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가장 어두울 때 더욱 소중한 빛

글·사진 채동균(혜윰뜰도시농업공동체) 채동균은… 영국의 시인 William Wordsworth를 동경하여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였으나, 사회 생활을 IT 기업에서 시작하는 비운을 겪으며, 평생 생업으로 시스템 엔지니어로 활동해오고...

가장 어두울 때 더욱 소중한 빛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어둠과의 싸움은 오래된 서사처럼 이어져 왔다. 해가 지면 찾아오는 밤은 단순히 하루의 절반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과 위협이었다. 원시의 인간은 불빛 하나 없는 밤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어둠은 인간의 시각을 무력하게 했고, 작은 바람소리와 발자국 소리는 언제나 위험을 암시했다. 그 속에서 인간은 움츠러들었지만, 동시에 어둠에 굴복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불의 발견은 인간이 어둠을 몰아내는 첫 걸음이었다. 불꽃은 맹수를 쫓아내고 추위를 막아주었으며, 공동체가 모여 함께 밤을 견디게 했다. 그러나 불은 금세 사그라들었고, 꺼져가는 불씨를 지키는 일은 늘 불안했다. 그 불안을 넘어 인류가 만든 것이 바로 촛불이었다.

촛불은 인류가 어둠 속에서 길어 올린 가장 따뜻한 빛 중 하나였다. 동물의 지방이나 밀랍을 녹여 만든 작은 불꽃은 조용하고 담담하게 타올랐다. 모닥불처럼 크고 장엄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오랜 시간 곁을 지켜주는 빛이었다. 성당의 제단 위에서 기도의 상징이 되었고, 가정의 식탁 위에서는 가족의 안식을 지켜주었으며, 혁명의 광장에서는 수많은 작은 촛불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물결이 되었다. 그러나 촛불은 본질적으로 위태로운 존재였다. 바람에 쉽게 흔들리고, 작은 충격에도 금세 꺼져버릴 수 있었다. 현대의 전구나 LED처럼 안정적이고 강력한 빛에 비하면 너무도 불안정한 불꽃이었다. 우리는 스위치를 켜면 언제나 환한 빛을 얻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촛불의 가치를 잊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그 위태로움이 촛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촛불은 불완전함 속에서 빛나는 존재였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고 버텨내는 작은 불꽃은 마치 인간의 삶을 닮아 있었다. 삶 역시 언제나 안정적이고 확실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흔들리고, 불안하며,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간다. 그래서 촛불의 불안정한 빛은 단순한 불빛을 넘어 인간 존재의 은유가 된다. 약해 보이지만, 바로 그 연약함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깃든다. 촛불이 타오르는 동안, 초의 몸은 조금씩 깎여나간다. 하얀 기둥처럼 서 있던 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든다. 뜨거운 불꽃 아래서 녹 아내린 촛농은 천천히 옆으로 흘러내려 굳어지고, 테이블 위에 고요한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마치 촛불이 스스로를 희생하며 빛을 내고 있다는 눈에 보이는 기록처럼 보인다. 꺼질 때까지 흘러내리는 촛농은 어쩌면 촛불이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불꽃은 더욱 흔들리지만, 초가 줄어드는 그 과정 자체가 빛의 의미를 증명하는 순간이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인간의 삶을 떠올린다. 우리 또한 살아가는 동안 자신을 깎아내며 무언가를 밝히고, 누군가를 지켜내며, 흔적을 남긴다. 촛불이 타고 남은 촛농이 시간의 기록이듯, 우리의 삶 또한 사라져가는 순간들 속에 누군가의 기억과 위로로 남는다. 그 흔적이 때로는 눈물처럼 보일지라도, 그 눈물 속에는 분명히 빛이 담겨 있다.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네온사인이나 LED 조명이 아닌, 작은 촛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거대한 무대 위를 밝히는 스포트라이트는 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외로운 밤길을 지켜주는 작은 불빛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촛불은 스스로를 태워 빛을 낸다. 자기 몸을 줄여가며 다른 이를 위해 빛을 내는 그 모습에서 나는 존재의 의미를 본다. 그것은 헛된 소모가 아니라, 타오르는 동 안 누군가에게 길을 비춰준다는 확실한 증거다. 촛불은 결국 꺼진다. 그러나 촛불이 꺼진다고 해서 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촛불에서 또 다른 촛불로 불꽃은 옮겨 붙는다. 수많은 촛불이 이어지는 그 연속성 속에서 인류는 세대를 거듭하며 어둠을 밀어냈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꺼져가는 불씨를 지켜내고, 그것을 다시 다른 이에게 전해주는 행위의 반복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 연속성을 믿고 싶다. 내 촛불이 다 타서 꺼지더라도, 그 불씨가 누군가의 손에서 새로운 빛으로 피어난다면, 나의 존재는 충분히 의미 있다. 그리고 그 작은 불빛들이 모여 언젠가 또 다른 세상의 어둠을 밀어내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가치가 아닐까. 촛불은 크지 않다. 바람에 흔들리고, 꺼질까 불안한 작은 불꽃이다. 그러나 그 빛을 바라보는 순간,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희망을 얻는다. 그 빛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절망 속에서도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장 어두운 밤일수록 촛불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으려 애쓰는 그 작은 불꽃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다. 완벽하지 않고, 언제나 불안하며, 결국에는 사라지지만, 존재하는 동안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촛농이 천천히 떨어지고 초의 몸이 줄어들어도, 그 과정 속에서 촛불은 끝내 자신이 존재한 이유를 증명한다. 나는 그런 촛불 같은 존재이고 싶다. 내 몸을 깎아내며 불빛을 내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어두운 길을 밝혀주고, 다시 희망의 불씨가 되게 한다면, 그 자체로 삶은 의미 있다. 언젠가 내 불꽃이 꺼져도 괜찮다. 내 빛이 다른 이에게 옮겨 붙어 새로운 촛불로 살아난다면, 나는 이미 충분히 빛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억하고 싶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으려 애쓰며 타오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빛은 이어지고 이어져, 결국 우리의 삶을 밝혀왔다는 진실을. 가장 어두울 때 소중한 작은 빛, 그 빛이 바로 촛불이고,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다.

글·사진 채동균(혜윰뜰도시농업공동체)

채동균은…

영국의 시인 William Wordsworth를 동경하여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였으나, 사회 생활을 IT 기업에서 시작하는 비운을 겪으며, 평생 생업으로 시스템 엔지니어로 활동해오고 있다. 마을에서 우연한 계기로 주민대표를 4년간 맡은 인연으로 혜윰뜰 도시농업공동체 대표가 되었다. 생업과는 별개로 마을에서는 주민공동체 활동, 문화강좌 프로그램 기획 등으로 이웃과 함께 하고 있다.

Tag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