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신청사, 구룡마을 조기 재개발, 시니어·청년 맞춤 정책 제시… 강남 행정의 관건은 구호보다 집행력
강남은 더 이상 ‘잘 사는 동네’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도시가 됐다. 재건축과 규제, 교육 수요, 교통 혼잡, 생활 안전, 고령화가 한 공간에 겹쳐 있다. 자원은 많지만 이해관계도 복잡해, 행정을 어떻게 설계하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주민이 느끼는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
문제는 도시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데도 행정 방식은 여전히 부서별 대응과 사후 처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민원은 나뉘어 처리되고, 정책은 개별 사안 중심으로 움직이며, 주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더디다. 강남처럼 수요가 밀집한 지역일수록 행정은 단순 관리보다 운영의 정교함이 더 중요해진다.
전원근 더불어민주당 강남구청장 예비후보
전원근 더불어민주당 강남구청장 예비후보는 이런 문제의식 위에서 강남을 다시 설계해야 할 도시라고 보고 있다. 그의 구상은 단순한 개발 공약보다 도시 운영 방식 전환에 무게가 실려 있다. 특히 AI 확산과 인구 구조 변화에 맞춰, 강남 행정도 민원 처리 중심에서 데이터 기반 예측 행정으로 옮겨 가야 한다는 것이 핵심 인식이다.
강남의 과제는 자원 부족보다 운영 구조
강남의 변화는 과거에도 정책과 맞물려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 시기 벤처 육성 정책과 함께 테헤란로 일대에는 자본과 인재가 몰렸고, 이른바 ‘테헤란밸리’가 형성됐다. 강남은 소비와 주거의 공간을 넘어 정책 설계가 산업 지형을 바꾼 지역이기도 했다.
전 후보는 지금의 강남도 또 한 번의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본다. 다만 이번에는 벤처 육성이 아니라 AI, 재건축, 고령화, 생활 안전이 동시에 얽힌 도시 운영의 문제라는 점이 다르다. 기업 생태계 지원을 넘어 행정 조직 자체가 더 빠르고 예측 가능한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가 내세운 공약도 이런 방향을 반영한다. 대표적으로 SETEC 부지에 행정정보복합단지를 조성해 스마트 신청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전국 표준형 스마트 행정 시범도시를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한 청사 이전이 아니라 행정 서비스를 데이터 기반으로 통합하겠다는 구상이다.
전 후보가 말하는 AI 행정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이는 장비를 늘리거나 시스템을 덧붙이는 수준이 아니라, 민원·안전·돌봄·인허가 데이터를 연결해 수요를 미리 파악하고 대응 순서를 조정하는 운영 체계를 뜻한다. 지역별 문제를 사전에 감지하고, 재건축 인허가의 일관성을 높이며, 돌봄과 안전 수요를 예측하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설명이다.
재건축 문제에서도 그는 공급 자체보다 행정의 예측 가능성과 절차의 신뢰를 더 중요하게 본다. 포스터에 담긴 ‘구룡마을 재개발 조기 시행’ 공약 역시 균형 발전과 행정 속도를 함께 강조한 내용이다. 강남에서 반복되는 갈등은 규제 그 자체보다 기준의 흔들림과 절차 지연에서 커지는 경우가 많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상권 활성화 구상도 포함됐다. 강남역, 신사역, 삼성역 일대의 용도 변경과 숙박업소 규제 완화를 통해 관광객 유입과 상권 회복을 유도하고, 압구정 로데오를 상징 거리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런 정책은 상권 활성화 효과와 함께 주거 환경, 난개발 우려, 지역 수용력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함께 검증돼야 한다.
청년·시니어·시민참여까지 생활형 공약 확대
전 후보는 생태와 생활 환경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탄천 수질 개선과 대모산·구룡산·매봉산을 잇는 녹색축 조성, 생태·문화·교육이 어우러진 정원도시 강남 구상이 대표적이다. 재건축과 상업 개발 압력이 큰 지역일수록 생활권 녹지와 공공 공간의 질이 주민 만족도를 좌우한다는 점을 반영한 공약이다.
세대별 맞춤 접근도 눈에 띈다. 그는 ‘어르신과 청년이 함께 잘 사는 강남’을 내세우며, 일반분양과 보금자리주택 분양 시 부모를 모시는 청년 신혼부부 우선 분양 방안을 제시했다. 또 2030세대에는 안심 귀가와 돌봄, 40대에는 교육과 소통, 50·60세대에는 재산권과 노후 대응을 주요 의제로 제시했다.
고령화 대응은 그의 공약에서 비중이 큰 분야다. 치매 예방부터 뇌 기능 강화까지 아우르는 특수질병센터 구상과 건강·돌봄·안전을 연계한 대응 체계가 대표적이다. 고령층 문제를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도시 운영 시스템의 재구성으로 접근하겠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 위해 보건소, 의료기관, 복지기관, 동주민센터 간 연계를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통합 체계로 구축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시민 참여와 행정 투명성 강화도 핵심 축으로 제시됐다. 그는 300인 시민회의 구성, 원탁회의 월례화, 주민총회 강화를 통해 시민주권형 행정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강남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한 지역에서는 주민 의견을 폭넓게 듣고 조정하는 과정이 갈등을 줄이는 데 중요하다. 전 후보는 이를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 실제 정책 결정과 집행에 연결되는 구조로 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전 후보의 공약은 개발, 스마트 행정, 시니어 정책, 녹지, 안전, 시민 참여를 하나의 운영 틀로 묶으려는 의지가 강하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계열 후보로서 ‘이재명 정부의 강남구청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의 경쟁력은 구호보다 복합 현안을 연결해 실행 가능한 행정 과제로 풀어내는 기획력과 집행력에서 가려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강남은 늘 한국 사회 변화의 앞줄에 서 있던 지역이었다. 과거에는 벤처 정책이 산업 구조 전환의 방향을 보여줬다면, 이제는 행정의 속도와 정밀함이 주민의 삶과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이번 선거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강남을 기존의 관리형 행정에 머물게 할 것인지, 아니면 데이터와 예측, 생활 밀착형 집행이 실제로 작동하는 도시로 바꿔낼 것인지가 중요한 선택지가 되고 있다.
전원근 후보의 구상 역시 결국 실행으로 증명돼야 한다. 행정 조직을 움직이고, 예산의 흐름을 바꾸고, 주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먼저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어떤 구상도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반대로 그것이 현실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면, 이번 선거는 강남 행정의 방향을 바꾸는 분기점으로 남을 수 있다.
정연수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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