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급등한 공사비와 심화되는 인력난 등 어려워진 경영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현장에 전면 배치하며 ‘AX(AI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거 2D 도면 설계에서 3D 가상 공간을 활용한 BIM(건설 정보 모델링) 기반의 디지털 전환(DX)을 거쳐, 이제는 글로벌 빅테크와 협업하거나 자체 로봇 생태계를 통해 데이터 기반의 지능형 건설 현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 현장도 AI 에이전트 협업
DL이앤씨는 지난 23일 인천에서 열린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주최 ‘APAC Summit Korea 2026’에서 국내 건설사 중 유일하게 AI 기반 건설 운영 혁신 사례를 발표했다. 팔란티어는 기업의 데이터와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하나의 체계로 통합해 AI가 실시간으로 현장 운영에 개입할 수 있게 하는 플랫폼 ‘온톨로지’로 기업 AI 전환 분야를 선도하는 회사다.
지난 28일 DL이앤씨 직원들이 BIM 시스템과 팔란티어 AIP를 활용해 필요 마감재 수량을 산출하는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DL이앤씨
2022년 업계 최초로 팔란티어 데이터 플랫폼을 도입한 DL이앤씨는 설계·시공·유지관리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플라이휠(Flywheel) 생태계’를 구축했다. 현장에서 생성되는 데이터가 AI 분석을 고도화하고, 고도화된 분석 결과가 다시 현업 활용을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력이 강화되는 구조로, 시공 단계에서 축적된 작업지시서 데이터는 계획·의사결정 회의 시스템과 자동 연계돼, 비슷한 현장에서 발생했던 변경 사항과 리스크가 사업 기획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공유되는 식이다. 87년간 축적한 건설 사업 데이터를 팔란티어 플랫폼에 적용해 원가·품질·안전·설계 등 건설 전 분야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삼성물산도 모든 프로세스와 임직원 의사결정이 AI기반으로 이뤄지는 ‘AI 네이티브 건설사’를 목표로, 2028년까지 전 영역에 AI 중심 업무 지능화를 구현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 AWS(아마존웹서비스)와 공동 개발한 ‘AI 에이전트’를 올해부터 모든 건설 프로젝트에 적용하기로 했다.
건설업계에선 건설업이 자동차 등 다른 제조업 대비 디지털 전환이 늦었지만, 최근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7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AI 시대가 바꾸는 건설산업’ 보고서를 발표하고, “건설산업도 테슬라 같은 방식으로 생산품을 플랫폼화해 진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테슬라가 판매하는 전기차가 전통적인 하드웨어 제품이 아니라 ‘주행 데이터 기반의 AI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처럼, 굴착기·크레인·덤프트럭은 단순 장비가 아니라 학습 단말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건설 현장은 프로젝트 단위로 종료되는 산업 구조여서 현장에서 생성된 영상, 장비 로그, 공정 데이터 등이 단절됐지만 테슬라식 전략을 적용하면 현장의 데이터가 본사 클라우드로 수집돼 공정 최적화·안전 예측·원가 분석 AI를 학습시키고, 개선된 모델이 다시 현장에 배포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 작업에 로봇 투입 확대
이와 관련해 현장 안전과 효율을 높이는 ‘로보틱스’ 경쟁도 치열하다. 현대건설은 지난 7일 HD건설기계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AI 굴착기’ 도입을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작업 현장에 투입된 굴착기에 우선 첨단 안전 센서와 모듈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AI 기술을 도입한다. AI 기반 카메라로 장비 주변의 사람을 탐지해 경고하는 ‘스마트 어라운드 뷰 모니터(SAVM)‘, 작업물의 중량과 장비의 기울기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장비가 중심을 잃고 넘어가지 않도록 경고하는 ‘인양 과부하 경고 장치(OWD)’ 등이다.
현대건설이 HD건설기계와 협업해 현장에 투입하기로 한 'AI 굴착기' 시연 모습. 360도 주변을 확인할 수 있는 AI 카메라 기술로 후방을 지나는 차량이나 사람 등을 빠르게 감지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HD건설기계
이후 올해 하반기부터는 차세대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 굴착기’도 현장에 차례로 투입한다. 스마트 굴착기에는 ‘충돌 경고 및 자동 정지(E-STOP)’ 기능, 장비 오작동 시에도 설정된 가상의 벽을 벗어나지 않도록 제어하는 ‘버추얼 월(Virtual Wall)’ 등의 첨단 안전 기술이 탑재된다.
삼성물산의 ‘철골 볼트 조임 자동화 로봇’은 고소 작업 등 위험한 구조체 체결 작업을 로봇이 전담하게 해 근로자 안전을 확보하고 시공 품질의 균일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밖에도 분진을 줄이는 살수 드론, 근골격계 부담을 덜어주는 웨어러블 로봇 등이 투입이 확대되고 있다.
삼성물산의 '철골 볼트 조임 자동화 로봇'. 철골 작업 중 높은 위치에서 구조체 체결 작업을 자동화해 근로자의 안전을 확보했고, 볼트 위치 자동 인식과 오차 보정 기술을 탑재해 균일한 시공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삼성물산
GS건설은 자체적으로 ‘AI 기반 하자 예방 플랫폼’으로 시공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축적된 방대한 시공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아파트의 하자 발생 원인을 분석하고, 설계와 시공 단계에서부터 이를 차단할 수 있는 선제적 예방 체계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현장 직원들은 플랫폼에 체계적으로 정리된 시공 매뉴얼, 공정별 하자 예방 가이드, 주요 실패 사례 등을 실시간으로 조회해 시공 단계에 즉시 적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비슷한 하자의 재발을 모니터링하고, 실제 문제 발생 때도 시행착오를 최소화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거의 건설업이 노동 집약적 산업이었다면, 이제는 고도의 데이터와 로봇 기술이 집약된 AX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며 “AI 기술력이 곧 건설사의 수주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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