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전략통에서 콘텐츠 업계 대표로
데이터 선별·기성 감독 참여로 리스크 낮추고 흥행 높여
5년 내 글로벌 IP 밸류체인 완성해 콘텐츠 영토 확장
허흥범 레진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검증된 웹툰·웹소설 IP를 숏드라마로 확장하고 있다. 고퀄리티 오리지널 콘텐츠를 바탕으로 숏드라마의 타깃층을 전 세계로 확대하고, 향후 웹툰부터 드라마, 게임까지 이어지는 글로벌 IP 밸류체인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다. = 김두홍 기자
바야흐로 ‘스낵 컬처(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요소)’ 전성시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58.6%)이 숏폼을 즐기는 가운데 그 중심축이 드라마로 이동하고 있다. 2032년 약 146억9000만 달러 규모까지 성장이 점쳐지는 숏드라마 시장은 이제 단기 트렌드를 넘어 공고한 글로벌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 글로벌 콘텐츠 기업 키다리스튜디오와 레진엔터테인먼트를 이끄는 허흥범 대표가 지난 2월 숏드라마 플랫폼 레진스낵을 론칭하며 또 한 번 승부수를 던졌다. 웹툰과 웹소설이라는 원천 IP를 숏드라마로 확장하며, 콘텐츠의 한계 없는 변주와 IP 커머스의 완벽한 순환 구조를 구축한 허 대표를 만나 미래의 청사진을 들었다.
◆금융·전략통에서→콘텐츠 업계 대표
허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중앙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다우기술 경영지원본부, 키움저축은행과 키움예스저축은행 대표이사를 거친 전형적인 금융·전략통이다. 정교한 수치와 리스크 관리가 핵심인 금융권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맨이 창의성이 지배하는 콘텐츠 업계로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허 대표는 27일 “평상시 이미지와 영상 등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무엇보다 콘텐츠의 확장성과 부가가치 창출 가능성에 큰 흥미를 느꼈다”며 “우리 플랫폼이 보유한 IP는 웹툰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영상, 굿즈 등 새로운 영역으로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핵심 자산이다.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는 도전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휘봉을 잡은 이후 키다리스튜디오·레진엔터테인먼트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봄툰과 레진코믹스를 통해 3만여개의 웹툰·웹소설 IP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을 포함해 미국, 일본 등 8개 언어권에서 10개 플랫폼을 서비스하고 있다. 누적 가입자 수는 7000만명에 달한다. 특히 북미 플랫폼 레진US는 2025년 결제액 250억원 규모로 성장했으며 일본 여성향 특화 플랫폼 벨툰JP 역시 결제액 80억원을 돌파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허 대표는 “IT 산업에서의 시스템적 사고와 금융에서의 리스크 관리 경험이 회사의 여러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며 “이종 산업에서의 경험이 오히려 창의성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BM)을 구축하는 실질적인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레진스낵 대표작인 애 아빠는 남사친, 세상에 없는 이웃:뱀파이어 남친들, 내 동거남의 특별한 조건 포스터. = 레진스낵 제공
◆데이터 선별·기성 감독 참여…리스크 낮춘 흥행 공식
최근 론칭한 숏드라마 플랫폼 레진스낵은 허 대표가 구상해온 ‘IP 선순환 구조’의 결과물이다. 허 대표는 레진스낵을 단순한 신규 플랫폼이 아닌 “보유 IP의 생명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콘텐츠 소비 트렌드가 숏폼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검증된 IP가 숏드라마라는 새로운 포맷을 만났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허 대표는 “기존에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흥행성이 검증된 IP를 선별하고 이를 키다리스튜디오의 영상 제작 역량으로 재탄생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고 설립 계기를 전했다.
실제로 레진스낵은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이며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고 있다. 세상에 없는 이웃:뱀파이어 남친들, 남고소년 등 인기 웹툰 IP를 원작으로 한 작품부터 이병헌 영화감독의 애 아빠는 남사친, 이준익 영화감독의 아버지의 집밥(론칭 예정)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라인업을 통해 숏드라마의 질적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론칭 초기임에도 공개하는 작품마다 뜨거운 화제를 일으키며 시장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허 대표는 레진스낵만의 핵심 경쟁력에 대해 “플랫폼 데이터를 분석해 성공 확률이 높은 작품을 선별하여 영상화하기 때문에 리스크는 낮추고 타격률은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키다리스튜디오가 가진 탄탄한 제작 인프라를 바탕으로 유수의 K-콘텐츠 제작진이 직접 참여해 숏드라마임에도 압도적인 고퀄리티를 구현하는 것이 독보적인 강점”이라고 자신했다.
허흥범 레진엔터테인먼트 대표 =김두홍 기자
◆5년 내 글로벌 IP 밸류체인 완성…콘텐츠 영토 확장
급성장하는 시장의 이면에는 숙제도 남아있다. 일각에서는 숏드라마의 열풍이 자칫 도파민 중심 콘텐츠의 과잉 생산으로 이어져 산업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단순한 자극을 넘어선 콘텐츠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핵심 타깃인 젊은 세대가 짧고 강한 콘텐츠에 익숙한 동시에 역설적으로 작품성과 메시지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까다로운 시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허 대표는 이러한 시장의 시선에 대해 “요즘 세대는 짧고 강렬한 즐거움을 선호하면서도 작품의 퀄리티를 냉정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압축된 숏폼 포맷 안에서도 작품의 세계관과 캐릭터의 서사를 고밀도로 구현해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재미는 기본이되 시청자를 끝까지 붙잡는 힘은 결국 탄탄한 서사에서 나온다는 지론이다.
숏콘텐츠가 새로운 소비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실적 성장에 대한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허 대표가 기성 감독과의 협업이라는 강수를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허 대표는 “최근 한국 영화 시장의 침체로 실력 있는 감독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장들의 참여는 숏드라마가 K-콘텐츠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줬다”며 “또 검증된 연출력과 탄탄한 서사가 만났을 때 숏폼이 어디까지 수준 높은 작품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 대표는 기존 2040 중심의 이용자층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기존 웹소설·웹툰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글로벌 이용자들이 어떤 콘텐츠에 열광하고, 어떤 포인트에서 지갑을 여는지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 노하우를 숏드라마에 이식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확실한 타겟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레진스낵의 향후 5년은 단순한 플랫폼 그 이상이다. 그는 “웹툰에서 시작해 숏폼, 드라마, 게임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IP 밸류체인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며 “숏폼은 제작 타임이 짧아 신진 창작자들의 글로벌 데뷔를 돕는 강력한 테스트베드이자 K-콘텐츠의 영토를 확장하는 전략적 시발점이다. 레진스낵을 기반으로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IP 거버넌스를 쥔 콘텐츠 리더로 도약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신정원 기자 garden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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