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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같은 날 다른 기억

광복절에 나는 후쿠오카에 있었다. 죄책감이 들어 주변 지인들에게 여행 간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일본으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린 어느 연예인은 대중에게 질타받았다. 8월 15일이라고 선명하게 찍힌 실시간 업로드 날짜 때문이었다.

같은 날 다른 기억

정경아 수필가

광복절에 나는 후쿠오카에 있었다. 죄책감이 들어 주변 지인들에게 여행 간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일본으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린 어느 연예인은 대중에게 질타받았다. 8월 15일이라고 선명하게 찍힌 실시간 업로드 날짜 때문이었다.

COVID-19가 발생하기 몇 해 전, 일본이 한국에 대해 첨단산업 핵심 소재 수출을 제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재팬'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일본산 제품을 소비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잠시 매국노로 취급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역사적,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각성하게 된다.

잠시 관광하러 나갔다가 불볕더위 때문에 숙소로 돌아왔다. 열기가 조금 가실 때까지 쉬기로 했다. TV를 틀어 채널을 돌렸다. 예능 프로그램 두어 개가 지나갔다. 다음 채널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 피폭 피해자들의 증언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면이 나왔다. 방송 자막으로 떠듬떠듬 이해할 수 있었다. 평화와 반핵 운동으로 귀결되었다.

예전, 다큐멘터리에서 원폭 당시 검은 비가 내렸다는 생존자의 증언을 본 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참혹한 상황을 그린 '반딧불이의 묘'라는 애니메이션도 떠올랐다. 부모를 잃은 어린 남매가 산속 방공호로 거처를 옮겨 생활했다. 전쟁의 상흔으로 각박해진 사람들의 냉대 속에 고통받으며 비극을 맞이했다. 작품 속 슬픔에는 공감이 갔지만, 가해의 책임을 흐릿하게 묘사해 거리감이 들었다.

같은 날, 우리나라 광복절은 달랐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한 의미를 크게 되새긴다. 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유공자를 기린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광복은 늘 '8·15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제목 아래 있었다. 해방의 기쁨과 분단의 시작을 함께 배웠다. 광복절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태극기를 그리고 글짓기 숙제를 하면서 국가의 기억을 마주했다.

일본은 그날이 종전기념일이다. 국기 게양도 기념행사도 없는 듯 보였다. 평범한 하루였다. 사람들은 지글거리는 열기 때문에 보도 위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힘들어 미간을 찌푸리며 지나쳤다. 유명한 메밀 국숫집 앞 대기 줄이 길자 다른 메뉴를 찾는다고 고민했다. 우리에겐 그들이 가해자라는 사실이 명확해지는 날이라 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데, 그들은 원폭 피해자를 기리는 날인데 애도조차 삼키는 것 같았다.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은 8월 15일을 어떻게 기억할까.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이라 총리가 뉴델리의 붉은 성(Red Fort)에서 연설하고 전국에서 국기 게양식이 열린다. 콩고공화국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리히텐슈타인은 독립기념일보다는 국민 화합의 날로 불꽃놀이와 축제가 이어진다. 유럽 가톨릭 국가에서는 성모 승천 대축일이라 성당 미사 및 성모 마리아 행렬이 이어진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페라고스토(Ferragosto)'라고 불리며, 도시가 한산해질 정도로 많은 사람이 가족과 휴가를 보낸다. 국경만 넘어도 같은 날이지만 다른 기억이 존재한다. 달력 속 같은 날 어느 나라에는 환희, 어느 나라는 애도, 또 다른 나라에는 신앙이 존재한다.

광복절인데 나는 일본에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아마도 한국인으로 살아오면서 체감한 국가의 기억이 작동해서 일 것이다. 광복절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달라진 것은 그날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같은 8월 15일을 살아도 기억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나는 여전히 한국인임을 깨닫는다.

거리마다 여름 빅세일을 한다는 현수막이 붙었다. 상점에서는 행사 일정이 새겨진 파란색 플라스틱 부채를 나눠주었다. 한국 가로수길이라면 태극기가 펄럭거렸을 것이다.

부채로 더위를 식히면서 어느 해보다 깊이 광복절을 생각했다.

정경아 수필가

정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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