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IT큐레이션] "숏폼이 본편을 흔든다" 웹툰·예능·다큐까지 흔드는 변주...

한때 지상파는 유튜브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콘텐츠 유출, 저작권 분쟁, 시청층 이탈을 두고 전방위적으로 충돌한 바 있다. 유튜브 등에서 지상파 콘텐츠들이 전부 후퇴, 사태가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신경전으로...

[IT큐레이션] "숏폼이 본편을 흔든다" 웹툰·예능·다큐까지 흔드는 변주...

한때 지상파는 유튜브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콘텐츠 유출, 저작권 분쟁, 시청층 이탈을 두고 전방위적으로 충돌한 바 있다. 유튜브 등에서 지상파 콘텐츠들이 전부 후퇴, 사태가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신경전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지금은 아니다. 직접수신율 0% 수준의 시대를 맞아 지상파는 유튜브를 적이 아닌 2차 유통의 무대로 받아들였다. KBS·MBC·SBS의 유튜브 공식 채널, 'JTBC 뉴스룸' 클립, '나 혼자 산다' 하이라이트는 본방송 못지않은 트래픽을 만들어냈다. 본편이 살기 위해 변주의 무대를 넓힌 셈이다. 이제는 공존의 시대다.

그 자리에 또한번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숏폼이다. 1~2분짜리 짧은 영상을 보고 끝내는 단계를 지나 웹툰·예능·다큐멘터리·OTT 등 기존 장르의 본편 안으로 숏폼 문법이 직접 스며들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콘텐츠가 숏폼을 '활용'하는 단계를 넘어 숏폼이 본편의 형식과 기획을 다시 쓰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숏폼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을 넘어 숏폼이 뉴미디어의 변주로 활용되는 흥미로운 미장셴의 연속이다.

코미기 숏리그. 사진=티빙

숏폼의 변주, 그리고 미장셴

티빙은 오는 6월 1일 오리지널 예능 '코미디 숏리그'를 공개한다. 12주 동안 평일 매일 3팀의 새 쇼츠가 공개돼 총 192편의 코미디 쇼츠가 제공되는 구조다. 한 편당 분량은 2분30초 내외로 기존 공개 코미디의 5분 안팎 콩트보다 짧다.

출연진은 이용진, 황제성, 곽범, 이창호 등 SNS 기반으로 팬덤을 쌓아온 코미디언이 주축이며 12회 합산 성적으로 결정되는 최종 우승팀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티빙 오리지널 코미디쇼' 1회를 직접 기획·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티빙 관계자는 "기존 코미디보다 더욱 빠르고 강렬한 웃음 포인트를 예고한다"며 "OTT 최초의 시도"라고 설명했다. SNS에서 검증된 숏폼 코미디 문법을 OTT 안으로 끌어와 본편 라인업의 한 축으로 세운 사례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단순 클립 제공을 넘어 본편 시청과 연결되는 탐색형 유입 채널로 숏폼을 재배치하고 있다. 실제로 티빙은 지난 2024년 12월 모바일 앱 내 '쇼츠' 탭을 신설해 tvN·Mnet 라이브러리 기반 하이라이트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자체 제작 '티빙 숏 오리지널'을 론칭했다.

편당 1~2분 내외 초단편 콘텐츠로 제공되는 구조다. 티빙은 "스포츠와 라이브 콘텐츠를 통해 이용자의 체류 시간과 참여도를 높이고, 숏폼 콘텐츠를 본편 시청으로 연결하는 탐색형 유입 채널로 고도화함으로써 플랫폼 이용 경험 전반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왓챠도 1분 안팎 세로형 숏폼 드라마 전문 서비스 숏챠를 운영 중이며 한국·중국·일본·미국 등 다국적 숏폼 드라마를 다룬다.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미국·영국·프랑스 등에서 자체 오리지널 클립과 예능·다큐멘터리를 30초~1분 내외로 요약해 보여주는 '패스트 래프(Fast Laughs)' 기능을 운영하고 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모바일 네이티브 풀스크린 환경에서 장르를 넘나드는 코믹한 순간들을 제공해 회원들이 빠르고 직관적으로 콘텐츠를 탐색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웹툰 플랫폼은 변주의 폭이 더 크다. 당장 카카오픽코마는 이달 말 일본 픽코마에 숏폼 애니메이션 전용 카테고리 애니메(ANIME)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검증된 인기 일본 만화·웹툰 IP를 짧고 강렬한 영상 콘텐츠로 재가공하며 제작 공정에 AI 기술을 전격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일본 총무성 '정보통신백서 2025'에 따르면 일본 10대의 틱톡 이용률은 65.7%, 20대는 58.7%에 달한다. 웹툰을 읽지 않는 세대를 겨냥해 IP를 영상으로 재구성한 셈이다. 신종환 카카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7일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픽코마는 풍부한 작품 아카이브와 견고한 팬층을 기반으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회를 제공해 이용자의 트래픽과 몰입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애니메. 사진=픽코마

네이버웹툰도 움직였다. 지난해 9월 한국에서 숏폼 애니메이션형 비디오 기능 '컷츠(Cuts)'를 도입했다.

이용자가 장면·효과·캐릭터를 활용해 2분 이내 숏폼 애니메이션을 직접 제작·공유하는 사용자생성콘텐츠(UGC) 구조다. 앞서 영어 서비스에는 '비디오 에피소드'를 선보였다. 세로 스크롤 형식의 웹툰에 이미지 움직임, 효과음·배경 음악, 성우 연기를 더해 영상처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형태다.

인기 영어 오리지널 작품 14편부터 적용을 시작했고 회차 당 평균 5분 내외 분량으로 제작됐다. 웹툰 엔터테인먼트의 2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영어 서비스 '웹툰(WEBTOON)' 앱은 숏폼 트레일러 탭 '뉴 앤 핫(New & Hot)' 등 서비스 개편 효과로 2분기 월간활성이용자 수(MAU)가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지난해 4월 카카오페이지에 AI 숏폼 '헬릭스 숏츠'를 도입해 작품의 장면·구도·대사를 분석해 짧은 소개 영상을 자동 생성하고 있다. 리디는 지난해 7월 일본에서 글로벌 숏드라마 서비스 '칸타'를 선보였고, 'K숏드라마'가 공개 직후 상위권에 진입하며 일본 시장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2025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숏폼 콘텐츠 이용률은 78.9%로 최근 3년간 증가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만화·웹툰 이용자 조사'에서는 이용자의 58.5%가 웹툰 기반 숏폼 콘텐츠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장면·컷 중심으로 웹툰을 접하는 비중도 40% 안팎, 인스타툰 등 짧은 형식의 웹툰 소비 경험은 42.0%에 달했다. 회차 단위 감상에서 벗어나 짧은 장면 기반의 탐색·선택 구조가 주류로 올라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큐멘터리 영역의 변주도 뚜렷하다. 글로벌에서는 넷플릭스 '풍미원산지(Flavorful Origins)'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회당 짧은 분량으로 식재료와 식문화를 다루는 시리즈 숏폼 다큐멘터리로 심층적 탐구나 설명을 줄이고 클로즈업·익스트림 클로즈업 숏을 중심으로 식재료와 음식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화면분할 기법과 청각 요소 결합으로 단조로움을 보완해 부담 없이 이어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통적 다큐멘터리가 한 편을 길게 풀어내는 방식이라면 부티크 다큐멘터리는 짧은 회차를 묶어 시리즈로 소비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2026년 경기 지역자원 활용 콘텐츠 제작지원' AI 숏폼 부문에 20개사가 선정됐다. 동양대학교 영상미디어학과 김태은 교수가 총괄하는 비에스 플래닛은 '사라진 클럽의 노래 : 보산동에서 시작된 한국 록의 기억'을 추진한다.

동두천 보산동 관광특구 일대에 남아 있는 미군 클럽 문화와 한국 록 음악 초기 형성 과정을 조명하는 음악 다큐멘터리 형식의 AI 숏폼 콘텐츠다. 지역 다큐멘터리가 본래의 호흡을 유지한 채 숏폼이라는 새 그릇에 담기는 셈이다.

영화 영역에서도 변주가 시작됐다. 손석구 주연의 12분59초짜리 '밤낚시'는 지난해 1000원 '스낵 무비'로 CGV에서 상영돼 4만 관객을 돌파했다. CGV는 이후 15분짜리 ASMR 숏폼 콘텐츠 3종을 1000원에 상영하는 캠페인을 이어갔다.

콘텐츠 업계 한 관계자는 "숏폼 중심 유입이 이미 주류가 됐다"며 플랫폼 간 신포맷 경쟁이 더욱 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숏폼 관련 시장 규모는 2021년 432억달러에서 올해 1350억달러 수준으로 연평균 25.6%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연합뉴스

지상파-유튜브의 동거, 그 다음 변주

지상파와 유튜브의 관계는 콘텐츠 산업이 새로운 매체와 어떻게 화해하는지를 보여준 대표 사례다.

초기 갈등 국면에서 지상파는 유튜브를 콘텐츠 유출 창구로 인식했다. 본편 시청률 잠식, 광고 수익 분산, 저작권 분쟁이 겹치면서 지상파는 유튜브에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도는 뒤집혔다.

지상파는 유튜브를 본편의 적이 아닌 본편의 2차 유통 무대로 재해석했다. 본방송에서 놓친 시청자를 클립으로 다시 끌어오고, 클립의 화제성이 본방 시청률로 환류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나 혼자 산다' '런닝맨' 하이라이트, JTBC 뉴스 클립, MBC '놀면 뭐하니' 비하인드는 본편의 생명을 연장하는 장치가 됐다. 콘텐츠가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 변주된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넥스트 레벨이다. 유튜브가 '본편의 2차 유통 무대'였다면 숏폼은 '본편의 형식 자체'를 흔들고 있다. 당장 티빙의 '코미디 숏리그'는 본편 예능을 짧게 잘라 SNS에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2분30초짜리 192편을 본편으로 기획했다.

픽코마 '애니메'는 웹툰을 영상화한 OTT용 애니메이션의 축약본이 아니라 처음부터 숏폼 소비를 전제로 IP를 재가공한 결과물이다. 네이버 '비디오 에피소드'는 웹툰을 영상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세로 스크롤 웹툰에 영상 문법을 직접 내장했다. 다큐멘터리는 한 편을 길게 풀어내는 호흡 대신 짧은 회차를 시리즈로 묶는 부티크 형식으로 진화 중이다.

핵심 차이는 '용기'와 '내용물'의 관계다. 지상파-유튜브 시기에는 본편이라는 내용물은 그대로 두고 유통 용기만 바꿨다. 그러나 숏폼 시기에는 용기가 내용물을 다시 빚어내고 있다. 2분30초 분량을 전제로 한 코미디는 5분짜리 콩트와 다른 호흡으로 쓰이고, 세로 스크롤 영상화는 페이지 컷 단위 연출과 다른 문법을 요구한다.

형식이 바뀌면 기획·제작·소비 전 과정이 함께 바뀐다. 지상파가 유튜브를 받아들이며 살아남았다면, 본편 콘텐츠는 이제 숏폼을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을 다시 쓰는 중이다. 변주가 본편이 되는 순간이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