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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삼성전자 노사에 필요한 2등 마인드

HBM·파운드리서 잇단 오판 만년 2등에 왕좌 내준 삼성 수퍼사이클 덕 ‘행운의 반등’ 운을 실력으로 착각 말아야 ‘성과급 30조냐 45조냐’를 두고 노사 갈등을 빚고 있는 삼성전자를 보면 격세지감이다. 불과 1년 전만...

[경제포커스] 삼성전자 노사에 필요한 2등 마인드

HBM·파운드리서 잇단 오판

만년 2등에 왕좌 내준 삼성

수퍼사이클 덕 ‘행운의 반등’

운을 실력으로 착각 말아야

코스피 종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21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성과급 30조냐 45조냐’를 두고 노사 갈등을 빚고 있는 삼성전자를 보면 격세지감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위기였기 때문이다.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내세워 AI라는 거대한 파도에 올라탄 ‘만년 2등’ SK하이닉스에 메모리 왕좌를 내주고 뒤늦은 추격전에 나섰지만 개발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SK하이닉스는 그사이 엔비디아의 독점적 파트너로 올라섰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선 세계 1위 대만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패배의 저변에 ‘1등의 오만’이 있었다. 세계 1위 스마트폰 메이커란 위상은 메모리의 미래에 대해 ‘데이터센터는 틈새일 뿐, 대세는 모바일’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낳았다. HBM 개발이 뒤로 밀렸다. 파운드리에는 메모리 인재들을 대거 수혈했다. 수십 년 왕좌를 지켜온 메모리의 1등 DNA를 이식해 단기간에 추격하자는 계산이었다.

오판이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는 ‘업(業)의 본질’이 다른 사업이다. 메모리는 범용 제품을 대량생산해 원가와 수율로 승부하는 제조업이다. 좋게만 만들면 앞다퉈 사가는 전형적인 갑 비즈니스다. 파운드리는 정반대다. 고객이 설계한 칩을 그들의 입맛대로 구현해주는 서비스업이다. TSMC가 애플의 신뢰를 얻은 비결은 기술력만이 아니다. 고객의 설계 의도를 끝까지 이해하고, 그들의 일정에 스케줄을 맞추고, 고객의 비밀을 철석같이 지키는 ‘을의 철학’이 수십 년 응축된 결과다. 삼성 파운드리에 메모리 인재들이 투입된 것은, ‘갑의 마인드로 을의 시장에 들어간’ 전략적 착오였다. 먼 미래라고 생각한 AI가 먼저 도래하면서, HBM발 쇼크까지 덮쳤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당장 매출이 나지 않는 HBM 개발에 매달렸다. 하이닉스는 늘 위기였고 무급 휴직을 경험한 직원이 지금도 적잖다. ‘우리도 1등 한번 해보자’는 절박함이, 바로 돈이 안 되는 기술에 베팅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파운드리를 하지 않는 SK하이닉스가 세상에 없던 ‘메모리 파운드리’라는 개념을 구현했다. 2등을 벗어나려는 발버둥이 혁신을 낳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실책을 인정하고 조직을 수술대에 올린 끝에 HBM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업의 본질 혼동’이라는 파운드리 부진의 원인도 찾았다. 하지만 위기는 진행 중이다. 메모리 분야에선 HBM 시장의 주도권 다툼이 현재 진행형이다. 파운드리에선 TSMC는 저 멀리 앞서가고, 낙오한 줄 알았던 미국 인텔이 되살아나 다시 삼성전자를 쫓아오고 있다.

이때 마침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찾아왔다. HBM 비중이 D램 매출의 10% 내외인 상황에서 범용 D램 가격 폭등으로 돈벼락을 맞은 것이다. 노동 강도와 생산성이 갑자기 몇 배씩 높아진 것도, 기술 혁신이 뒤따른 것도 아니다.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반등의 과실이 눈앞에 보이자마자 노조의 ‘45조 성과급 안 주면 18일간 파업’ 통첩이 날아온 것이다.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했을 때, 그룹 경영진이 놀란 게 있다고 한다. 위아래 구분 없이 크고 작은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조직 문화였다. 오랜 기간 눈물 젖은 빵을 함께 먹은 집단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연대감이었다. 삼성전자는 긴 시간 그런 위기를 모르고 1등으로 지냈다. 하지만 HBM을 놓치고 파운드리의 본질을 오독했으며, 내부 인재들의 마음을 식게 만들었다. 길지 않았지만 ‘언제든 2등, 3등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한 것이다. 경영진은 전략적 오판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노조는 운의 결실을 실력으로 착각하지 않는 절제를 보였으면 한다. 겸손함은 2등의 전유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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