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 [출처= EBN]
3월 한 달간 신규 밸류업 공시가 400건 이상 쏟아졌지만, 같은 시기 대기업들은 이사회 정원을 줄이며 소수주주 견제에 나서 한국 기업의 주주환원 양면성이 부각되고 있다.
공시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배당소득 과세특례' 등 세제 혜택이 작용했으며, 이와 동시에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인 이사회 구성에 있어서는 소수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움직임도 관찰되기 때문이다.
7일 한국거래소의 '3월 기업가치 제고 현황'에 따르면 한 달간 밸류업 계획을 신규 공시한 409개사 중 99%인 405개사가 고배당기업으로 집계됐다. 이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에 따라 고배당기업이 배당소득 분리과세 혜택을 적용받기 위해 밸류업 계획 공시를 필수적으로 이행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코스닥 상장사들의 두드러진 참여율이다. 3일 기준으로 밸류업 계획을 신규 제출한 고배당기업 444개사 중 코스닥 기업은 261개사로, 코스피 기업(183개사)을 크게 웃돌았다. 거래소는 이를 중소형 상장사 전반으로 주주환원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는 긍정적 시그널로 평가했다.
하지만 시장의 해석은 다소 결이 다르다. 코스닥 상장사는 통상적으로 대기업이 포진한 코스피 대비 오너 일가 등 특정 대주주의 지분 집중도가 매우 높다. 대주주 지분율이 높을수록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정부가 제시한 세제 혜택이 대주주 개인의 막대한 절세 효과로 직접 연결된다.
코스닥 고배당기업들의 공시 급증 현상은 근본적인 기업가치 제고 의지라기보다는, 대주주의 금전적 이익(세금 감면)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더욱이 제도 시행 첫해인 올해는 핵심 지표 위주로 간략히 기재하는 '약식 공시'가 허용된다. 이로 인해 장기적인 사업 구조 개편이나 지배구조 개선안 없이, 진입 장벽이 낮은 약식 공시를 지렛대 삼아 당장의 세제 혜택만을 확보하려는 중소형사들의 쏠림 현상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거래소 서울사옥 전경. [출처= EBN]
◆집중투표제 의무화 앞두고 이사회 규모 축소…방어적 거버넌스 구축
이러한 밸류업 공시 증가와 대비되게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이사회 규모를 축소하는 등 경영권 방어를 강화하는 정관 변경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기업분석 전문기관 리더스인덱스가 50대 그룹 상장사 269곳의 주총 결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주총 이후 전체 이사 수는 1733명으로 전년 대비 47명 감소했다. 카카오(-14명), 롯데(-13명), 삼성(-9명) 등 주요 대기업에서 이사 정원 축소가 두드러졌다. 특히 사내이사 축소가 눈에 띄었다. 현행법상 사외이사는 전체 이사 수의 일정 비율 이상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사내이사를 우선적으로 감축해 전체 이사 모수를 줄임으로써, 의무적으로 선임해야 하는 사외이사의 최소 인원 역시 동반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또한, 이사 임기를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해 이사 교체 주기를 늦춘 기업도 14곳으로 파악됐다.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 대기업들의 이사회 정원 축소 현상을 오는 9월 시행 예정인 2차 상법 개정안에 대한 선제적 대응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해당 개정안은 소수주주가 특정 이사 후보에게 의결권을 집중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집중투표제 도입 시 선출하는 이사의 수가 많을수록 소수주주가 특정 이사를 당선시키는 데 필요한 지분율 하한선은 낮아진다. 반대로 기업이 선출 이사 수를 1~2명 수준으로 최소화할 경우, 소수주주가 의결권을 집중하더라도 대주주의 지분을 넘어서기 구조적으로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사회 정원 축소와 임기 연장 조치는 향후 도입될 집중투표제의 실효성을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방어적 수단으로 작용하게 된다.
◆실질적 거버넌스 개선 동반 여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관건
현재 다수의 상장사, 특히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코스닥 고배당기업들은 세제 혜택 등 재무적 인센티브에 빠르게 반응하여 밸류업 공시를 이행하고 있으나,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소수주주 보호와 이사회 권한 분산에 방어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배당 확대를 통한 단기적 주주환원도 의미가 있으나, 이사회의 폐쇄성이 지속되고 약식 공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장기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과 시장은 단순한 공시 참여율이나 배당 지표를 넘어, 기업의 실질적인 거버넌스 개선 여부에 대해 지속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상장사들이 어떻게든 집중투표제를 실시하지 않아 보겠다는 의도가 보인다"며 "적어도 상장회사에 대해 이사의 임기를 기본적으로 1년으로 해 매년 주주들로부터 재신임 받도록 하고 집중투표제 도입 취지도 정확히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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