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원초적 감정이 순서대로 맞물리며 만들어진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시작은 주관적 기대였다. 집값은 어디서나 오르기만 한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었다. 이 믿음은 곧 이야기가 되어 퍼졌다. 부동산으로 부자가 됐다는 무용담이 입소문을 타고 번지며 더 많은 사람을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에 공정 담론이 끼어들었다. 소외계층도 이 붐에 참여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고, 정부는 대출 문턱을 낮추라는 압박을 받았다. 낮아진 문턱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서브프라임 대출 시장의 과열로 이어졌다. 그런데 집값이 살짝 흔들리자 기대에 의심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결국 거품은 터졌고 신용은 얼어붙었다. 믿음과 의심. 그 자체로는 하나같이 자연스러운, 모두가 품을 법한 감정이다. 그런데 이게 모여서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그린 궤적은 이성적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취임 8개월에 67%까지 올랐다가, 1년3개월 만에 30%대로 주저앉았다. 잘하고 못한 것이 왜 없겠냐만은 이런 변동성이 현 정부의 실력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지지율이 꺾인 계기가 6·3 지방선거이기에 더 그렇다. 정치위기도 역시 감정이 만든다. 시작은 역시 주관적 기대였다. 지난해 대선은 계엄과 탄핵 속에서 치러진 조기대선이었다. 그럼에도 계엄을 옹호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8.27%포인트 차이로 좁게 이겼다. 그런데 극단적 진영 갈등 속 대통령치고 취임 초 지지율은 이례적으로 높았다. 국민들의 기대치가 애초에 높지 않았던 만큼, 예상보다 일을 잘하고 예상보다 포용적이라는 인상만으로도 지지율은 쉽게 올라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문제는 기대는 고정된 잣대가 아니라 계속 업데이트되는 변수라는 데 있다. 낮았던 기대치는 소진됐다. 무엇보다도 주관적 기대는 작은 의심에도 무너진다.
그 균열은 부동산 세제개편안이 아니라, 그보다 앞선 6·3 지방선거의 서울시장 패배에서 먼저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을 가져가는 압승을 거뒀지만, 최대 승부처 서울에서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졌다. 선거를 몇달 앞둔 시점부터 이미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서울시장 바뀌면 재개발 엿대는 거 맞음?”이라는 글이 돌았고, “10년? 아니 20년” “한 세대는 지나가야 한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선거 전부터 “보유세가 이렇게까지 오른다더라”는 찌라시가 블라인드에 돌며 “이게 장난으로 보이나요?”라는 반응을 낳았고, 뒤이은 부동산 세제개편안은 이 균열에 쐐기를 박았다.
여기에 공정성이 끼어들었다. 사람들은 정의가 아니라 각자의 관점에서 불공정을 못 참는다. 부동산 세제가 오락가락한 것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나만 손해 본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 더 뼈아팠다. 개각 인선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였다. 후보자 개개인의 자질 문제라기보다, 국면 전환을 위해 서두른 인선이 오히려 ‘원칙 없는 인사’라는 불공정 프레임으로 소비됐다. 그리고 마지막 자리엔 사익 추구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연임개헌 논의나 대통령 본인 공소취소를 둘러싼 논란은 실제 위법성 여부와 무관하게, ‘권력자가 자기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의심만으로도 지지율을 갉아먹었다.
이 대통령이 택한 해법은 기자회견이었고 감정적으로는 아슬아슬했다. “모두 나의 부족함”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사익추구에는 선을 그었다. 여기까지는 스스로를 객관화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그러나 주가와 부동산 문제에서는 다시 방어적인 화법으로 돌아섰다. 반성과 해명 사이를 오간 회견이었다. 지지율 하락을 진정시킬지, 아니면 “책임은 여전히 남의 몫”이라는 인상만 굳힐지. 그 결과는 아직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2008년 경제위기 당시 미국 정부의 해법은 ‘신뢰 회복’이었다.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국민의 믿음을 되찾겠다”고 밝혔다. 무너진 것이 신뢰라면, 처방도 신뢰를 겨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감정을 겨냥하려면 기대 이상의 처방이 나와야 한다. 대충 예전에 하던 거 그대로 하면서 지지를 되찾겠다고 하면 국민감정은 더 긁히기만 한다. 2008년 미국이 기존 통화정책에 크게 의존하고 새로운 재정정책은 안 펴다가 회복에 5년이 넘게 걸렸다. 또 하나. 경제위기는 정부라는 제3자가 밖에서 개입해 풀 수 있다. 그러나 정치위기는 신뢰를 잃은 당사자가 스스로 신뢰를 회복시켜야 한다. 당사자 스스로 냉정하게 자기 객관화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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