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환경한림원 주최로 개최된 ‘제27차 환경정책심포지엄’에서는 순환경제 시대를 맞아 한국형 에코디자인(K-ESPR) 제도화 방향과 산업 전환 전략이 논의됐다. /사진=박준영 기자
[한국프레스센터=환경일보] 박준영 기자 = 순환경제가 폐기물 감축을 위한 환경정책을 넘어 글로벌 시장 진입과 공급망 경쟁력을 좌우하는 새로운 통상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에코디자인 규정(ESPR)과 디지털제품여권(DPP)을 앞세워 제품 설계부터 생산·유통·재활용까지 전 과정의 지속가능성을 요구하면서 국내 제조업도 이에 대응한 산업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는 한국형 에코디자인(K-ESPR)을 단순한 환경규제가 아닌 제조업 경쟁력 강화 정책으로 설계하고, 재생원료 시장과 공급망 데이터 인프라, 금융·세제 지원을 함께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환경한림원은 지난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순환경제 시대의 에코디자인과 ESPR 대응-한국형 에코디자인(K-ESPR)의 방향과 산업전환 전략’을 주제로 제27차 환경정책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EU의 ESPR 시행에 대응해 국내 에코디자인 제도화 방향을 살펴보고, 산업계가 준비해야 할 공급망·데이터·재생원료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재영 회장은 순환경제가 글로벌 산업질서와 공급망을 재편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며, 한국형 에코디자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강조했다. /사진=박준영 기자
김재영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은 개회사에서 “순환경제는 환경정책을 넘어 글로벌 산업질서와 공급망을 재편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며 “학계와 정부, 산업계가 함께 한국형 에코디자인 체계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금한승 차관은 에코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부도 산업계와 협력해 K-에코디자인 제도를 마련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밝혔다. /사진=박준영 기자
금한승 기후에너지환경부 차관은 축사를 통해 제품 설계 단계부터 지속가능성을 반영하는 에코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도 산업계와 긴밀히 협력해 한국형 에코디자인 제도를 마련하고, 기업이 새로운 제도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주태 사장은 순환경제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진화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자원순환과 공급망 안정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말했다. /사진=박준영 기자
이주태 포스코홀딩스 사장은 순환경제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며, 철강과 이차전지 소재 산업을 중심으로 자원순환과 공급망 안정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협력하는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심포지엄을 공동 기획한 임지원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은 국내 순환경제 정책을 국제 공급망 변화와 연계해 설계해야 한다고 짚었다.
임 원장은 “순환경제는 글로벌 공급망과 연계된 ESG 정책인 만큼 재생원료와 산업 부산물의 글로벌 이동 및 교역 활성화도 중요한 과제”라며 “국내 정책 역시 국제 공급망 변화와 연계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순환경제, 환경규제 넘어 시장 진입 조건으로
허탁 건국대학교 명예교수는 순환경제를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진입 기준으로 보고, 가치보존 중심의 한국형 순환경제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준영 기자
허탁 건국대학교 명예교수는 첫 발제에서 순환경제가 더 이상 폐기물 관리에 머무는 환경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질서로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허 교수는 글로벌 자원 순환율이 6.9%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ESPR, DPP가 결합하면서 순환경제가 ‘사후 규제’를 넘어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진입 기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단순히 폐기물을 얼마나 재활용했는지가 아니라 자원의 가치를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재활용 중심의 순환경제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보존하는 ‘순환경제 2.0’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폐기물 관리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순환자원 전환과 DPP, 전과정평가(LCA), 가치보존을 중심으로 한 데이터 기반 정책을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맹학균 기후에너지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생산 단계부터 지속가능성을 반영하는 한국형 에코디자인(K-ESPR)을 통해 순환경제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준영 기자
이어 발표한 맹학균 기후에너지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한국형 에코디자인 추진계획을 소개하며, 순환경제를 탄소중립과 함께 미래 산업 전환을 이끌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맹 과장은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설계 단계에서 이미 80%가 결정된다”며 “재활용만으로는 순환경제를 완성할 수 없으며, 생산 단계부터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에코디자인이 해답”이라고 말했다.
기존 재활용 정책이 제품 사용 이후의 폐기물 처리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제품 기획과 설계 단계부터 내구성, 수리 용이성, 재생원료 사용, 자원 효율성 등을 함께 고려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지난해 에코디자인 제도화 추진 방침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 에코디자인 포럼을 출범시키고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섬유·의류, 타이어, 철강, 전기전자 등 주요 품목을 중심으로 제조업계와 재활용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품목별 포럼을 운영해 K-ESPR 세부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 규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산업 기반도 단계적으로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K-ESPR, 규제·시장·공급망 함께 설계해야
토론자들은 한국형 에코디자인(K-ESPR)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와 산업계가 공급망과 재생원료, 데이터 기반을 갖춘 통합 정책을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준영 기자
이어진 지정토론에서는 K-ESPR이 산업 현장에 안착하려면 규제 도입에 그치지 않고 공급망과 데이터 인프라, 재생원료 시장, 기업 지원 정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토론은 유연철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사무총장이 좌장을 맡았으며, 조지혜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남정임 한국철강협회 기후환경안전실장, 김노경 대한상공회의소 탄소감축인증센터장, 이한경 에코앤파트너스 대표, 김훈태 포스코홀딩스 미래전략본부 ESG사무국장이 참여했다.
토론자들은 EU가 에코디자인과 DPP, 재생원료 정책, 산업 지원을 하나의 패키지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리나라도 제품 설계부터 원료 조달, 생산, 유통, 재활용, 데이터 관리까지 연결되는 통합 정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품질 재생원료 시장을 육성하고 핵심광물 순환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녹색금융과 세제지원, 공공조달을 연계해 기업의 초기 투자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산업계에서는 제도의 실효성을 뒷받침할 기반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철강업계는 철스크랩 회수체계 고도화와 순환자원 인정 기준 확대, DPP를 활용한 원료 정보 관리체계 구축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철강 생산에 투입되는 원료의 출처와 재생원료 함량, 탄소배출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글로벌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중소기업이 DPP에 자체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국가 차원의 공급망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재생원료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이중 규제 부담을 줄이는 방안으로 EU 제도와의 상호인정 필요성도 제기됐다. 국내 기준을 국제 규범과 연계해 설계하고, 기업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데이터를 여러 제도에 반복 제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토론자들은 K-ESPR을 글로벌 환경규제에 방어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산업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지난 1일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제27차 환경정책심포지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준영 기자
원료 조달부터 생산·소비·회수·재활용까지 전 밸류체인을 아우르는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정부와 기업이 ‘원팀(One-Team)’으로 제도 설계와 이행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형 에코디자인의 성패는 규제 기준 마련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재생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시장과 제품 정보를 공유할 데이터 기반, 기업의 전환 비용을 낮출 지원체계를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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