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졸업 후, 학자 아닌 관료 택해
정책에 기술 융합, 돌봄·의료와 AI 협업
기술 인재 갈수록 중요, 두 사람도 조명
서민수(오른쪽) 돌봄기술혁신팀 과장과 박정환 보건의료데이터진흥과장이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의료·돌봄 등 보건복지는 인공지능(AI)의 도움이 절실한 분야로 꼽힌다. 사람의 손이 닿지 못하는 돌봄 공백을 AI가 메워주고, 고령화로 늘어가는 의료 수요도 AI를 통해 대응할 수 있어서다. 보건복지부가 AI 전환에 속도를 내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 최전선에는 한때 과학도였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동문인 공무원 2명이 있다. 서민수(48) 돌봄기술혁신팀 과장과 박정환(42) 보건의료데이터진흥과장이다.
청춘 시절 꿈꿨던 과학자가 아닌 공무원이 된 서 과장과 박 과장은 요즘 AI를 돌봄, 의료 정책에 어떻게 접목할지 연구 중이다.
대학생 때만큼 과학도 본성을 발휘하고 있는 두 사람을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만났다.
과학고를 졸업한 두 사람은 카이스트에 입학해 전형적인 과학도의 길을 밟던 중 공직사회에 눈을 떴다.
전산학과 95학번인 서 과장은 사회복지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봉사 활동을 계기로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사회 정책에 기술을 입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명공학과 02학번인 박 과장은 공부할수록 학문을 뒷받침하는 예산, 규제 완화 등의 중요성을 느끼고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지금은 관료가 카이스트 학생들의 직업 선택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는 전공을 이어가며 연구, 창업하는 것만이 정답처럼 여겨졌다. 진로를 공무원으로 정했다고 하자 꾸짖은 교수도 있었다고 한다. 서 과장, 박 과장은 곱지 않은 시선을 이겨내고 한 해 10명 안팎 뽑는 행시 전산직을 통과해 각각 2008년, 2011년 희망 부처 1순위였던 복지부에 들어왔다.
복지부에는 관행이 있었다. 일반 행정직, 사회복지직으로 공직을 시작하지 않은 직원도 복지, 보건 업무에 두루 기용해왔다.
서 과장, 박 과장 역시 전산직의 주된 업무인 부처 내 시스템, 메신저, 홈페이지 관리뿐 아니라 다른 행시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행정 업무를 맡았다.
코로나 때 출입 QR코드, 밤새 뚝딱
서민수 돌봄기술혁신팀 과장이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이들은 복지, 보건 정책에 기술을 융합하는 일에서 성과를 냈다.
박 과장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초기인 2020년에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는 동시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라앉는 경제도 지키는 방역 조치를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동료들과 밤을 새워 만든 게 QR코드를 활용한 출입 인증 애플리케이션(앱)이었다.
이 앱은 같은 해 7월 노래방, 뷔페 음식점 등 고위험시설군부터 적용돼 감염자 경로를 파악하고 추가 감염을 차단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출입 장소 기록은 정부, 인적 정보는 QR코드를 실제 운영한 네이버, 카카오 등이 가져가 개인 정보 유출 우려를 해소했다.
박 과장이 '정보를 두 명 이상 나눠 가지면 안전성이 크게 올라간다'는 암호학의 기본 원리를 앱에 적용한 덕이다.
서 과장은 2018년 도입된 아동수당을 담당해 신청 간소화를 정착시켰다. 지금은 모든 아동에 지급하지만 제도 도입 초기에는 소득 상위 10%는 제외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자신이 하위 90%에 속한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서류를 제출해야 했고 공무원은 조사 부담이 컸다.
그는 컴퓨터 전공자답게 공적 자료 자동 입력 등을 통해 복잡했던 아동수당 신청을 클릭 몇 번이면 끝내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이 작업들은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모든 아동으로 넓히는 근거로도 활용됐다.
소득 상위 10%에 주는 아동수당 총액이 이들을 가려내는 행정 비용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아 차라리 보편 지급이 예산을 아낄 수 있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올해 초 AI 관련 업무를 맡는 현재 과로 발령 나면서 물을 만났다. 박 과장의 주요 업무는 의료와 AI 간 협업 방안을 찾는 것이다. 이미 의사들이 AI를 진단·진료의 도우미로 쓰는 등 의료 현장에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
기술 토대로 정책 설계, 재능 보여
박정환 보건의료데이터진흥과장이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심장을 동영상으로 찍어 분석하는 심장초음파를 예로 들어보자. AI는 분석을 1분 안에 끝낼 수 있어 사람이 할 때와 비교해 시간을 10분의 1로 줄였다. 다만 이런 기술은 재원이 넉넉한 수도권 대형 종합병원 위주로 이용한다.
이에 박 과장은 '공공의료 AI 고속도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지방국립대병원, 지방의료원도 수도권 종합병원 못지않게 AI를 이용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AI 의료 기술을 개발·발전시키는 국내 기업에 재정을 투입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서 과장은 고령화로 커지는 돌봄 수요를 기술로 보완하는 정책을 고민한다.
현대차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같은 피지컬 AI를 돌봄 분야에 적용하는 건 중장기 과제다. 로봇이 규격화된 일을 반복해 대처하기 쉬운 산업 현장과 달리 돌봄 현장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갑자기 넘어지는 등 예측하기 어려운 일도 많아서다.
서 과장이 집중하는 건 간병인, 요양보호사 등 돌봄 인력과 AI 간 협력이다.
돌봄 인력은
노인
자택을 방문해 하루 4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들이 보살필 수 없는 나머지 20시간의 공백을 기술로 메우는 체계를 구상하고 있다.
예컨대 다양한 전자기기가 AI를 활용해 수집한 정보들은 돌봄 인력에게 꼭 필요하다.
말벗을 하는 AI 스피커가 노인의 정서 변화·인지 능력 저하를 판단하거나 레이더 센서로 숙면, 낙상 등을 파악하면 돌봄 인력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서 과장은 여러 기기에서 모이는 정보를 종합 분석하는 스마트홈 시범 사업을 통해 연말 시험 모델을 공개할 계획이다.
공직사회에서 기술 전문가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면서 두 사람도 조명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포부를 묻자 "정책 현안을 기술을 바탕으로 한 종합적 시각에서 보면 더 잘 풀린다는 생각으로 계속 일하겠다"(박 과장), "돌봄은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지만 정부가 해답을 찾는 과정에 기여하고 싶다"(서 과장)며 웃음 지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