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팀 한 달간 머물며 작업·워크숍
2팀 일주일간 베를린 전시 참여
다양한 작가·작품 만나 가능성 확장
AI 시대 예술가 위치 대한 질문도
베를린 글로가우에어에서 열린 ‘Where the Artists Stand:예술가의 자리’에 참여한 작가들이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혜정 작가 제공
대구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작업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지역’은 때때로 작업의 출발점인 동시에 넘어야 할 경계로 인식된다.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내 미술계의 구조 속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변방의 작가’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런 환경에서 재학 중 해외에서 미술적 활동을 경험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정보와 네트워크, 비용과 언어 등 여러 현실적인 장벽을 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북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박사과정 재학생들이 지난 7~8월 독일 베를린에서 레지던시와 전시에 참여한 경험은 이런 점에서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들은 미테(Mitte) 지역에 위치한 비영리 현대미술공간인 쿤스트풍크트 베를린(Kunstpunkt Berlin)에서 한달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또 다른 작가들은 전시에 함께 했다.
쿤스트퐁크트 베를린 레지던시 진행 모습.
◇ 쿤스트풍크트 베를린(Kunstpunkt Berlin)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
먼저 1팀은 쿤스트풍크트 베를린(Kunstpunkt Berlin)에서 지난 7월 한 달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쿤스트풍크트 베를린은 독일 베를린 미테(Mitte) 지역에 위치한 비영리 현대미술 전시공간이다. 레지던시는 경북대학교 미술학과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의 ‘예비예술인’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다.
이번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조주현 경북대 미술대학 교수와 김금화 독립 큐레이터가 공동기획했으며, 참여 학생들은 현지에서의 작업과 함께 현지 작가 작업실 견학, 현지 작가들의 워크숍 참여, 포트폴리오 리뷰, 미술관 견학 등으로 구성됐다.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에는 조주현 교수의 지속적인 해외 현장 교류가 있었다. 조 교수는 독일 베를린 유학과 작업 활동을 통해 현지 예술계와 접점을 만들었고, 그의 이러한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지역 대학원생들의 열린 기회로 확장됐다.
레지던시에는 김민주(서양화 전공 석사 재학중), 박소현(서양화 전공 석사 재학중), 서승경(한국화 전공 석사 재학중), 최령은(디지털미디어아트 학과 석사 재학 중) 등 4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 달간 현지에 머물며 작업을 이어가는 동시에 다양한 예술 현장을 경험했다.
레지던시 마지막에는 오픈 스튜디오도 열렸다. 참여 학생들은 자신의 작업을 현지 작가와 관객에게 직접 설명하고 질문을 받으며, 다른 문화권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작업·실패 과정 예술적 영역 확인
‘완벽 강박’ 벗어나 작업 태도 변화
개인 기억도 대화 등 통해 예술화
현지 예술공간과 지속 교류 MOU
◇글로가우에어(GlogauAir) Project Space에서 열린 ‘Where the Artists Stand | 예술가의 자리’
2팀은 지난 8월 1일부터 7일까지 베를린 글로가우에어에서 열린 ‘Where the Artists Stand | 예술가의 자리’에 참여했다.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에 위치한 글로가우에어는 여러 나라에서 온 작가들이 머물며 작업과 연구를 이어가는 비영리 예술공간이다. 과거 학교로 사용되던 건물의 교실이 작가들의 스튜디오로 활용되고, 프로젝트 공간에서는 전시와 다양한 예술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이번 전시는 조주현 교수와 수지 로얄(Suzy Royal)이 공동 기획했으며, 대구문화예술진흥원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이와 함께 조 교수는 오픈AI로부터 경북대학교 미술학과 서양화전공 전 학년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쳇(Chat)GPT Pro를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지원을 받아 생성형 기술을 실제 창작과 교육 현장에서 탐구하는 기반도 마련했다.
베를린 전시에는 강윤정(예술공학 박사/경북대 강사), 조주현(작가/경북대 교수), 이정은(경북대 교수), 김유(서양화 전공 박사 재학 중), 정세빈(서양화 전공 박사 재학 중), 원선금(서양화 전공 박사 재학 중) 등 6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회화, 설치, 인터랙션, 영상 등 서로 다른 매체를 사용했지만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글로가우에어가 공개한 전시 소개에서도 완성된 결과물뿐 아니라 리서치와 반복적인 제작, 설치가 형성되는 시간 등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 핵심으로 제시됐다. 이는 AI 시대 예술가의 위치에 대한 질문과 연결됐다. AI가 빠르게 이미지를 만들고 결과를 제시하는 환경에서 예술가에게는 생각하고 선택하고 실패하고 다시 만드는 시간이 오히려 중요한 예술적 내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AI는 결과를 빠르게 만들어내지만 작가에게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며 “실패하고 다시 해보는 과정, 그 과정에서 생기는 서사가 앞으로 더 중요한 예술의 영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 개막일에는 130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았으며 작품 판매도 이뤄졌다. 참여 작가들은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와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현지의 문화를 경험하며 작품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었다.
◇ 참여작가들의 소감
베를린에서의 한 달 간의 레지던시와 뒤이여 열린 전시는 지역에서 작업해온 젊은 작가들에게 자신의 작업과 창작 태도를 새롭게 바라보는 장이 됐다. 익숙한 작업 공간을 벗어나 해외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객을 만나면서 작업의 가능성을 확장했고, 미완성과 실패의 흔적을 마주하며 창작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전시 참여 작가이자 교육자인 강윤정은 이번 경험을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으로 바라봤다. 익숙한 작업환경과 관계망에서 벗어나 작품을 베를린이라는 다른 문화적 조건 안에 놓음으로써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위치가 선명해졌다는 것이다.
레지던시 참여 작가인 박소현은 “베를린에서의 한 달은 자신의 작업 공간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으면서 작업의 범위를 스스로 좁혀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지만, 베를린에서 다양한 작가와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작업의 공간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특히 “오픈 스튜디오에서 본 미완성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실험 중인 작업과 실패의 흔적도 자연스럽게 공개되는 환경을 경험하면서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며 “작업을 대하는 태도 변화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김유 작가 역시 “전시 기간 동안 현지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다시 바라봤다”는 후문이다. 그는 조부모의 기억과 가족의 자료를 작업의 소재로 삼아 이를 영어로 번역해 전시했다. 외국 관객들이 작품 속 자료를 살펴보고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이 개인적인 이야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예술적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경험했다.
“작품을 설명하다 보니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스스로 문장으로 정리하게 됐어요. 관객의 질문이 오히려 제 작업의 언어를 더 분명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지역의 경계를 다시 바라보다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는 지역 대학의 교수가 직접 해외 예술 현장과 관계를 만들고, 이를 학생들의 실제 레지던시와 전시 기회로 확장했다는 데 있다. 조주현 교수는 학생들에게 해외 미술관을 둘러보는 단기 연수보다 현지에 머물며 작가들과 만나고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현지 관계자들과 프로그램을 논의하며 한 달간의 레지던시를 성사시켰다.
그 한 달은 학생들에게 학교 밖에서 작가로 살아보는 실험이 됐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베를린 현장에서 자신이 어느 대학, 어느 지역에서 작업하는가보다 어떤 작업을 하고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조 교수는 “해외에 나가 보니 서울인지 대구인지보다 어떤 작업을 하는지가 중요했다”며 “지역은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 경험의 의미는 ‘지역을 벗어나야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단순한 방식과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지역에서 공부하고 작업하더라도 자신의 작업을 다른 현장과 지속적으로 연결한다면 활동의 범위는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경험이었다.
조 교수가 베를린에서 만든 인연은 이번 한 번의 행사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경북대 미술학과와 글로가우에어는 지속적인 교류를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학생과 작가들의 3개월 장기 레지던시와 큐레이팅 팀과 연구 교류, 전시 교류, 교육 교류 등의 방안이 확정될 예정이다.
지역에서 시작된 한 교수의 네트워크가 학생들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다시 지속적인 국제 교류의 가능성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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