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산업기술 인력이 8년 연속 감소에서 작년부터 증가 추세 전환에 성공했다. 사진=HD현대중공업
[THE Biz(더비즈)=최찬우 기자] HD현대가 도크 중심의 물량 싸움을 뒤로하고 설계 데이터와 공정 통제권을 장악하는 지능형 플랫폼기업으로 진화를 통해 조선업의 생존 방정식을 바꾸는 도전에 나섰다.
◆실적으로 증명한 '선택과 집중'
1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은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매출 8조1409억원, 영업이익 1조356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0.2%, 57.8%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률은 2023년 1.33%에서 지난해 13.04%로 2년만에 10배 가까이 폭증했다.
국내 생산 기지를 고부가가치 선종 중심으로 압조직화하고 군산조선소 매각 추진 등 비효율 자산을 정리하며 고정비 변수를 극단적으로 통제했기에 가능한 결과로 해석된다. 도크의 숫자가 아닌 공정의 밀도로 승부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빅테크기업들 역시 물리적 하드웨어를 무한정 확대하기보다 핵심 설계와 엔지니어링 역량을 끌어올려 수익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군산공장 등의 자산 효율화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무 부담을 완화하고 절감된 비용을 미래 기술에 재투자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읽힌다. 도크를 비우는 것은 그 자리를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AI) 브레인으로 채우기 위한 결단인 셈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소프트웨어 정의 조선소(SDS)의 전환이라 분석한다. 하드웨어 제조사가 지능형 제조 플랫폼으로 변모하면서 생산 구조 자체를 혁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HD현대는 배 만드는 회사에서 ‘배 만드는 시스템을 파는 회사’로 정의하며 제조의 경계를 확장해 글로벌 해양 모빌리티시장의 운영체제(OS)를 선점하려는 도전에 박차를 가한다.
HD현대 정기선 회장이 wlsks 25일 베트남 중남부에 위치한 HD현대에코비나를 찾아 현장 설비와 안전 시설물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HD현대
◆'글로벌 해양 파운드리' 구축… K-조선 전략적 전초기지
HD현대의 해외 거점 확장 전략은 반도체 산업의 ‘파운드리’ 모델을 조선업에 이식한 형태다. 국내 조선소는 고도의 설계와 핵심 기자재를 공급하는 브레인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필리핀 수빅(HHIP)과 베트남(HVS)은 이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전문 생산 기지로 활용하는 구조다.
필리핀 수빅 조선소는 중대형 탱커 전진기지로 낙점돼 중국의 저가 공세를 기술적 공정 표준화로 무력화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핵심은 ‘블록 대형화’라는 레고식 공법의 도입이다. 수빅 조선소는 블록당 평균 무게를 높여 탑재 횟수를 획기적으로 줄임으로써 크레인 가동 시간과 도크 점유율을 최적화하고 있다.
이는 동일 선종을 만들 때 중국 조선소가 투입하는 대규모 저임금 노동력의 우위를 공정 효율로 상쇄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베트남 자회사의 건조 능력을 연간 23척까지 대폭 확대하는 것 역시 글로벌 점유율을 지키면서도 마진을 극대화하려는 계산된 행보로 풀이된다.
나아가 HD현대는 인도 등 신규 생산 벨트 후보지를 물색하며 전 지구적인 ‘해양 제조 네트워크’를 설계하고 있다. 이번 거점 재배치는 해외 공장 가동에 그치지 않고 미국 함정 MRO(유지·보수·정비)처럼 보안과 정밀도가 필수적인 글로벌 방산시장까지 포괄하려는 전략이다. 전 세계 바다를 누비는 선박에 HD현대의 기술과 운영 시스템을 심는 것이 이번 글로벌 네트워크 재편의 핵심이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4일 전남 영암군에 위치한 HD현대삼호 조선소를 찾아 주요 생산 설비와 고위험 작업 현장을 점검했다. 사진=HD현대
◆2030 FOS가 바꿀 노동의 미래와 초격차
HD현대가 추진하는 ‘미래 첨단 조선소(FOS)’의 종착역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자율 제조소다. 현재 HD현대삼호 등에서 활약하는 협동 로봇은 하루 생산량이 숙련 작업자(25~30셀)를 크게 앞지르는 45~50셀에 달하며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로봇은 컨디션 변수 없이 일정한 품질과 속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총원가’ 관점에서 보면 숙련공 수십명의 몫을 해내며 조선업의 고질적인 인력난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한다.
2030년 완성될 FOS는 AI가 모든 공정을 예측하고 최적화하는 자율 경영 단계를 지향한다. 설계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로봇의 절단과 용접으로 이어지는 제조 공정은 품질 균일화와 생산량 확대를 동시에 달성하는 핵심이다.
이러한 기술적 초격차는 중국 조선업이 자본력만으로 따라올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될 전망이다. 수십 년간 축적된 건조 노하우를 알고리즘화한 ‘AI 브레인’은 단순 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HD현대는 원가 구조의 근본적인 혁신을 통해 13%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상시화하는 모델을 만들고 있으며 이는 조선업이 더 이상 사양산업이 아닌 기술집약적 첨단 산업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도전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HD한국조선해양이 영업이익률을 13%대까지 끌어올린 저력은 원가 구조의 근본적인 혁신에서 기인한다"며 "국내외 생산 거점을 전략적으로 재배치하고 AI 기반의 자율 제조 공정을 안착시킴으로써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기술적 우위에 기반한 초격차 수익 모델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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