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본사 전경.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중동 사태 속 긴장 고조로 글로벌 방산시장 재편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무기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단일 무기 체계 경쟁을 넘어 육·해·공과 우주, 사이버까지 아우르는 ‘통합 방위 솔루션’이 새로운 경쟁 기준으로 자리 잡는 흐름이다.
◆전쟁이 키운 수요… 글로벌방산 '몸집 경쟁'
22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방산 기업들은 인수합병(M&A)과 합작법인(JV), 조직 재편을 통해 사업 영역 확장에 속도를 높이는 양상이다. 전쟁 장기화로 각국의 군비 지출이 늘어나면서 대형 프로젝트 규모가 커졌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 간 경쟁도 한층 격화된 모양새다.
유럽 최대 방산기업인 라인메탈은 지상 무기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해양 방산으로 영역을 넓혔다. 독일 조선사 뤼르센그룹의 군함 건조 부문을 인수하며 수상 전투함 생산 능력을 확보했고 프랑스·독일 합작 유도무기 기업 MBDA와는 레이저 무기 개발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여기에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와 군용 차량 협력까지 추진하며 전방위 확장에 속도를 낸다.
스웨덴 사브는 해군 사업부를 통합해 잠수함, 무인잠수정, 전투체계까지 묶는 조직 개편에 나섰다. 영국 BAE시스템은 55억달러를 투입해 미국 볼 에어로스페이스를 인수하며 우주 사업부를 신설했고 미국 노스럽그루먼은 오비탈ATK 인수를 통해 위성·미사일 통합 역량을 확보했다. 록히드마틴 역시 소형 위성 기업을 인수하며 우주 영역을 강화했다.
전장 확장에 따라 방산 기업들은 특정 무기 체계에 머물지 않고 육·해·공과 우주, 사이버를 아우르는 ‘다영역 통합 기업’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경남 사천에 위치한 KAI 본사 전경. 사진=KAI
◆경쟁 구도 변화… 협력 기반 대응 전략 확대
글로벌시장에서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는 동안 국내 방산업계에서도 미묘한 균열이 감지된다. 경쟁 관계에 있던 기업들 사이에서 협력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화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확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은 최근 KAI 지분 4.99%를 확보하며 4대 주주로 올라섰다. 2018년 지분을 전량 매각한 이후 약 7년 만에 다시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 투자보다는 항공·우주 분야 협력 강화를 염두에 둔 전략적 행보로 내다봤다. 한화시스템은 레이더·통신·항공전자 등 핵심 전자 기술을 보유했으며 KAI는 항공기 플랫폼과 체계종합 역량을 갖춘 기업이다. 두 회사가 결합할 경우 센서와 플랫폼이 결합된 완성형 무기체계 구축이 가능해진다.
나아가 이번 지분 확보를 두고 향후 인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현재로서는 협력 확대 수준에 무게를 두는 시각과 중장기 지배구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함께 존재한다.
조선업계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감지된다. 경쟁 관계인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공동 대응을 논의하는 등 프로젝트 단위 협력 모델을 모색한다. 대형 방산 프로젝트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동시에 요구되는 만큼 단일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4차 발사를 맞아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AI로 확장… '국가대표 체제' 필요성 부각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 흐름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장의 개념 자체가 빠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에서는 이미 위성 정보와 인공지능(AI)이 결합된 전 영역 작전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위성 데이터 기반 표적 탐지, AI를 활용한 위협 판단, 드론과 전자전이 결합된 전투 양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방산 경쟁의 축이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네트워크 중심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우주 산업은 방산 경쟁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위성 통신과 정찰, 미사일 경보 체계를 통합하기 위해 우주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한다. 유럽의 에어버스와 탈레스, 레오나르도는 우주 사업을 통합 법인으로 묶는 방안을 추진했고 미국 기업들도 대규모 인수를 통해 관련 역량을 빠르게 확보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 방산 산업은 여전히 개별 기업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산 능력과 가격 경쟁력, 빠른 납기라는 강점을 기반으로 수출 성과를 내고 있지만 다영역 통합 체계나 우주 기반 전력에서는 격차가 존재한다는 평가다.
기업 간 협력과 통합을 통한 산업 구조 재편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화와 KAI의 협력 가능성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으로 분석된다. 항공기 플랫폼과 전자·위성 기술이 결합될 경우 통합 방위 솔루션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판 스페이스X’ 필요성으로까지 연결한다. 대형 앵커 기업을 중심으로 위성, 발사체, 항공, 방산을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독점 구조에 대한 우려와 정부 지분 매각 문제 등 현실적 변수도 함께 존재한다.
글로벌 방산시장은 이미 다영역 통합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을 보인다. 전쟁 이후 확대된 수요가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에 따라 국내 방산업계에서도 수출 확대 이후 전략 방향을 둘러싼 고민이 커지는 모습이다. 개별 기업 중심 경쟁을 유지할지, 협력과 통합 기반 산업 구조로 전환할지에 따라 중장기 경쟁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시장은 단일 무기 체계가 아니라 다영역 통합 솔루션 중심으로 재편된다”며 “국내 기업들도 협력과 역할 분담을 통해 대응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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