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 대구파티마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가족이나 자녀가 ‘뇌성마비’라는 진단을 받게 되면 대다수 부모와 보호자는 깊은 절망과 두려움에 휩싸이곤 합니다. ‘마비’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 때문에 평생 심각한 장애를 안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 단정 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뇌성마비는 증상과 중증도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질환입니다. 일상생활에 거의 지장이 없을 정도로 경미한 경우도 있으며,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재활 치료를 받는다면 스스로 보행하고 교육을 받으며, 직업을 가지고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단 초기부터 질환을 정확히 이해하고 희망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흔히 혼동하는 소아마비는 폴리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질환으로 예방접종을 통해 예방이 가능한 반면, 뇌성마비는 미성숙한 뇌에 발생한 손상으로 운동 기능이나 자세에 이상이 생기는 비진행성 질환군을 의미합니다.
뇌성마비는 단일 질환이라기보다 비슷한 임상적 양상을 공유하는 질환들의 모음으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전체의 75% 이상이 출생 전 산모나 태아의 요인과 관련되어 있으며, 특히 재태 기간 32주 미만의 조산아나 출생 체중 1.5kg 미만의 극소 체중 출생아에서 유병률이 높게 나타납니다. 많은 보호자가 둘째 아이에게도 유전되지 않을까 걱정하시지만 유전적 요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아, 첫째가 뇌성마비라고 해서 둘째에게 동일한 질환이 유전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뇌성마비는 뇌 손상 부위와 범위에 따라 양상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가장 흔한 경직형 뇌성마비는 팔다리 근육의 긴장도가 높아져 뻣뻣해지고 관절의 움직임이 부드럽지 못한 특징을 보입니다. 까치발로 걷거나 양 무릎이 서로 맞닿는 가위 모양 보행, 웅크림 보행 등이 관찰되기도 합니다.
주의할 점은 뇌 손상이 운동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뇌성마비 아동의 약 절반에서는 인지발달 지연으로 인한 지적장애가 동반되며, 4명 중 1명꼴로 경련(간질) 증상이 나타납니다. 영유아기의 조절되지 않는 경련은 뇌 발달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신경과와의 협진을 통한 적절한 약물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이 외에도 구강 운동 조절 이상으로 인한 삼킴 장애(연하장애), 사시나 시력 저하 등의 시각 장애가 동반될 수 있어 종합적인 평가가 요구됩니다.
뇌성마비는 영유아기에 확정 진단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숙련된 재활의학과 전문의의 추정 진단과 면밀한 이학적·신경학적 검사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뇌 MRI나 뇌파 검사 등을 시행하기도 하지만, 뇌 영상에서 이상 소견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전문의의 세심한 진찰이 진단의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가정에서는 아이의 개월 수에 따른 운동 발달이 눈에 띄게 지연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팔다리 근육이 지나치게 뻣뻣해 만세 동작이나 발목 굴곡이 잘 되지 않거나, 반대로 몸통에 힘이 없어 축 늘어지고 뒤집기 등의 발달 단계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지체 없이 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뇌성마비 재활의 핵심은 어릴수록 뛰어난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손상된 뇌 신경이라도 조기에 적절한 치료적 자극과 중재를 제공하면 기능을 재구성하고 발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위험군 아동은 신생아 중환자실 단계에서부터 조기 평가와 재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최종 예후에 중요한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치료는 체계적인 다학제적 접근으로 이루어집니다. 운동 치료와 작업 치료를 통해 근력을 강화하고 관절 가동범위를 넓혀 웅크림 보행을 개선하며, 팔과 손의 미세한 동작을 훈련해 스스로 도구를 사용하는 등 일상생활 동작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근육 경직이 심한 팔다리에는 보툴리눔 독소(보톡스)를 국소적으로 투여해 근육을 이완시키기도 합니다. 경직이 감소한 뒤 재활 치료를 병행하면 기능 개선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발목이나 관절의 변형을 막기 위해 상지 또는 하지 보조기를 착용하며, 관절 구축이나 골격 변형이 심한 경우에는 정형외과적 수술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약물로 경직이 조절되지 않을 때에는 선택적 척수뿌리 절제술 등의 신경외과적 수술을 시행하기도 합니다.
뇌성마비 아동을 양육하는 과정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긴 호흡이 필요한 여정입니다. 그러나 조기에 질환을 발견하고 지속적인 재활 치료와 관리를 이어간다면 아동은 부모님의 생각 이상으로 스스로 성장하고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저력을 보여줍니다.
보호자께서는 낙담하기보다는 아이가 보여주는 작은 변화에 집중하고 긍정적인 신뢰와 자신감을 심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지역사회와 의료기관의 다양한 보조공학 지원과 사회적 복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짐을 나누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민영 대구파티마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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