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시작해 신념으로 끝나는 책, 그것이 공공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었다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다 — 이 이야기는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
공공도서관에 갔다가 책 한 권 앞에서 멈췄다. 공룡을 다룬 책이었다. 처음에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공룡의 특징과 생태를 설명하는 평범한 내용이 이어졌다. 그런데 중반을 넘기면서 흐름이 달라졌다.
고대 유물 속 공룡 그림이 등장하고, 인간이 공룡을 타고 다녔다는 서술로 이어지더니,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까지 연결됐다. 창세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삽입되고, 진화론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처리됐다. 공룡은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졌으며, 인간과 함께 '여섯째 날'에 등장했다는 서술까지 나왔다.
단순히 틀린 정보라고 보기에는 구조가 너무 정교했다.
이카 스톤은 이미 위조로 판명된 유물이고, 인간과 공룡이 같은 시대에 공존했다는 주장은 지질학적·고생물학적 증거와 배치된다. 공룡을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과학의 언어를 빌린 상상이다. 진화론은 화석, 유전학, 비교해부학 등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복수의 증거 체계 위에 선 이론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구성 방식에 있다. 앞부분의 과학적 서술이 독자의 신뢰를 먼저 확보한다. 그 신뢰 위에 의문을 조심스럽게 얹고, 마지막에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봉합한다. 독자는 스스로 판단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이미 설계된 내러티브를 따라온 것이다.
PR 커뮤니케이션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것은 신뢰성 이전(Credibility Transfer)의 전형적인 구조다. 검증된 정보를 앞세워 출처 신뢰도를 구축한 뒤, 그 위에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얹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책은 공공도서관에 꽂혀 있었다. 그 배치 자체가 '지식'이라는 맥락을 부여한다.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문제의 밀도가 달라지고 있다. 정보 소비의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정보를 하나씩 검색하고 검증하지 않는다. 이미 정리된 '답변'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정보를 소비한다. 그 과정에서 이렇게 설계된 서사는 사실로 더 매끄럽게 작동한다. 질문이 아니라 결론을 소비하는 구조 속에서, 설계된 이야기는 훨씬 더 빠르게 수용된다.
그래서 핵심 질문은 단순해진다. 이 정보는 맞는가, 틀린가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나를 어디로 끌고 가고 있는가.
결국 문제를 제기했다. 이 책은 과학인가, 신념인가, 아니면 해석인가. 다행히 도서관 측은 이를 받아들였고, 해당 책은 서가에서 내려갔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서관 관계자들 역시 이 책이 어떻게 입고됐는지를 의아해했다는 사실이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문제가 된 것은 특정 책 한 권이 아니라, 큐레이션 없이 정보가 유통되는 구조 자체였다.
지금 시대의 진짜 문제는 틀린 정보의 존재가 아니다. 그 정보가 아무런 구분 없이 들어오고, 어떤 설명도 없이 소비되는 구조다. 공공 영역이 정보의 맥락을 제공하지 못할 때, 설계된 서사는 빈자리를 빠르게 채운다. 그리고 AI가 매개하는 정보 환경에서 그 속도는 더 빨라진다.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메시지는 항상 설계된다. 문제는 그 설계를 읽어내는 능력이 대중에게도, 기관에게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글] 홍보전문가 이우람 (PR펌 바다와하늘처럼 대표, 전 문화뉴스 편집인)
이우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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