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로봇이 공장에 안착하기까지 걸리던 수개월의 시간이 1~2개월로 줄어든다. 새로운 시대가 열릴까?
LG CNS가 7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RX 미디어데이를 열고 로봇 도입을 위한 학습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을 하나로 통합해 관리하는 RX(로봇 전환) 플랫폼 피지컬웍스를 공개했다.
사람의 원격 조종 없이 형태가 다른 로봇 4종이 자율적으로 협업하는 모습이 국내 최초로 시연됐다. 실제로 행사 단상에는 이족보행 휴머노이드와 사족보행 로봇이 먼저 올라섰다. 그 뒤를 따라 입장한 현신균 LG CNS 사장은 로봇이 건네는 마이크를 받아들고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하드웨어 중심의 로봇 시장을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중심의 RX 시장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현신균 사장이 피지컬웍스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LG CNS
피지컬웍스는 로봇 데이터 수집과 학습, 검증, 현장 적용, 운영, 관제를 하나로 묶은 RX 플랫폼 브랜드다.
국내 기업이 로봇 학습부터 운영까지 엔드투엔드 플랫폼을 자체 브랜드로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플랫폼은 학습과 검증을 담당하는 피지컬웍스 포지(Forge)와 운영과 관제를 맡는 피지컬웍스 바통(Baton) 두 축으로 구성된다. 단련하다는 뜻의 포지는 로봇을 현장 투입이 가능한 수준으로 다듬는 역할을, 지휘봉을 뜻하는 바통은 다양한 로봇을 하나의 체계에서 통솔하는 역할을 각각 맡는다.
포지는 로봇 학습용 데이터 확보부터 가상 환경 검증, 현장 최적화 적용까지 단일 플랫폼에서 처리한다. 기존처럼 로봇이 사람의 행동을 수천 번 반복 모사하는 방식을 넘어 실제 현장과 업무를 3D 가상 환경에 구현한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학습에 활용해 효율을 높였다. AI가 학습에 유효한 데이터를 자동으로 골라내고 불필요한 구간을 제거하며 3D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작업 안정성을 사전 점검한 뒤 현장에 투입하는 구조다. 향후 사람의 작업 영상을 학습 데이터로 전환하거나 모션캡쳐를 활용하는 방식도 추가 적용할 계획이다.
바통은 제조사가 다른 이족보행과 사족보행, 휠 타입 로봇을 한 체계에서 묶어 관제한다. 로봇별 작업을 자동 배분하고 이동 동선을 최적화해 충돌을 막는다. 에이전틱 AI는 컨베이어벨트 정지나 특정 로봇 고장 같은 돌발 변수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작업 흐름을 다시 짜준다. 컨베이어벨트가 멈추면 물류 동선을 자동으로 재구성하고 특정 로봇이 멈추면 해당 작업을 다른 로봇으로 즉시 전환하는 식이다. 기존 제조실행시스템(MES)이 다루기 어려웠던 비정형 작업까지 자동화 범위를 확장했다.
자율주행로봇(AMR)과 무인운반로봇(AGV) 100대 규모 운영 환경에 바통을 적용할 경우 생산성은 약 15% 이상 향상되고 운영비는 최대 18%까지 절감될 것으로 LG CNS는 내다봤다. 제조사가 혼재된 환경일수록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LG CNS '피지컬웍스 포지'로 학습 마친 이족보행, 사족보행, 휠 타입, 자율주행로봇(AMR) 등 4종 로봇이 '피지컬웍스 바통'을 기반으로 물류 현장에서 자율협업하며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 사진=LG CNS
한편 이날 시연장에서는 비상 상황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자 컨베이어벨트에서 대기하던 사족보행 로봇이 즉시 점검 현장으로 이동해 계단을 오르내렸다. 동시에 종합 관제 시스템은 사족보행 로봇을 대체할 가용 로봇을 찾아 일을 분배했고 잠시 쉬고 있던 물류 로봇이 빈자리를 메웠다. 모든 공정이 자동화된 다크 팩토리를 넘어 실시간으로 로봇이 하는 일을 변경할 수 있는 다이내믹 팩토리의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상용화 사례도 축적되고 있다. 포지는 전자와 화학, 전지, 물류, 조선 등 20여 개 고객사와 개념검증(PoC)을 진행 중이다. LG CNS 측은 약 10건은 진행 중이고 약 10건은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바통은 지난해 12월 부산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사업에 1차 투입돼 순찰과 바리스타, 짐 운반, 청소 등 4종의 로봇을 통합 관제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사업 성과 가시화 시점에 대해 이준호 LG CNS 스마트물류시티사업부 전무는 "성과 가시화에는 약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관계 설정도 주목된다. 박상엽 LG CNS CTO 상무는 엔비디아 아이작 등 기존 로봇 플랫폼과의 차별점을 묻는 질문에 "엔비디아 소프트웨어 스택은 학습 영역에 집중돼 있는 반면 피지컬웍스는 데이터 획득과 학습, 운영을 모두 묶은 엔드투엔드 플랫폼"이라며 "엔비디아 기술도 다수 차용하고 있고 시장의 다양한 플랫폼과는 경쟁보다 협업 관계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습 영역은 엔비디아 생태계를 적극 활용하되 그 위에 산업 현장을 가장 잘 아는 IT 서비스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더해 차별화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투자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홍진헌 LG CNS 전략담당 상무는 "지난해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 전문 기업 스킬드 AI에 투자했고 올해는 미국 하드웨어 기업 덱스메이트에 투자했다"며 "현재 논의 중인 투자 건이 한 건 더 있어 한 달 안에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조 역량 강화를 위한 인수합병(M&A)도 물색 중이다.
LG CNS는 로봇 하드웨어 자체 제작에는 나서지 않는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잘 만들어진 외부 하드웨어를 소싱해 학습시키고 산업 특화 RFM과 통합 운영 체계로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자체 RFM 개발에 대해서도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LG CNS 리서치센터에서 자체 RFM 관련 연구는 진행 중이지만 당장 상용 RFM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겠다는 의사결정은 아직 없다는 설명이다. 외부 RFM을 고객 현장에 맞게 포스트 트레이닝하기 위한 역량 확보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데이터 보안 우려에 대해서는 고객 전용 환경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VLM과 VLA 등 로봇 모델은 온프레미스 환경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많고 포스트 트레이닝도 고객 전용 공간에서 고객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데이터 보호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현신균 사장은 "RX의 핵심은 로봇을 단순히 확보하는 데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을 빠르게 현장에 안착시켜 일하게 만들고 변화하는 환경에서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며 "고객 현장에 최적화된 로봇 도입 전략 수립부터 산업 특화 RFM 확보, 로봇 학습과 적용, 운영에 이르는 풀스택 역량을 바탕으로 피지컬 AI 상용화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로봇 중심의 자율 운영 체계를 구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RX 사업의 글로벌 리딩 플레이어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빅테크가 로봇 두뇌와 학습 도구를 두고 격돌하는 가운데 LG CNS는 1000여건의 자동화 구축 경험과 ERP, MES 연계 역량을 무기로 RX 시장의 길목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하드웨어 성능 경쟁에서 운영과 통합 영역으로 옮겨가는 로봇 산업의 무게추를 누가 먼저 자기 쪽으로 끌어오느냐가 향후 2년의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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