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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과제할 때 AI 쓰는 대학생인데요, 제가 점점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 AI 인공지능을 활용해 모르는 개념을 이해하는 모습 ⓒ 김혜윤 처음에는 모르는 거나 헷갈리는 개념을... ▲ 인공지능 AI를 활용해 내 생각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과제가 완성되는 모습 ⓒ 김혜윤 예전에는 하나의...

과제할 때 AI 쓰는 대학생인데요, 제가 점점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편리함 속에서 잃어버린 '내 생각'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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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명공학부에 재학 중인 26학번 새내기 대학생이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수많은 과제 속에서 가장 먼저 터득한 것은 전공 지식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과제를 끝낼 수 있는가'였다. 이 질문에 가장 빠른 답을 주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었다.

입학 전까지만 해도 대학 생활은 '전공과 관련한 공부를 더 깊이 있게 하는 곳'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스스로 탐구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막상 학기가 시작되고 나니 현실은 조금 달랐다. 매주 쏟아지는 과제로 인해 '깊이 있는 공부'보다 '버텨내는 것'이 우선이 되었다.

처음에는 모르는 거나 헷갈리는 개념을 물어보는 정도였다. 강의 시간에 이해되지 않았던 개념을 물어보면 직접 검색할 때보다 훨씬 명쾌하고 깔끔한 해설이 돌아왔다. 복잡한 이론도 예시를 곁들여 쉽게 풀어주는 덕분에 공부의 흐름이 수월해졌고, 혼자 끙끙대던 시간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보조도구'였다.

생각이나 느낀 점을 작성해 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단순한 질문을 넘어 과제 자체를 인공지능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주제만 입력하면 개요부터 문장 구성까지 자연스럽게 제안해 주었다. 내가 쓴 초안보다 더 매끄럽고 그럴듯한 결과물이 눈앞에 있는데, 굳이 고생하며 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과제를 완성하는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렇게 과제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창을 여는 일이 되었다. 인공지능은 과제의 일부가 되었고, 어느새 중심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제를 제출할 때마다 묘한 공허함이 밀려왔다. 문장은 논리적이지만 그 안에 '내 생각'은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예전에는 하나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다. 교재를 반복해서 읽고, 문제를 다시 풀어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시간이 나를 성장시켰지만 이제는 그 과정이 증발하고 있다. 모르는 것이 생겼을 때 느껴지는 당혹감과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 사이에 인공지능이라는 너무나도 쉬운 지름길이 놓였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공부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점점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질문이 생기면 스스로 답을 찾기보다 '어떻게 질문해야 AI로부터 좋은 답을 얻을까'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사고의 출발점이 나 자신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은 분명 유용한 과학기술이다.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정리해 주고,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 주며, 학습의 효율을 높여준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커질수록, 한 가지 질문이 나를 계속해서 따라왔다. '나는 지금 제대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AI가 내놓는 답은 늘 그럴듯하지만, 그 답에 이르는 계단을 내가 직접 오르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이 낯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리함 대신 생각하는 과정을 선택했다

요즘은 일부러 사용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제를 시작할 때 바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켜지 않고, 먼저 혼자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주제를 보고 내가 아는 범위에서 개요를 짜보고, 어떤 방향으로 글을 풀어갈지 고민한다. 그리고 정말 막히는 지점에서만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다.

또한 인공지능이 제시한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그 내용을 다시 검토하려고 한다. 왜 이런 구조로 글이 구성되었는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수는 없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때로는 인공지능의 답을 일부러 비판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단순히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방식은 분명히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효율만 따진다면 이전 방식이 훨씬 편하다. 하지만 과제를 제출하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분명 달라졌다. 적어도 '이건 내가 고민해서 만든 결과물이다'라는 확신이 생기게 되었다.

과학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왔다. 계산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수학이 사라지지 않았고, 검색 엔진이 있다고 해서 지식의 가치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있는 기술이다. 단순한 보조를 넘어, 사고와 표현의 영역까지 깊이 개입하고 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오늘도 나는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곁에 두기로 한다. 화면 속 인공지능에게 정답을 구하기 전, 텅 빈 백지 위에 나의 서툰 질문들을 먼저 채워 넣는 것. 기술이 나의 사고를 대신하게 두지 않고, 그 기술을 발판 삼아 한 단계 더 깊은 사유로 나아가는 것. 어쩌면 이 사소하고도 치열한 고집이야말로,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기본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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