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농협중앙회를 위한 변명
[팜인사이트=편집장 김재민]
최근 MBC PD수첩이 농협중앙회를 '재벌'로 규정하고, 회장의 연봉과 인사권, 선거 과정의 1억 원대 비위 의혹 등을 집중 조명했다. 공영방송의 탐사보도가 공공성 높은 기관을 감시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본령이다.
문제는 감시가 아니라 '프레임'이다. 동일한 잣대가 다른 기관에는 적용되지 않고, 비교 대상이 누락된 수치만 나열되고, 구조가 만들어낸 문제가 개인의 비리로 환원될 때, 보도는 감시가 아니라 단죄가 된다.
이 글은 농협의 면죄부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농협은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가 잘못 설정되면, 지난 30여 년간 반복되어 온 실패의 쳇바퀴에서 또다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PD수첩 보도에는 이 쳇바퀴를 더 빠르게 돌리는 논리가 적지 않다. 짚어야 할 지점들을 하나씩 정리한다.
1. '재벌'이라는 규정, 적절한가
재벌은 통상 특정 가문이 지분과 경영권을 세습하며 계열사를 지배하는 족벌 경영 집단을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다.
농협중앙회장은 전혀 다른 위치에 있다. 1,100여 개 회원조합의 조합장들이 참여하는 선출 방식으로 뽑히는 선출직이며, 임기는 4년 단임으로 연임 자체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분의 세습도, 경영권의 승계도, 가문의 지배도 없다.
세습과 지분 지배가 전제인 '재벌' 개념을, 선출직·단임의 협동조합 대표에게 들씌우는 것은 용어의 오용이다. 선출직 단임 회장을 '총수'라 부른다고 해서 그 기관이 재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프레임을 먼저 설정하고 사실을 꿰맞추는 방식은, 시청률은 올릴 수 있어도 정확한 진단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2. 연봉 8억 원, 비교군 없이 제시된 숫자
보도는 농협중앙회장의 연봉 8억 원을 거액이라는 전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절대액만으로는 과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25년 5월 발표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순위에서 농협은 9위를 차지했다. 한 단계 위(8위)는 HD현대, 한 단계 아래(10위)는 GS다. 그 바로 위·아래 집단 총수들의 2024년 보수는 이렇다.
HD현대(8위) 정기선 회장 : 약 22억 7,000만 원 (HD현대 9억 6,000만 원 + HD한국조선해양 13억 1,000만 원 — 2024년 사업보고서 기준)
GS(10위) 허태수 회장 : 45억 400만 원 (급여 28억 2,600만 원 + 상여 16억 7,800만 원 — 2024년 사업보고서 기준)
농협중앙회장 연봉 8억 원은 재계 순위 한 단계 위 총수 보수의 약 35% 수준, 한 단계 아래 총수 보수의 약 18%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재계 9~10위권에서 돌아가는 보수와 비교해도 '많다'가 아니라 '현저히 적다'가 맞다.
금융지주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 선명하다. 하나금융지주는 자산총액이 약 815조 원(2024년 12월 기준)으로 농협보다 작은 금융지주인데, 함영주 회장의 2024년 보수는 22억 7,440만 원이었다(급여 9억 원 + 상여 13억 7,200만 원 + 복리후생비 240만 원). 2024년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 회장의 평균 연봉은 약 17억 원 수준이다.
거칠게 정리하면, 농협중앙회장은 규모가 더 작은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3분의 1을 받는다. 이것이 'PD수첩이 재벌급 연봉이라 규정한 8억'의 실체다. 동급 민간 금융지주 회장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재계 순위 바로 위·아래 총수의 18~35% 수준에 불과한 보수를 '재벌급'으로 규정하는 것은 공정한 비교가 아니다. 그리고 연봉을 많이 받는게 범죄인가.
인사권 문제 역시 과장됐다. 농협중앙회장이 단독으로 임직원을 임명한다는 식의 서술은 현실과 다르다. 주요 임원 인사는 인사추천위원회를 거치며, 농림축산식품부 및 정치권과의 협의 구조가 관행적으로 작동해 왔다. 회장 1인의 '제왕적 인사권'이라는 전제는 법령의 문언과 실제 운영 모두를 왜곡한다.(집행 과정에서 임추위 위원들이 회장의 의견을 수용한다거나, 이사회 등에서 문제 삼지 않았다면 위원들의 문제이지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 아닌가. 회장 마음)
방송화면 갈무리
3. 구조적 취약성을 개인 비리로 환원하지 말라
보도에서 문제 삼은 '1억 원대 비위'는 상당 부분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사안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선거 구조 그 자체다.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대통령 선거는 모두 일정 득표율을 넘으면 선거비용을 국고에서 보전한다. 그러나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그렇지 않다. 후보자는 수억 원에 이르는 선거비용을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이 구조는 '돈 선거'를 구조적으로 유인한다. 불법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후보자를 구조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어 놓은 제도는 손대지 않은 채, 그 구조 안에서 발생한 사안을 '재벌 총수의 비리'에 빗대어 보도하는 것은 본말의 전도다. 제도를 놔두고 개인만 단죄하는 접근은 유사 사건을 무한 반복시킬 뿐이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초반까지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의 금품수수 문제가 사회적으로 무리를 빚었다.
돈을 트럭으로 받아 차떼기라는 말이 있었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도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선거과정 금품수수 문제를 인정하고 옥살이를 했다. 이러한 정치권 비리가 확 줄어든 것은 가장 큰 부담인 선거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문제를 국가가 해소해 주면서 완화된 것이다.
1억 원대 비위가 용인될 수 있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같은 화면에 대기업 총수의 수백억·수천억 원대 횡령·배임과 나란히 놓고 '농협도 재벌이다'라고 선언하는 연출은, 비위의 경중을 따지는 자리에서 규모 자체를 휘발시킨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감시의 대상은 1억이 아니라 그것을 하게 만드는 구조다.
4. 보은인사, 왜 농협에만 이중잣대인가
PD수첩은 '선거를 도운 사람들이 주요 보직에 앉았다'는 사실을 농협 특유의 농단인 것처럼 편집했다.
그러나 이것은 농협만의 현상도 아니고,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몇 가지를 구분해서 보자.
선거 참모·싱크탱크의 국정 참여는 '공약 실현의 조건'이다
먼저 '선거를 함께한 참모와 싱크탱크가 주요 보직을 맡아 공약 실현을 돕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정책은 혼자 만들 수 없다. 전문성 있는 학자, 실무를 함께 설계한 정책보좌진, 현장을 함께 뛴 동료가 함께 만든 결과물이다.
당선 후 이들을 배제하고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집행을 맡기면, 공약의 문제의식과 설계 철학은 증발한다. 공약의 얼개를 짠 사람이 실행까지 책임지는 것은 '보은인사'가 아니라 정책 연속성의 기본 조건이다.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정권 교체가 그렇게 작동한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캠프 출신의 등용' 자체가 아니라, ▲인사 검증 절차가 실질적으로 작동했는가, ▲인사된 인물이 직무 수행 역량을 갖췄는가, ▲ 과정에서 법령을 위반한 대가성·금전 수수가 있었는가이다. 이 세 가지가 구체적 사실로 입증되지 않으면 '보은인사'라는 프레임은 성립하지 않는다.
-대통령·국회의원·단체장 모두 하는 일, 농협만 문제 삼나
대통령은 정권 출범과 동시에 캠프에서 호흡을 맞춘 참모, 공약을 설계한 학자, 선거 실무를 책임진 인사들을 대통령실 수석·보좌관부터 부처 장관, 공공기관장, 공기업 사장에 이르기까지 대거 등용해 왔다. 역대 모든 정부의 공통된 문법이다.
최근 사례만 봐도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의 사건을 변호했던 변호인 여러 명을 정부 요직에 임명했다. 대장동·위증교사 사건 변호인이었던 조원철 변호사는 법제처장에,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변호인이었던 김희수 변호사는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에, 친형 강제입원 관련 공직선거법 사건 변호인이었던 이태형 변호사는 대통령실 민정비서관에 임명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역시 검사 시절 후배였던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며 '검찰 출신 중용'이라는 평을 받았고, 고교 동창이나 후배, 검사시절 선배 등등 하다 못해 사적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 내각을 채우기도 하고, 주요 자리를 나눠주기도 했다. 나중에는 충암고 후배들로 군 주요 인사를 단행하고, 내란시도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국회의원도, 광역·기초단체장도 다르지 않다. 당선되면 선거 캠프의 핵심이 정책보좌관·비서실·산하기관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는 것이 한국 선출직 정치의 일반 문법이다.
농협중앙회장이 선거 과정에서 함께했던 이들 가운데 몇몇을 주요 보직에 앉혔다는 사실만으로 '재벌급 농단'인 양 묘사하는 것은, 현직 대통령·전직 대통령·국회의원·단체장이 모두 하는 행위를 유독 농협에만 '보은인사 = 비리'의 등식으로 몰아가는 이중잣대다.
더구나 앞서 본 대로 농협중앙회의 주요 임원 인사는 인사추천위원회 절차와 관행적으로 농림축산식품부·정치권과의 협의 구조를 거친다. 제왕적 단독 임명과는 거리가 멀다.
'퇴직 후 복귀'는 국내 30대 대기업집단에서도 흔한 일이다
국내 30대 대기업집단에서도 퇴직했던 임원이 다시 경영진으로 복귀하는 사례는 종종 있다. 물론 농협의 조직적 특수성 — 공공성과 협동조합의 폐쇄성 — 을 감안하면 일반 기업의 '인재 영입' 논리와 결이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퇴직 후 복귀'라는 행위 자체를 특별한 문제로 다루는 것이 과장이라는 점은, 대기업 사례를 몇 가지만 짚어봐도 분명해진다.
-위기 관리·전문성 보충을 위한 복귀
일반 대기업에서 퇴직 임원의 복귀는 대체로 위기 관리나 전문성 보충이 목적이다.
삼성전자는 과거 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 출신 임원들이 퇴직 후 고문으로 있다가, 경영상 필요에 따라 현업 사장직으로 다시 돌아온 사례가 여럿 있다.
현대자동차도 정몽구 명예회장 시절, 퇴임했던 이른바 '가신 그룹' 임원들이 품질 경영이나 해외 생산기지 안정화가 필요할 때마다 부회장·사장직으로 복귀해 그 역할을 수행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SK그룹도 그룹 컨트롤타워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활동하던 인사가 퇴임 후 고문 역할을 하다가, 배터리·바이오 등 새로운 성장동력 사업을 지휘하기 위해 다시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복귀는 재계에서 일반적으로 '전문성 기반의 결단력 있는 인사'로 평가된다. '보은인사', '측근 중용', '농단' 같은 프레임은 거의 붙지 않는다.
-사회적 물의로 물러났다가 복귀한 총수 사례도 있다
대기업 총수가 사회적 물의로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가 일정 기간 뒤 다시 정점의 자리로 돌아오는 일도 드물지 않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4년 배임 혐의 집행유예 확정과 동시에 ㈜한화 등 7개 계열사 대표이사직에서 일괄 사퇴했다가, 5년 뒤인 2019년 집행유예 만료와 함께 주요 계열사 경영에 복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17년 구속으로 경영 일선에서 밀려난 뒤 2022년 형기 만료·광복절 복권을 거쳐 같은 해 10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들의 복귀는 '기업 재도약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해석됐지 '농단'으로 단죄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농협만?
결국 문제는 행위의 유형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잣대를 들이대느냐'다. 대기업 총수가 '과거 손발을 맞췄던 사람'이나 '한 번 물러났던 사람'을 다시 등용하면 경영 판단이고, 대통령·국회의원·단체장이 그렇게 하면 인사권의 행사이고, 유독 농협중앙회장이 그렇게 하면 '보은인사 = 비리'가 된다.
농협의 공공성 때문에 더 엄격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다만 그 감시는 인사 검증 절차의 실효성, 인사 대상자의 직무 역량, 금품 수수 여부 같은 구체적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함께했던 이들을 등용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농단의 근거로 삼는 방식은 다른 조직에는 적용하지 않는 이중잣대일 뿐이다.
선거 과정의 금품 수수는 엄연히 별개의 사안이다. 그것은 처벌의 영역이다.
그러나 '선거 때 함께했던 사람을, 혹은 한때 자리에서 내려왔던 사람을 다시 중용했다'는 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다면, 그 잣대는 대통령·단체장·대기업 총수의 인사 관행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럴 것이 아니라면, 농협만 꺼내 들어 '재벌'의 근거로 삼는 것은 공정한 비판이 아니다.
5. 정작 더 큰 문제, 모피아가 장악한 금융지주
농협을 '재벌'로 규정하면서 놓치고 있는 더 큰 그림이 있다. 한국 금융지주 회장 자리가 구조적으로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는가.
기획재정부·금융감독원 출신, 이른바 '모피아'가 금융지주 회장단을 장악해 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보은인사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농협의 사례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포획 구조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공영방송 MBC는 이 구조를 농협만큼 집요하게 문제 삼지 않는다. 감시의 잣대가 일관되지 않을 때, 보도는 권력의 감시가 아니라 '만만한 대상에 대한 반복적 손쉬운 비판'으로 전락한다.
6. 농민 통제에서 국가 통제로 — '독립감사기구'의 실체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농협법 개정안의 핵심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직접 감독권 확대, 외부 독립감사기구 설치, 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 도입 등이 들어 있다.
언뜻 개혁적 수사로 들리지만, 그 귀결이 향하는 방향은 '농민의 통제'력을 낮추고,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농협중앙회가 전국 조합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90% 이상이 이 개정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고, 주요 쟁점 항목 각각에서도 95% 이상의 반대 의견이 나왔다. 현장이 느끼는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
한국 농협은 지난 30년간 조합장(농민 대표)의 권한을 계속 축소해 왔다. 이번 개정 방향은 경제지주마저 농민의 통제 영역에서 끌어내 국가 통제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흐름에 가깝다.
'독립감사'라는 외피가 씌워져 있지만, 감사권의 귀속이 누구에게 넘어가는가를 보면 본질이 드러난다.
만약 정부가 이 잣대를 정말로 일관되게 적용할 의지가 있다면, 같은 논리를 수협, 산림조합, 신협, 새마을금고, 생협에도 적용해 통제권과 감사권을 가져가야 한다. 그러지 않고 유독 농협에만 적용한다면, 그것은 '협동조합 원리의 회복'이 아니라 '특정 조직에 대한 통제 강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7. '준비되지 않은 민주화'와 36년 관치의 관성
농협에 대한 비판이 길을 잃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역사적 맥락의 생략이다. 1960년대부터 1988년까지 이어진 군사정권 시기, 조합장은 농림부 장관이 임명하고 회장은 대통령이 임명했다.
농협은 사실상 공공기관화된 채 약 40년에 가까운 관치 시대를 보냈다. 1990년을 전후해 관치가 종식되고 조합장 직선제가 도입되며 표면적으로 농협은 농민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조합원이 농협을 이용하는 방식도, 임직원이 농협을 운영하는 방식도, 정부가 농협을 대하는 태도도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다.
이것이 '준비되지 않은 민주화'다. 관성은 무섭고 질기다. 오늘의 농협이 안고 있는 문제들 상당수는 이 관성의 잔재와, 그 잔재를 직시하지 않은 채 제도만 갈아치워 온 개혁 논의의 누적된 결과물이다.
PD수첩이 이 역사적 맥락을 생략한 채 현재 농협만 잘라내 '재벌'로 규정하는 순간, 처방은 다시 엉뚱한 곳을 겨누게 된다.
8. 중앙회만 손대는 땜질식 개혁, 왜 매번 제자리인가
지금까지 논의된 농협 개혁은 거의 전부가 '중앙회 역할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중앙회 회장 선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다.
2000년에는 조직을 합쳐 중앙회 슬림화를 이뤄내겠다 했다. 2012년에는 쪼개 보고(신경분리), 회장 선출 방식도 대통령 임명 → 조합장 선출 → 대의원 선출 → 다시 조합장 선출로 몇 번이나 바뀌었다. 이번에는 전 조합원 투표 방식까지 거론된다.
그러나 중앙회는 종속변수다. 지역농협이 '읍면'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품목농협이 '시군'이라는 한정된 구역에 갇혀 파편화돼 있는 한, 중앙회는 필연적으로 비대해지고 회장의 영향력은 막강해질 수밖에 없다.
종속변수만 끊임없이 바꿔 봐야, 독립변수가 그대로인 이상 결국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지난 30년의 개혁사(史)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신경분리 이후 경제사업은 어떻게 됐나. 자본금의 대부분이 금융지주로 쏠리면서 경제지주는 막대한 부채와 이자 부담을 안게 됐고 투자는 위축됐다.
하나로마트는 쿠팡 등 이커머스 공룡이 시장을 장악하는 동안 낡은 물류 인프라에 머물렀다. 식품 부문은 골든타임을 놓쳤다. '중앙회를 쪼갠' 개혁이 경제사업의 경쟁력을 살렸는가? 현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칼잡이가 아니 외과의사가 메스를 가지고 정확히 환부를 도려내고 봉합해야 했는데, 농협개혁은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 여기찌르고 저기베어내는 이치에 맞지 않게 진행해 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9. 진짜 개혁의 독립변수 — 협동조합 운동과 지역·품목농협 규모화
그렇다면 무엇이 독립변수인가. 두 가지다.
첫째, 협동조합 운동의 고양. 농협은 농민이 자발적으로 출자해 만든 협동조합이다. 소규모 생산자들이 힘을 합쳐 거대 시장의 독과점 기업에 맞서 바잉 파워와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존재 이유다. 조합원 스스로 '왜 협동조합이 필요한가'를 절감하고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지도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 제도만 아무리 바꿔도 농협은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둘째, 지역 및 품목농협의 규모화. 지역농협은 읍·면의 울타리를 넘어 시·군 단위 이상으로 광역화되어야 하고, 품목농협은 시·군 경계를 넘어 2~3개 인접 지역을 아우르는 광역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른바 '메가농협' 전략이다.(본지의 주장) 축협의 경험은 이 방향의 유효성을 이미 보여 주었다. 2000년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 이후 축협은 중앙회의 역할이 축소되고 현장 조합의 경쟁력이 살아났다. 현재 농협중앙회 및 경제지주 내 조직 상당수는 대폭 축소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축소된 상태다. 평택과 안성의 사례처럼, 선제적 광역화에 나선 조합은 대형 하나로마트와 현대화된 RPC(미곡종합처리장)를 기반으로 시장에서 '가격 결정권'을 확보했다.
하부구조가 단단해지면 중앙회는 굳이 억지로 손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슬림화된다. 중앙회장의 권력도 약화된다.반대로 하부구조가 파편화된 상태에서 중앙회만 뜯어고치는 것은, 기둥을 세우지 않은 채 지붕만 고치는 일과 같다.
10. 결론 — 감시의 대상과 방법을 정확히
농협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비판은 정확해야 한다. '재벌'이라는 부정확한 프레임, 비교군이 빠진 연봉 수치, 구조가 만들어낸 문제를 개인 비리로 환원하는 연출, 동일한 잣대를 모피아 금융지주와 다른 상호금융기관에는 들이대지 않는 선택적 감시가 그렇다.
특히 대통령부터 기초단체장까지 선출직들이 선거 공신을 중용하는 '논공행상'에는 침묵하면서, 유독 농협회장의 선거 참모 중용에만 선택적 감시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이 모든 것이 결합될 때, 보도는 진단이 아니라 망신주기와 악막화가 된다. 농협에 대한 악마화와 망신주기는 개혁을 가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농민의 통제에서 국가의 통제로' 옮겨가는 흐름에 명분을 제공할 뿐이다.
농협 개혁의 진짜 방향은 중앙회의 지붕을 몇 번 더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협동조합 운동의 고양과 지역·품목농협의 규모화. 이 두 독립변수에 역량을 집중할 때, 중앙회의 권력과 회장의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재조정된다. 그때 비로소 '농민의 품으로 돌아간 농협'이라는 오래된 약속이 현실이 될 수 있다.
PD수첩이 정말로 농협을 감시하고자 한다면, 지금 다루고 있는 지붕이 아니라 기둥을 비춰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공영방송의 탐사보도가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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