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주 한국엔젤투자협회 전략실장
매년 6월이면 전 세계 창업 관계자들의 이목이 스타트업지놈에서 발표하는 글로벌 창업생태계 보고서(GSER)에 집중된다. 다가오는 2026년 공개를 앞두고 올해 서울이 거둘 성적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서울은 2019년 30위권 밖에 머물렀으나 2023년 12위, 2024년 9위를 거쳐 2025년에는 세계 8위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러한 화려한 지표 뒤에는 우리가 직시해야 할 국내 생태계의 지역 간 격차라는 무거운 과제가 도사리고 있다. 또 다른 조사기관인 스타트업블링크에 따르면 2025년 서울은 세계 20위에 안착할 동안 국내 2위 도시인 대전은 366위에 머물렀다. 서울이 글로벌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이, 비수도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 놓여있다.
창업하기 좋은 도시의 진정한 조건은 물리적 인프라 조성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자본의 흐름에 있다. 실제로 글로벌 선도 도시들은 지역의 고유 자산과 모험 자본이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선순환 구조를 통해 성장해 왔다.
실리콘밸리와 중국 선전의 사례는 자생적 생태계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실리콘밸리의 고성장 저력은 대학의 원천기술 공급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선배 창업가들이 직접 엔젤투자자로 나서 초기 리스크를 분산하고 후기 벤처캐피털(VC)로 바통을 넘기는 시장 메커니즘을 안착시킨 덕분이다. 또한 선전은 텐센트나 BYD와 같은 대기업, 지역의 공급망, 벤처투자, 오픈이노베이션이 결합한 생태계를 통해 하드웨어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해 왔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자본과 기술이 현장에서 긴밀하게 결합하는 민간주도형 투자 생태계를 확립했다는 점이다.
반면 국내 벤처 시장은 그간 양적으로 크게 팽창해 왔으나, 민간 자본의 자생적 유입 기반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취약하다. 이처럼 투자 환경의 민간 역동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공공 재원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확장을 제약하는 병목현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민간 초기 자금의 상당수가 수도권에 쏠려 있어 기술 공급 능력은 뛰어나지만 금융 부담이 높은 비수도권 거점들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공간과 인력 공급 중심의 ‘창업 인프라’와 초기 자본의 선순환을 견인하는 ‘투자 인프라’가 균등하게 맞물리지 못하면, 아무리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지역 생태계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결국 창업하기 좋은 도시는 일률적인 예산 집행이 아니라, 각 도시의 생태계를 정밀히 진단한 후 처방하는 전략적 차등 거버넌스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동일 지원의 평등이 아니라 단계별 지원의 형평이다. 대전의 경우 우수한 기술 전문가들을 로컬 엔젤투자로 제도화하는 체계가 효과적일 것이며, 후발 지역들은 각자의 특성에 맞춰 지자체 출자형 앵커펀드나 연고 네트워크를 다각화하는 자본과 인재, 규제 설계가 필요하다. 이제는 선언적 구호를 넘어 지역별 역량에 부합하는 정밀한 로컬 투자 거버넌스를 구축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 전역이 자생력을 갖춘 진정한 지방시대가 열릴 것이다.
김미주 사단법인 한국엔젤투자협회 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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