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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NGO 현장]머뭇거리는 민주주의

올림픽공원 시위를 마주했을 때의 머뭇거림을 기억한다. 감각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상상했다. 그들을 해설하는 수많은 말들 사이로 알 수 없는 얼굴들이 떠올랐다. 아직 주조되지 않은 어떤 덩어리들이 떠돈다.

[NGO 현장]머뭇거리는 민주주의

올림픽공원 시위를 마주했을 때의 머뭇거림을 기억한다. 감각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상상했다. 그들을 해설하는 수많은 말들 사이로 알 수 없는 얼굴들이 떠올랐다. 아직 주조되지 않은 어떤 덩어리들이 떠돈다. 정동이라고도 부르는 에너지들이 참정권, 부정선거, 선관위, 자유민주주의 등 온갖 단어 사이를 오가다 사라졌다. 지금은 극우 포퓰리즘에 포섭돼 기괴한 시위가 돼버렸다.

알 수 없는 힘을 감지하고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사회운동의 역할이다. 따라서 사회운동을 한다는 건 확신 위에 서는 것이다. ‘이것은 저것’이라고 명징하게 설명해내야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익숙한 세계에서나 통한다. 세계의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우린 확신하기보다 머뭇거려야 할지 모른다. 올림픽공원 시위에는 분명히 머뭇거려야 하는 국면이 있었다. 확신에 가득한 설명을 잠시 미뤄두고 들여다봐야 했다. 사회운동은 본래 확신에 맞선 불신자들의 모임이기도 하다. 또한 확신의 정체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자기 반추의 도야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메가프로젝트를 두고 속도전을 넘어 전격전에 나서라고 했다. 확신에 가득 찬 명령. 메가프로젝트는 확신의 산물이다. 언제 추락할지 모를 인공지능(AI) 산업과 급락과 급등을 거듭하는 주식시장, 예측 불가능한 기후의 극심한 변동성 앞에 우리 공동체의 명운이 달려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모두가 연루됨으로써 확신을 강요받게 됐다. 확신은 밀어붙이는 힘이 된다. 그 힘 앞에선 죽음으로 쌓아 올린 노동의 권리마저 걸림돌이 된다. 정치는 없고 행정과 통치만 가득하다.

지난해 6월 검사징계법이 개정됐다. 올해 2월 법왜곡죄가 신설되고 재판소원이 도입됐다. 대법관을 증원하는 법률도 통과됐다. 이어 3월엔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결정했고 최근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폐지됐다. 수많은 것이 바뀌었다. 전혜원 기자는 “보완수사권, 전건 송치, 수사지휘권이라는 단어들은 이미 도그마가 되어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해져버렸다”고 적었다. 확신의 공간에서 ‘합리적 토론’이라는 말은 반대의 레토릭으로 치부된다. 머뭇거림은 적의 태도다.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

서울대에 입학하는 사람의 80%가 소득 9분위 이상의 고소득층이라고 한다.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가 돼버렸다. 버틀러의 말대로 우린 물리적 공간으로서 지구 행성에 살고 있지만 동등한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다.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박이대승)는 서로 다른 세계를 살게 된 우리의 현재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다른 반응을 경험한다. 세대나 젠더로 드러나는 차이를 아득히 넘어선다. 서로를 오가는 상호 침투는 물론 같은 세계 속에 얽혀 있다는 감각마저 희소해진다. 경계가 뚜렷해질수록 머뭇거려야 하지만 자기 세계에 갇혀 확신의 강도를 높인다.

정치가 “이성적, 감성적으로 상대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버나드 크릭)이라면 확신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반정치의 세계다. 그동안 우리는 정치를 결집하고 봉기해 응징하고 탈환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선악의 숭고한 대결이다. 그만큼 뜨겁고 정의로우며 비장해야 했다. 하지만 갈라지고 나뉘어버린 세계는 ‘미지근한 민주주의’(김정환)와 더 어울리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사회운동은 머뭇거리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머뭇댐으로써 쌓아 올리고, 이어 붙이고 가로지를 수 있다. 조금은 식어버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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