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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美 연준 칩플레이션 경고···메모리 계급화 '보이지 않는 손'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D램 공급가를 전 분기 대비 100% 인상한 데 이어, 2분기에도 30%를 추가로 올리는 강수를 뒀다. 이는 AI 수요에 따른 자연스러운 우상향이라기보다, 첨단 공정 경쟁력 격차를 만회하기 위한 수익성...

美 연준 칩플레이션 경고···메모리 계급화 '보이지 않는 손'

TSMC가 찢어 버린 무어의 법칙

고성능칩 쏠림이 만든 공급 왜곡

가격 하방 사라진 가전 기기 시장

칩 성능은 오르는데 가격 안 내려

HBM발 칩플레이션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 삼성전자

갤럭시폰 가격은 시간이 지나면 내려간다는 전제가 무너졌다. 출시 1년이 지난 제품 가격이 오르고, 신제품은 더 비싸진다. 재고 소진을 위해 가격을 낮추던 기존 흐름이 뒤집힌 것이다. 중동 전쟁 같은 외부 충격 때문이라기보다, 반도체 공급 구조 변화가 완제품 시장까지 밀고 올라온 결과다. 가격 결정의 기준이 재고에서 원가로 이동한 것이다.

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런 현상 배경에는 TSMC가 주도하는 ‘칩 생태계 재편’이 자리 잡고 있다. TSMC의 CoWoS와 같은 첨단 패키징 솔루션 내에서 고성능 연산 유닛과 얼마나 긴밀하게 통합될 수 있느냐가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 지표가 된 것이다. 수익 구조가 고도화됨에 따라 제조사들이 한정된 자원을 첨단 공정 라인으로 집중 배치하면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일반 기기용 부품들의 공급은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려났다.

결과적으로 기술적 전환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완제품 시장은 원가 상승의 압박을 고스란히 받게 되었고, 제조사들의 선택적 공급 전략은 시장 전체의 가격 하방 경직성을 고착화하는 구조적 연쇄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형국이다.

또한 변화의 중심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쏠림이 있다. 인공지능(AI) 서버 수요가 급증하면서 반도체 생산의 축이 범용 D램에서 HBM으로 이동했다. 동일 공정 설비가 더 높은 수익을 내는 영역으로 재배치되며 범용 메모리는 공급이 줄어든 상태다. 정리하면, TSMC 공정에 투입되는 HBM이 자원을 흡수하고 나머지 메모리는 후순위로 밀린다.

공급 병목이 패키징과 인터커넥트로 확장되는 과정이다. HBM을 생산하더라도 이를 GPU와 결합하는 첨단 패키징(CoWoS)과 인터커넥트 용량이 동시에 확보되지 않으면 생산은 막힌다. 메모리, 패키징, 네트워크 중 하나라도 막히면 전체 생산량이 묶이는 방식으로 병목이 전이된다.

범용 D램 가격은 1년 사이 수배 상승했고,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주요 IT 제품 가격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특히 메모리 투입 비중이 높은 고사양 제품일수록 가격 상승 압력이 크게 작용한다. 구형 제품 가격까지 상승하는 현상은 공급 왜곡이 이미 시장 깊숙이 침투했음을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D램 공급가를 전 분기 대비 100% 인상한 데 이어, 2분기에도 30%를 추가로 올리는 강수를 뒀다. 이는 AI 수요에 따른 자연스러운 우상향이라기보다, 첨단 공정 경쟁력 격차를 만회하기 위한 수익성 보전책에 가깝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TSMC가 선점한 초미세 노드 기반 6T SRAM과 같은 최상위 연산 영역 진입이 지연된 상황에서, 실적 만회용으로 범용 D램 시장 가격 인상을 견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HBM4 등 고부가 메모리 주도권을 놓친 제조사가 한정된 설비 자원을 재배치하며 완제품 업체에 비용을 전가하는 ‘공급자 우위의 가격 왜곡’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돈이 가는 방향’으로 축도 움직인다. 같은 설비라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수익이 몇 배씩 갈리면서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고부가 영역으로 쏠린다. 여기에 환율과 지정학 리스크가 더해지며 비용 압력은 확대된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입 원자재 가격을 밀어올리고, 중동 지역 긴장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제조 비용을 추가로 자극한다. 반도체 원가 상승과 환율 상승이 동시에 작용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비용을 흡수하지 못하고 가격 인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칩플레이션이 완제품 인플레이션으로 전이되는 경로다.

반도체 산업 내부의 권력 구조 역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TSMC가 초미세 공정과 첨단 패키징을 동시에 장악한 가운데 CoWoS 공정을 선점한 SK하이닉스는 HBM을 앞세워 ‘칩플레이션 행동대장’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이다. 반면 범용 D램 중심 확장에 머문 삼성전자는 연산 구조의 핵심인 온칩 메모리(SRAM)와 패키징 결합 경쟁에서 밀리며 존재감이 약화됐다.

미 워싱턴DC의 연방준비제도 / 연합뉴스

공급 잠기고 가격 내려오지 않아

HBM 쏠림 현상 따른 계급 구조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경고와도 맞닿아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2021년 보고서에서 반도체 기술 발전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가격 하락 속도가 과거 대비 둔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 진보와 가격 하락이 더 이상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무어의 법칙 붕괴를 경고한 것이다.

또한 2017년 연준(FRB) 연구는 반도체 가격이 과거처럼 급격히 하락하지 않는다고 분석하며, 트랜지스터 증가가 비용 하락으로 이어지던 구조가 약화됐음을 보여준다. 성능 개선이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지 않는 국면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반대로 첨단 공정으로 갈수록 장비 투자, 전력 소비, 수율 부담이 동시에 증가하는 이른바 ‘록의 법칙’으로 불리는 비용 증가 구조가 기술 발전 속도를 추월하는 양상이다. 달라스 연준 역시 반도체 산업이 가격 하락 산업에서 비용 상승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를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HBM은 고수익 영역이고, 범용 메모리는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다. 한 번 이동한 생산 자원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과적으로 IT 시장은 ‘가격 하방이 사라진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구형 제품은 더 이상 싸지지 않고, 신제품은 더 높은 가격에서 출발한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가격 형성 메커니즘의 변화다. 과거에는 수요가 둔화되면 재고가 쌓이고 가격이 하락하면서 균형이 맞춰졌다. 그러나 지금은 생산이 고부가 영역으로 고정되면서 공급 자체가 잠겨 있다. 이 상태에서는 수요가 줄어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 교체 주기가 길어지고 구매 자체가 지연된 채 가격이 유지되는 ‘경직 시장’으로 이동한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칩플레이션의 피해는 광역적이다. 반도체는 대부분 산업에 투입되는 핵심 중간재다. 가격 상승은 전자제품을 넘어 자동차, 산업장비, 서비스 비용까지 확산된다. 반도체는 더 이상 디플레이션을 유도하는 완충제가 아닌,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무어의 법칙

은 반도체 칩 안에서 트랜지스터 밀도가 일정 주기로 증가하면서, 같은 면적에서 더 높은 성능과 더 낮은 단위 연산 비용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경험칙이다. 핵심은 “성능 향상”이 아니라 “성능 대비 비용 하락”이다. 그러나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구조는 변형됐다. 미세화 자체는 계속되지만, 성능 향상이 더 이상 전체 시스템 비용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특히 TSMC가 주도하는 첨단 공정은 트랜지스터 축소뿐 아니라 CoWoS 같은 패키징, 인터커넥트, 전력 설계까지 통합된 구조로 확장되면서, 무어의 법칙은 칩 내부의 법칙이 아니라 특정 생태계 내부에서만 작동하는 제한된 질서로 재편됐다.

☞록의 법칙

은 이와 반대로 반도체 공정이 진화할수록 공장 건설과 운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경험칙이다. 첨단 노드로 갈수록 EUV 장비, 전력, 수율 관리 비용이 동시에 상승하면서 생산 단가는 낮아지지 않고 오히려 높아진다. 결국 현재 반도체 산업은 무어의 법칙이 만들어내는 성능 향상과 록의 법칙이 만들어내는 비용 상승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에 들어섰다. 그 결과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 즉 성능은 올라가는데 비용은 유지되거나 상승하는 새로운 국면이 형성됐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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