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까요? 전쟁의 폐허 위에서 출발한 나라가 세계가 주목하는 강국으로 성장하기까지, 우리는 매 순간 국가의 운명을 건 선택과 도전을 이어왔습니다. 1950년대의 생존에 대한 갈구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안보의 틀을 만들었고, 원자력과 과학기술의 씨앗을 뿌리는 전략적 결단으로 이어졌습니다. 국가가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기초 체력은 바로 그 절박한 시기에 마련되었습니다.
1960년대와 70년대는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한 처절한 설계와 실행의 시간이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국토의 혈맥을 뚫고, 포항제철이 산업의 골격을 세웠으며,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해 국가의 근육을 키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KIST, KAIST, 그리고 대덕연구개발특구로 이어지는 ‘과학기술 입국’의 기틀이 동시에 완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이후 1980~90년대의 국가 전산망 확충과 정보화 정책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반도체와 IT 강국으로 만든 결정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는 선명한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바로 보수의 가치가 국가 경영의 중심에 있었던 시기였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성과가 결코 통치자 한 사람의 업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뒤에는 시대를 읽고 국가를 설계하며, 치밀하게 실행에 옮겼던 수많은 참모와 전문가 집단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그렇게 최고의 ‘설계 지능’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보수는 어떠합니까? 과거의 위대한 성취를 자산으로 삼고는 있지만, 정작 미래를 설계할 새로운 인재들의 모습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기업과 연구소, 대학, 그리고 해외 곳곳에는 여전히 탁월한 역량을 갖춘 인재들이 즐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좀처럼 정치와 정책의 현장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금의 구조가 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에게 참여의 비용은 너무나 크고,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진입의 문턱은 여전히 높고 폐쇄적입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왜 인재가 없는가”가 아니라, “왜 보수는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했는가”를 겸허히 물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해외의 성공 사례를 냉철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거릿 대처 시대의 영국 재건과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정책 혁신은 정치권 밖의 전문가 네트워크와 싱크탱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들은 인재를 단순히 ‘영입’하는 소모적 방식에 그치지 않고,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정책 설계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반면, 진보 진영이 오랜 시간 기업과 대학, 시민사회와 해외 기관을 유연하게 연결하며 인재 풀을 축적해온 과정은 우리가 솔직하게 인정하고 배워야 할 대목입니다.
이제 보수가 되살려야 할 것은 인재를 찾아 헤매는 기술이 아니라, 국가를 설계했던 그 ‘DNA’ 자체입니다. 더 이상 화려한 경력자를 일회성으로 소비하는 ‘인재 영입’에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전문가가 제 발로 들어와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구조’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단순한 자문역을 넘어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합니다. 일회성 발탁이 아니라 상시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며, 형식이 아닌 실질적인 성과로 평가받는 열린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정치권 밖에서도 국가의 미래 전략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 전문가 네트워크가 작동할 때, 보수의 실력은 비로소 회복될 것입니다.
보수는 이미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성공의 경험과 설계의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골든타임입니다.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보수가 다시 시작해야 할 혁신의 길이자,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를 위한 유일한 응답이라고 확신합니다.
박영준 전 육군사관학교 교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