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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권력의 원천은 덕(德)에 있다

고전여담에 ‘문정경중(問鼎輕重)’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물을 문(問), 청동솥 정(鼎), 가벼울 경(輕), 무거울 중(重)‘자를 쓴다. 한마디로 풀으면 '솥의 무게를 묻는다’는 말이다.

권력의 원천은 덕(德)에 있다

[충청산책] 김법혜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고전여담에 ‘문정경중(問鼎輕重)’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물을 문(問), 청동솥 정(鼎), 가벼울 경(輕), 무거울 중(重)‘자를 쓴다. 한마디로 풀으면 '솥의 무게를 묻는다’는 말이다. 중국 역사에서 ‘정’(鼎)은 세 개의 다리와 두 개의 귀(손잡이)가 달린 청동 솥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의 귄위를 상징한다.

가정에서 쓰는 가마솥인 ‘부’(釜)와는 다르다. ‘정(鼎)’은 고대 전설속 우(禹) 임금과 관련이 있다. 우 임금은 순(舜)의 뒤를 이어 천자가 된 후 천하를 아홉 주(九州)로 나눠 다스렸다. 구주의 관리들에게 각각 동을 바치게 해 그것으로 구주의 평화를 상징하는 아홉 개의 솥, 즉 구정(九鼎)을 만들었다.

구정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제기로 사용했으며 이후 천자의 상징물이 됐다. 정의 발은 세 개인데 이는 삼공(세 사람의 정승)의 대신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문정경중’은 이 청동솥의 가볍고 무거움을 묻는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역사서인 ‘춘추좌씨전’ 선왕 3년에 있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초나라 장왕이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육혼(지금의 허난성 뤄양시의 동남)에 사는 융족을 정벌하고 낙하에 이르렀다. 그는 천자의 나라인 주(周) 도성 교외에서 열병식을 가지며 세력을 과시했다. 주의 정왕은 장왕의 세력에 놀라 왕손만을 보내 장왕을 위문했다.

그러자 장왕은 왕손만에 구정의 대소와 경중에 관해 물었다. 왕손만은 장왕이 천자의 자리를 엿보고 있음을 눈치 채고 “(천자의 자리는) 덕행에 있지 정에 있지 않습니다”고 대답했다. 이어 “세상에 덕행이 행해지면 구정은 작아지지만 무거워져서 옮기기 어렵고 세상이 혼란해 간사한 사람이 들끓으면 구정은 커지지만 가벼워져서 쉽게 옮길 수 있었다.

주 왕실의 덕정이 비록 미약하기는 하지만 하늘의 뜻은 바뀌지 않았다. 백성을 다스리는 천자의 권위는 덕행에 있는 것이지 결코 구정이라는 물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은 초나라로 돌아 갔다. 하늘이 천자나 왕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백성과 더불어 어려움과 기쁨을 나누라는 뜻이다.

때문에 권력의 원천은 솥의 무게가 아니라 리더의 ‘덕’(德)에 있다. 오늘날에도 앉은 자리(지위)만 믿고 부덕한채 떵떵거리는 리더들이 적지 않다. 귀를 열고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정’(鼎)보다 앞서는 것을 모른다. 권력을 잡았다고 모든 것을 ‘상거래’로 치부하듯 하는 세상이라면 대학교수는 일개 노동자로 몸가치를 낮추어 준 노조 역할을 하는 단체를 만들어 처우 개선이나 문제를 삼으며 경영층과 맞설 것이다.

또 목사와 신부, 스님들은 절이나 교회를 신도와 돈을 흥정하는 상거래 장소로 그 품격을 떨어뜨려 장사꾼이 되고 의사들도 환자의 질병 치료보다는 어떻게 하면 환자로부터 돈을 더 많이 받아낼 것인가에 열중할 것이다. 나라와 사회가 이렇게 되어 간다면 과연 나라는 어떻게 될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정치다. 정치란 원래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다. 나라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 자기의 영역에서 열심히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을 해야 된다. 그런데도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은 이러한 예우와 특권을 사물시하여 나라에 해가 되는 일을 거듭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많은 정치인은 당이 바뀌자 말자 손바닥을 뒤집듯 태도를 바꾸어 애국자로 칭송하며 여태까지의 자기주장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신병자처럼 변신을 하는 정치인이 비일비재하다. 이것이 ‘저질정치’ 가 아니고 무엇인가?

생각하면 이런 괴행위들을 서슴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권력 탈취를 하겠다는 목적 때문이 아닌가? 권력은 무엇 때문에 획득하려 하는가? 그것이 다른 어떤 장사보다도 남는 장사라고 여기기 때문에 획득하려 하는가? 문제는 우리나라의 법이 무른 데에 있다.

아무리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하였다 해도 정치인들에 대한 양형은 가볍다. 가벼울 뿐 아니라 구속정지, 감형, 사면 등으로 곧 풀려나 복권된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입후보하여 원래의 감투를 쓴다. 그러므로 불법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이 바보다.

형무소를 다녀온 사실은 투쟁경력으로 간주 된다. 따라서 하다못해, 이른바 '닭장정차'라도 탔던 전력이 있어야 정치인으로 행세할 수 있다. 전과자라는 것은 흠이 되는 것이 아니라 훈장이 된다. 새삼스럽게 사찰을 하지 않더라도 국민은 알 것은 다 알고 있다.

저들이 언제, 어떤 상황이 되면, 어떤 행위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장난을 쳐서는 안된다. 그대들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다는 냉엄한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권력의 원천은 솥의 무게가 아니라 리더의 ‘덕’(德)에 있다는 문정경중(問鼎輕重)이란 고사성어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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