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글에 동원된 내 언어와 이성이 무섭다. 언어의 바깥, 이성의 바깥은 권리의 바깥, 인간의 바깥이라는 사실을 자주 확인하기 때문이다. 여기 그 사례가 있다. 색동원 사건의 피해자들 이야기다.
색동원은 인천 강화군에 있는 중증장애인시설이다. 여기서 일어난 일은 그야말로 엽기적이다. 사회복지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자신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다수의 중증장애인 여성들을 수년 동안 강간해왔다. 지난 1년간 이만큼 충격적인 일이 있었던가. 이 정도면 경찰 조사에서 재판까지 1년 내내 신문 1면을 장식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시설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먼 곳이고, 거기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리 충격적이어도 언제나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에서 끝난다).
지난 2일 법원은 가해자에게 ‘장애인피보호자 강간’과 ‘성폭행’ ‘폭력’ 등 죄를 물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나는 가해자가 아니라 사법당국이 피해자들에게, 더 정확히 말하면, 피해자의 지위에서 탈락시킨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폭력에 대해 말하고 싶다. 사법당국은 가해자에게 세 명에 대한 죄는 물었지만 열일곱 명에 대한 죄는 묻지 않았다.
소통 어려운 중증 인지장애인들이
일관된 피해 진술을 할 수 있을까
검경, 색동원 피해자서 17명 제외
그들에게 일어난 범죄를 지워버려
무슨 일이 있었던가.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것은 한 장애인의 몸에 난 상처이다. 다행히 그는 부모와 연결이 끊어진 사람이 아니었다. 시설은 거주자가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통보해야 했다. 직원들은 단순 사고에서 생긴 상처라고 했지만 폐쇄회로(CC)TV를 공개하지 않았다. 부모는 장애인 자녀를 집으로 데려왔는데, 그는 부모에게 상처가 성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유리컵에 맞아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또 한 번 다행히, 그는 진술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부모의 신고로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성폭행 피해자가 이 사람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장애인 단체들은 거주자 전원에 대한 심층조사를 요구했고 감독기관인 강화군은 이 조사를 한 대학의 인지과학 연구팀에 의뢰했다. 그런데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조사 대상인 스무 명의 여성들 모두가 피해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이들 중 세 명만을 성폭행 피해자로 한정해서 기소했다. 경찰의 피해자 조사와 대학 연구팀의 심층조사 결과는 왜 달랐는가. 대학 연구팀은 인지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구술만이 아니라 놀이, 그림, 사진 조사 등 전문기법을 활용했다. 이 조사에서 진술이 가능했던 장애인들은 성폭행 장소와 가해자의 협박, 다른 장애인에 대한 성폭행을 목격한 것 등에 대해 이야기했고, 진술이 어려웠던 장애인들은 몸짓으로 범행 상황을 묘사하거나 그림을 통해 성폭행 사실을 시사했다. 대학 연구팀은 이틀간 이들과 함께 보내며 조사를 수행했다.
반면 경찰은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안정적으로 진술하는지, 특히 폭행당한 장소와 날짜를 특정할 수 있는지를 살폈다. 피해조사가 해바라기센터에서 이루어졌고 진술조력인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과연 중증의 인지장애인이 낯선 공간에서 그날 처음 만난 진술조력인과 경찰 앞에서 피해 사실을 안정적으로 진술할 수 있었을까. 더욱이 언어적 소통이 불가능한 장애인들의 경우 이런 조사로 무엇을 알아낼 수 있었을까.
결국 스무 명 중 열일곱 명이 피해자에서 탈락했다. 대학 연구팀은 이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알고자 했지만, 경찰과 검찰은 이들의 진술이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지, 다시 말해 이들이 피해자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중시했다. 사실 경찰과 검찰의 피해자 조사를 통과한 세 명의 피해자도 재판부가 법정에서 검증 삼아 시도한 “반대신문으로 인한 스트레스 상황”을 통과해야 했다. 가까스로 피해자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재판부는 가해자를 질타하며 “장애인을 보호해야 할 피고인이 성범죄 인지능력이나 항거능력 등이 부족한 피해자들을 성적 욕구 해소 수단으로 삼았다”고 했다. 그런데 법원이 언급한 피해자의 특성들은 사법당국이 피해자에서 제외한 열일곱 명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가해자는 피해자들 대부분이 가족 등과의 연계가 없고, 인지능력과 진술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악용해 범죄를 저질렀는데 바로 그런 특성을 지녔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피해자에서 탈락한 셈이다. 그리고 피해자 인정 요건은 그 자체로 가해자 인정 요건이기도 하므로, 이 열일곱 명에 대해서는 가해자도 가해자를 면하게 되었다. 피해자가 없으므로 피해가 없고, 가해자가 없으므로 가해가 없다. 또 가해가 없으니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열일곱 명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아무 일도 없었다. 이것이 사법당국을 통해 확인한 우리 사회의 너무나 무섭고 끔찍한 사실이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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