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융사 20곳이 26건 대출 계획
금융사가 기업과 긴밀하게 소통 조건
일본 도쿄 지요다구 가스미가세키에 있는 재무성(낮은 건물)과 금융청(뒤편 높은 건물).
일본이 기업의 기술력이나 고객 기반 등 사업의 장래성을 담보로 잡아 대출을 내주는 ‘기업 가치 담보권’ 제도를 시행하고 나섰다. 부동산 담보나 경영자 개인 보증에 의존하지 않고 기업의 미래 성장 능력을 평가해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다. 일본 내에서 기술력이 있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과 가업을 물려받는 승계자 등이 대출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가운데, 소위 ‘생산적 금융’을 추진하는 한국도 기업의 성장 능력을 담보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26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일본 금융청은 지난 25일부터 기업 가치 담보권 도입을 골자로 하는 ‘사업성 융자 추진법’을 시행했다. 이에 맞춰 일본의 3대 은행 중 한 곳인 미즈호 은행은 나고야 지역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인 ‘가브리치킨’을 운영하는 ‘블룸 다이닝 서비스’를 1호 기업 가치 담보 대출 기업으로 정했다. 일본 지방은행들도 지역 숙박업체나 공장 등을 대상으로 기업 가치를 담보로 대출 실행에 나서고 있다. 일본 금융청은 금융사 20곳이 기업 가치를 담보로 26건의 대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 가치 담보권의 핵심은 금융사가 기업의 현재 자산은 물론 특허나 고객 기반, 성장 전망 등 미래 자산 가치까지 담보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기업이 현재 거두고 있는 매출이나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등 재산이 적더라도 미래 성장 능력만 있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또 담보 조건으로 돈을 빌리는 것이기 때문에, 신용에만 기댈 때보다 대출 한도가 늘어난다.
일본 내에선 스타트업이나 지역 기반 기업, 사업 승계 과정을 거치고 있는 기업들이 주요 수혜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과거 수차례 금융 위기를 겪으며 부동산 담보와 경영자 개인 보증에 의존하는 대출 구조가 형성되다 보니, 이제 막 성장하는 기업들의 자금을 뒷받침하는 기능이 지나치게 약화했다는 것이다. 일본 금융청은 기업 가치 담보권을 도입하면서 “재무제표상 적자가 나는 기업이더라도 제대로 된 기술력과 제품이 있어 장래 계획을 그릴 수 있다면 대출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사들이 미래 가치에 대한 담보를 까다롭게 볼 경우 자금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반대로 기업의 미래 가치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봤다가 부실 대출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일본 금융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사와 기업이 수시로 소통하도록 하면서, 기업이 주요 사업 활동을 금융사에 알리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일본의 기업 가치 담보권 도입에 대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번 정부 들어 ‘생산적 금융’을 앞세우며 스타트업이나 유망 기업에 자본을 적극 공급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미래 가치를 담보로 대출을 내주는 등의 획기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금융사가 스타트업과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내주는 자금은 대부분 부동산·설비 담보 대출이거나 신용 대출이다.
이병권 한국금융연구원 부장은 “미국과 같은 선진 금융 시장에서는 이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미래 가치를 담보로 대출을 내주는 일이 일상”이라며 “한국은 외환 위기 등을 겪으며, 일본처럼 부동산이나 기업 대표 신용에 의존하는 대출 구조가 형성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장 동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 역시 기업 성장 잠재력을 담보로 대출을 취급하는 구조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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