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자율적 자기 진화나 초지능의 등장, 인류의 멸종 위험까지 AI를 둘러싼 기술적 논쟁이 끝없이 부풀어 올랐던 2026년 9월이었다. 그런데 기술로서의 AI가 아닌 ‘산업으로서의 AI’ 상황은 어떤가? AI가 일으킨 거대한 투자 광풍에 기댄 극히 예외적 성장을 하는 두 나라 미국 경제와 한국 경제가 단연 눈에 띈다.
먼저 미국 경제에서는 실리콘밸리 거대 기업들의 초현실적 AI 인프라 투자가 경제성장률에 3분의 1 이상을 기여하고 있다. S&P500 지수에서 차지하는 이들의 비중도 30%를 훌쩍 넘었다. 미국의 거대한 AI 시설 투자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엄청나게 끌어 올렸고, 그 덕분에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최대 3.7%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보다 AI의 흔적이 큰 경제는 TSMC라는 대체 불가 기업을 보유한 대만 정도이고, 중국도 AI 산업의 성장 기여도가 매우 높지만, 태양전지와 배터리, 전기차 등 녹색산업의 주도력이 더 크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에서 경제 특수를 창출하고 있는 AI 산업의 투자 효과를 넘는 생산성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과도한 투자 경쟁이 언제 거품 붕괴로 돌입할지는 지금도 논쟁 주제다. 만약 큰 폭의 투자 조정이 일어난다면 그 충격 역시 한국과 미국이 가장 클 것이다.
그런데 AI 기술 논쟁과 산업 영향력 논쟁을 넘어 반드시 짚어야 할 중요 이슈가 있다. 바로 독점 문제다. 지금 AI를 중심으로 미국 경제를 견인하는 핵심 주체는 AI 연산 장비를 거의 독점 공급하는 엔비디아, AI 데이터센터를 사실상 과점하고 있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그리고 기업공개 이전에 이미 기업가치가 1조달러를 넘긴 오픈AI와 앤트로픽 등이다. 한국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재계 1·2위의 삼성과 SK가 주인공이다.
그렇지 않아도 반도체와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한 세기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른 상황에서 AI 확산은 이를 더욱 빠르게 극점까지 끌고 가는 중이다. AI가 경제에 미치는 보이지 않는 효과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실리콘밸리 거대 기업들에 대한 ‘반독점’ 규제가 활발하게 추진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4년 구글을 상대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크롬 브라우저의 분할을 요구한 미국 법원 결정이었다. 유럽도 ‘디지털시장법(DMA)’을 제정하는 등 강력한 규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AI를 둘러싼 속도전과 이를 적극 옹호하는 트럼프 정부의 등장으로 실리콘밸리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려는 노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는 자신들의 경제적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정치권력과 적극 연합하는 길을 선택했다. 2025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정부 관료들을 제치고 대통령 가족 바로 뒷줄에 일론 머스크, 샘 올트먼,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이조스 등 실리콘밸리의 조만장자들이 자리한 모습은 미국 경제와 정치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한때 자유와 다양성, 민주주의를 표방했던 실리콘밸리는 극소수 AI 거대 독점체의 경제권력 크기에 비례해 사실 꽤 이전부터 점점 극우와 이른바 ‘테크노 파시즘’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독점을 공개적으로 찬양한 실리콘밸리 대부이자 팔란티어 창립자인 피터 틸은 2009년에 “나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다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제 중국과의 경쟁을 명분으로 트럼프 정부와 한 몸이 되어 AI 관련 인력과 기술, 자원과 에너지를 엄청나게 집중시켰고, 그에 따라 경제적인 부와 권력까지 끌어모으고 있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공공시스템과 정부를 무력화시키고, 대신 AI를 앞세운 기술 엘리트 집단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꾼다. 민주주의는 너무 느리고 과학 발전을 저해하는 제도이므로 과학을 최적화하려면 선의의 기술 관료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사이 이들은 초지능이나 AI로 인한 종말론적 파국을 말하는 동시에, 이를 대처할 처방도 자신들의 소임으로 자임한다. 이렇게 AI가 유발한 보이지 않는 제도 효과는 이처럼 독점을 매개로 민주주의의 잠식으로 나간다. 이 현상을 주목해온 미국 역사학자 퀸 슬로보디언은 이렇게 말했다. “기술 거대 기업들은 민주주의를 신경 쓰지 않을지 모르지만, 민주주의는 그들을 신경 씁니다.” 그렇다. 이제 AI 기술 담론 뒤에 숨은 독점과 권력 문제를 신경 쓸 때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