
다른 영화였다면 묻혔을 수 있을텐데 미란다가 워낙 보통 사람이 아니니 이름 한 번 호명도 의미가 남달랐던 장면, 이런 생생함이 2편에도 살아있다면 1편만큼이나 오래 기억될 작품이 될 수 있겠지요. 저도 좋아하는 영화이기에 여러분과 함께 29일 개봉을 기다려 보려합니다. 전체 영화는 시사회 이후에 다시 레터로 보내드릴게요.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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