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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공감]손절월드

한국인에게는 천사와 악마보다 더 와닿는 양극단이 있다. 바로 ‘호구’와 ‘진상’이다.

[공감]손절월드

한국인에게는 천사와 악마보다 더 와닿는 양극단이 있다. 바로 ‘호구’와 ‘진상’이다.

사람들의 관심과 체류 시간이 곧 수익이 되는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에서 분노는 돈이 되는 감정이다. 우리는 ‘레전드 진상’ 사연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댓글을 달고 공유하며 함께 분개한다. 그리고 그 ‘진상’이 모두의 비난을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 손절당하기를 바란다. 그러다보니 쇼트폼이나 ‘판춘문예’에서 ‘사이다’라 불리는 인기 콘텐츠는 주로 손절 엔딩이기 마련이다. 부부라면 이혼, 연인이라면 파혼이나 이별, 직장이라면 퇴사나 해고, 친구라면 차단, 가족이라면 절연이다. 그렇게 그 사람, 그 상황과 이어지는 접점을 모두 끊어버린다.

그렇다면 진상의 반대편에 있는 ‘호구’는 어떨까. 착한 사람의 이야기마저 왜 손절로 끝나야 할까. 호구가 나오는 사연에는 대개 그의 선의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는 진상이 함께 등장한다. 사연을 듣는 이들은 처음엔 그를 안타까워하지만, 이내 답답해하며 하루빨리 정신을 차리고 악연을 끊어내길 바란다. 그래도 끊어내지 못하면 ‘왜 손절을 못하느냐’ ‘그러니까 당하는 거다’라며 오히려 그를 탓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하소연하기도 쉽지 않다. ‘끊지도 못하면서 왜 나한테 우는 소리야’라며, 이번엔 호구가 주변 사람들에게 손절당할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인연을 끊는 것은 과연 옳은가. 심한 출혈이나 자연재해 같은 위급 상황에서는 지혈이나 대피처럼 빠른 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상에게 시달리는 피해자에게 손절은 일종의 ‘응급 처치’이고, 때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도,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어떤 이와의 관계를 손절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좋은 마음으로 베풀어온 나의 선의에 “호구짓”이란 라벨을 붙여버리는 슬픔을 뜻하기도 한다. 내 아이가 커서 배은망덕한 짓을 한다면, 그래서 연을 끊어버린다면, 그동안 그를 사랑하고 보살폈던 시간은 “손절하고 잊어버려야 하는” 시간이 돼버린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내 마음은 호구짓이 된다. 어려운 처지의 친구를 돕고자 했던 호의와 선행은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에게 내다 버린 쓸데없는 짓으로 전락한다. 손절은 미래의 나를 보호하기 위해 과거의 나를 매도한다.

나에게 가혹했던 이와 연을 끊는 것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런 이에게도 최선을 다했던 나와, 그 사람과의 좋았던 시간까지 까만 마커로 지워버린다면, 내 기억에도 시커먼 얼룩이 남는다.

인연을 정리하면서 내 과거의 조각까지 먹칠해 버릴 이유는 없다. 당신은 그를 아꼈는가. 그 사람도 당신을 좋아했는가. 사람은 일관적이지도, 일차원적이지도 않다. 진상스러운 순간이 있었을지 몰라도 그가 당신에게 정성을 다한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시간 속에서 수없이 다른 모습을 취한다. 내가 성장하면서 이제는 잘 맞지 않는 관계가 됐다고 해도, 지난 추억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호구니 진상이니 하는 라벨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살았고, 옳다고 믿는 선택을 했다. 그러니 어떤 이유로 관계를 정리하게 되더라도, 그것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 과거의 시간까지 나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주한나 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원·데이터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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