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자금이 부동산에서 기업금융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반도체, 인공지능(AI), 재생에너지와 같은 미래 전략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본격화하는 흐름이다. 정책금융기관이 물꼬를 트면 시중은행이 대출 뿐만 아니라 투자, 보증으로 보폭을 맞추면서 생산적금융이 가시화하고 있다.
7일 금융권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2월 말 국내 은행 총여신 2552조원 중 기업대출은 1379조원으로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 대기업대출의 경우 304조원으로 8.0% 늘었다. 반면 가계대출은 1172조원으로 2.5% 증가에 그쳤다. 주택담보대출은 935조원으로 전월과 같은 수준이었다.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제한되자 기업대출로 자금이 본격적으로 이동하는 양상이다.
◆은행권 대기업대출 증가세…주담대는 주춤
최근 우리은행은 두산그룹의 미래 전략산업에 금융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두산의 에너지·스마트머신·반도체 및 첨단소재 등 미래 성장동력 분야를 중심으로 금융 지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시설투자를 비롯해 수출입 금융, 해외투자, 협력업체 상생금융 등 다양한 방식의 지원이 계획됐다. 특히 두산의 중장기 투자 계획에 맞춰 여신 지원 한도를 사전 설정하는 방식도 도입한다.
반도체 산업에도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 삼성전자의 평택 P5에 국민성장펀드와 총 2조5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삼성전자가 추진 중인 P5 1단계 설비투자는 8조8000억원의 자금이 투자되는 사업으로 6조3000억원은 기업이 자체 조달하고 나머지 2조5000억원은 첨단전략산업기금이 2조원, 5대 시중은행이 5000억원을 공급한다.
삼성전자는 대규모 금융 지원에 힘입어 당초 2030년을 목표했던 설비 가동 계획을 2028년으로 당겨서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및 AI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미래에너지에도 대규모 자금을 공급한다. 5대 은행은 미래에너지펀드를 공동 조성하고 첨단전략산업기금의 장기·저리 대출로 신안우이 해상풍력 사업에 5440억원을 투입한다. 신안우이 해상풍력 발전사업은 국민성장펀드 1호 투자처다.
현대차그룹은 정책금융과 함께 9조원 규모로 새만금에 투자한다.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 주요 정책금융기관은 현대차와 로봇 제조 및 부품 클러스터, 수전해 플랜트, AI 데이터센터, 1GW급 태양광 발전, AI 수소 시티 등을 구축한다. 정책금융기관은 각자 대출·투자·보증 등 다양한 금융수단을 연계한 종합 금융지원 체계를 검토할 계획이다.
◆5대금융지주, 100조원 투입 속도…건전성 관리는 숙제
은행권 기업금융은 대출뿐 아니라 펀드 출자, 보증, 프로젝트금융까지 결합한 산업 육성형 금융으로 확대되고 있다.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은행권은 정책 방향과 맞닿은 미래산업 금융을 키울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
5대 금융지주가 생산적금융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자금은 대략 100조원 규모다. 세부 투자처를 보면 KB금융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집단에너지 사업과 AI·로보틱스 혁신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신한금융은 데이터센터 개발과 태양광, 인프라 사업 관련 펀드를 조성했다. 하나금융은 완도 금일 해상풍력과 부천·인천 AI 허브센터 등에 자금을 투입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우리금융 역시 첨단전략산업 관련 밸류체인 기업 투자와 지역 재생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다. 올해만 75조원 이상이다.
건전성 관리는 숙제다. 첨단산업 금융은 투자 규모가 크고 회수 기간이 길다. 은행이 이 같은 장기 사업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느냐가 생산적금융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기업대출을 늘릴수록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하락할 수 밖에 없어서다. 보통주자본비율은 은행의 전체 위험가중자산(RWA) 대비 가장 안전성이 높은 자본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낸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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