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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THE Biz Original] K-브랜드를 지켜라① 생존 갈림길에 선 기업들

관세청이 적발한 위조 물품 목록에 삼성전자의 대용량 SD카드와 LG전자의 각종 전자제품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심각한 현실을 보여준다. 자동차와 기계 설비 분야에도 짝퉁의 마수가 뻗어 있다. 내연기관과...

[THE Biz Original] K-브랜드를 지켜라① 생존 갈림길에 선 기업들

글로벌 최대 시장인 미국 내 한국 기업의 영향력이 가전과 자동차를 넘어 뷰티, 콘텐츠, 의료기기 등의 산업군으로 전방위 확대되고 있다. K-브랜드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위조품 유통과 IP(지식재산권) 침해 수법 또한 교묘해지며 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핵심 리스크로 부상했다. 새롭게 출범한 THE Biz(더비즈)는 첫번째 기획으로 산업별 소송 사례를 통해 K-브랜드를 지키기 위한 기업들의 대응 전략을 조명한다. [편집자주]

사진=각 사 제공

[THE Biz(더비즈)=박동인 기자]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한화 등 글로벌 기업부터 BTS,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로 이어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연간 수십조원의 매출과 관광 수익을 올리는 화장품·뷰티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K-브랜드는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주인공으로 자리잡았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콘텐츠와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바야흐로 전세계가 한국 상품, K-브랜드에 주목하는 시대다.

하지만 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무대 뒤에서는 위조품 시장을 둘러싼 우리 기업들의 치열한 법적 공방이 한창이다. 글로벌 인기를 등에 업은 기업일수록 위조품의 주요 타깃이 되면서 ‘K’가 붙는 곳이면 어디든 위조품이 따라붙고 있다. 지식재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 지식재산권(IP)·상표권을 침해하는 위조품의 국제 교역액은 연 11조원, 불법 유통으로 증발한 국내 제조업 일자리만 1만4000개, 날아간 정부 세수만 해도 1조8000억원에 달한다.

위조품의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그 규모도 해마다 불어나고 있다. 하나를 막으면 10개가 생기고 10개를 막으면 100개가 새로 생기는 소모전의 연속이다. 플랫폼과 국경을 가리지 않는 구조 속에서 단속보다 확산 속도가 더 빠른 ‘추격전’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2026년 현재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확장이라는 찬란한 돌풍 뒤로 브랜드의 존립을 걸고 피 말리는 '짝퉁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 전문가도 속는다…고도화된 위조품이 흔드는 브랜드 신뢰

'K-프리미엄'의 최전선에서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는 국내 최상위 대기업들은 위조품 업자들의 가장 구미가 당기는 먹잇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를 구축한 만큼 이를 훔쳐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업자들의 수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하고 집요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전자·통신 장비 분야의 피해는 상상을 넘어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한국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위조품 중 가전제품과 전자·통신 장비의 비중은 62%로, 글로벌 무역에서 발생하는 피해액만 61억 달러(약 9조원)에 달한다. 관세청이 적발한 위조 물품 목록에 삼성전자의 대용량 SD카드와 LG전자의 각종 전자제품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심각한 현실을 보여준다.

자동차와 기계 설비 분야에도 짝퉁의 마수가 뻗어 있다. 내연기관과 오토바이 부품 위조로 우리 기업이 입는 매출 손실액은 추정치로만 18억 달러(약 2조6000억원)다. 그저 외관 엠블럼을 베끼는 수준을 넘어 자동차의 스마트키를 복제해 유통하거나 심지어 산업 현장의 배선용 차단기까지 가짜가 판을 치는 실정이다.

자료=지식재산처

과거 조잡한 수준이었던 위조품들이 이제는 전문가조차 구별하기 힘든 수준으로 진화했다는 점도 참담하다. 이는 위조품으로 인해 기기 고장이나 안전사고, 부작용 등이 발생할 경우 우리 기업들이 오랜 시간 막대한 자본을 들여 쌓아 올린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은 이에 대응해 자체 법무팀과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해 국경을 넘나드는 방어전을 펼치고 있다. 인도네시아나 태국 등 위조품 유통의 주요 거점이 되는 현지에서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고 글로벌 로펌과 공조해 대대적인 국제 법적 분쟁과 소송전을 불사하며 권리 구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 점조직 형태로 뻗어 있는 거대한 짝퉁 유통망을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추적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름없다. 막강한 자본과 인력을 갖춘 글로벌 대기업들조차 위조품과의 끝없는 숨바꼭질 끝에 피로도와 한계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 K-브랜드가 직면한 현실이다.

◆  K-뷰티로 번진 짝퉁 …화장품·콘텐츠 전방위 침투

자료=관세청

최근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이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글로벌 소비재로 부상한 K-뷰티와 엔터테인먼트, 패션 분야의 IP 역시 위조품 업자들의 먹잇감으로 급부상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적발된 K-브랜드 위조물품 11만7000여점 가운데 화장품류(36%)와 완구·문구류(33%)가 전체의 약 70%를 차지했다. 글로벌 히트를 친 스킨케어 브랜드 ‘조선미녀’를 비롯해 신흥 K-패션의 선두주자인 ‘마르디메르크디’, 하이브의 ‘방탄소년단(BTS) 키링’ 등이 대표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의 수법이 제품을 베껴 파는 수준을 넘어서 브랜드의 법적 권리를 훔치는 상표 무단 선점으로 변화한다는 점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 화장품 기업의 상표가 해외에서 무단으로 선점된 사례는 2019년 206건에서 2021년 952건으로 2년 사이 폭증했다.

이들은 이른바 ‘상표 브로커’로 불리며 우리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기도 전에 현지에 상표를 미리 등록하는 수법을 쓴다. 특히 중국의 경우 우리 기업이 화장품(3류)으로만 상표를 등록해 두는 허점을 노려 연관 업종인 액세서리류(14류) 등에 상표를 선점한다. 이후 우리 기업이 현지에 진출하려 할 때 상표권 침해 소송을 걸거나 거액의 합의금과 양도비를 요구하며 현지 사업의 발목을 잡는 식이다.

위조품을 퍼뜨리는 유통 방식 또한 과거 대형 컨테이너를 이용한 방식에서 벗어난 ‘게릴라전’으로 진화했다. OECD에 따르면 K-브랜드를 침해한 위조품 적발 건수의 과반이 넘는 57%가 ‘우편(Mail)’으로 유통됐고 항공 특송(25%)까지 합치면 전체의 80% 이상이 소형 화물 형태로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각 국가의 지식재산권 보호 수준(IP 환경) 점수. 한국은 높은 수준의 IP 경쟁력을 유지했지만 개선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며 정체 국면을 보이고 있다. 자료=미국 상공회의소 ‘International IP Index 2026’ 일부 발췌

더 치명적인 것은 위조품이 유발하는 소비자 피해다. 소비자가 가짜임을 알고도 구매하는 이른바 ‘2차 시장(Secondary market)’의 비중을 보면 의류·신발·가죽 등은 73.8%에 달하지만 향수·화장품은 33.3%, 장난감·게임 등은 8.2%로 급감한다.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위조품 K-뷰티 제품을 정품으로 믿고 구매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잘게 쪼개져 유통되거나 온라인 플랫폼을 따라 판매 채널을 수시로 갈아타는 위조 방식은 중소·중견기업으로서는 사실상 추적과 단속이 불가능하다. 비용과 시간을 들여 법적 승소를 얻어내더라도 손실만이 남은 '피로스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결국 짝퉁과의 싸움은 이기는 것보다 끝까지 버티는 것이 더 어려운 전쟁이 되고 있는 셈이다.

◆ “방패를 무기로”…첨단 기술로 반격 나선 기업들

촘촘한 위조망 앞에서 우리 기업들도 반격에 나서고 있다. 최근 정부가 ‘K-브랜드 정부인증 제도’를 도입하고 해외 세관과의 공조를 통해 국경 통관을 옥죄는 등의 지원에 나섰지만 결국 브랜드를 지켜야 하는 주체는 기업 자신이다. 이들은 소모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위조품이 발붙일 틈조차 주지 않는 ‘선제적 방어’로 전략의 판을 바꾸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카드는 현지 진출 전부터 ‘법적 그물망’을 만드는 것이다. 상표 브로커들이 틈새를 파고드는 것을 막기 위해 핵심 상표 하나만 등록해 두던 과거의 방식에서 탈피한 방식이다. 예컨대 화장품 기업의 경우 본래의 화장품류(제3류)뿐만 아니라 브로커들이 도용하기 쉬운 액세서리류(제14류)나 의류(제25류) 등 연관 업종까지 광범위하게 상표를 선점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제품 스스로가 위조품을 솎아내는 첨단 기술도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추세다. 특허청이 발간한 ‘위조상품 대응기술 가이드북’에 따르면 최근 기업들은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한 AI 기반 ‘비가시성 워터마크’나 스마트폰 스캔 한 번으로 진품 여부와 유통 경로까지 역추적할 수 있는 보안 QR코드를 제품 패키지에 입히고 있다. 이는 글로벌 유통망 어느 곳에서 위조 의심 정황이 발생하는지 실시간 데이터로 짚어내는 기술이다.

자료=지식재산처

뿐만 아니라 가방이나 의류에 근거리무선통신(NFC) 칩 등을 아예 꿰매어 은닉하거나 데이터 위변조를 막는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또한 알리바바의 지식재산권 보호 플랫폼(IPP)이나 아마존의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와 같은 침해 신고·게시물 삭제 요청 시스템에 자사 브랜드를 선제적으로 등록, 위조 의심 게시물을 발견 즉시 자동 차단하는 디지털 방어선까지 구축하고 있다.

민간 기업끼리 협업도 이뤄지고 있다. 화장품, 식품, 패션 등의 기업들이 하나로 뭉쳐 위조품 유통 과정과 악성 판매자에 대한 블랙리스트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여기에 올 하반기부터 시행되는 정부 인증상표 제도까지 가동되면 기업의 대응과 정부의 지원이 결합된 체계적인 구조가 만들어진다.

아무리 정교한 가품이라도 우리 기업들이 쌓아 올린 정품의 무게까지 흉내 내기는 어렵다. 이제 우리 기업들은 자체 기술과 상품뿐 아니라 위조품에 대한 기술과 권리, 집요한 대응으로 '진짜'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수준까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위조품 대응은 브랜드의 신뢰와 시장 질서를 지켜내는 문제다. 기업과 정부가 각각의 수단을 결합해 대응 체계를 고도화할수록 K-브랜드의 경쟁력은 제품 자체뿐 아니라 이를 보호하고 증명하는 역량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은 무조건적인 소송전보다 QR코드나 워터마크 등 자체적인 제품 식별·등록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하반기 가동될 정부 인증상표 제도를 소비자들이 인지하고 활용하도록 민관의 관리가 병행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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