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GTC 2026에서 차세대 GPU 플랫폼 ‘베라 루빈’을 공개하면서 HBM4 공급망을 둘러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도 전면으로 올라왔다. 루빈의 추론 성능을 떠받치는 핵심은 연산 자체보다 메모리 병목을 줄이는 데 있고 그 중심에 HBM4가 자리한다.
17일 엔비디아는 GTC 2026에서 베라 루빈 GPU 실물을 공개하고 베라 CPU, 루빈 GPU, NVLink 6 스위치, ConnectX-9 SuperNIC, 블루필드-4 DPU / STX 등 베라 루빈 구성품 7가지를 공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4는 루빈 GPU에 탑재된다.
루빈 GPU는 HBM4로 전환되며 GPU당 메모리 용량이 288GB로 커지고 대역폭도 블랙웰 대비 약 2.8배 확대됐다. 블랙웰 대비해선 약 1.6배 늘어난 3360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자랑한다. 엔비디아가 ‘추론 중심’으로 설계 초점을 옮기면서 메모리 용량·대역폭 확보가 곧 플랫폼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수율과 물량을 기반으로 공급 안정성에서 우위를 점해왔다는 평가가 나오는 반면 삼성전자는 HBM4 양산·출하를 앞세운 속도전과 차세대 제품 샘플링을 통해 존재감을 키우는 흐름이다.
루빈 플랫폼, 한국 메모리 ‘승부처’로
젠슨 황 CEO가 베라 루빈 플랫폼 스팩에 대해 강조 중이다. 사진=엔비디아 GTC 2026 캡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루빈 GPU에 들어가는 HBM4 지분을 차지, 길었던 엔비디아 베라 루빈 탑재 전쟁은 한국 기업들의 승리로 끝나는 분위기다.
메모리 대역폭은 블랙웰의 약 2.8배 수준인 22TB/s를 자랑하며 단일 GPU 기준 연산 성능은 FP4 추론에서 블랙웰 대비 2.5배급을 보인다. 전작 블랙웰과 비교하면 TSMC 4나노를 사용했던 공정은 3나노로, 약 2000억개 수준이었던 트랜지스터는 3360억개로 1.6배 상승했다.
메모리도 192GB HBM3E에서 288GB HBM4로 용량이 1.5배 커졌으며 메모리 대역폭이 8TB/s 수준에서 22TB/s로 약 2.75~2.8배 커졌다.
엔비디아 블랙웰과 루빈 GPU 비교. 사진=챗GPT 제작
NVL72 랙 기준으로도 블랙웰 FP4 추론 성능은 약 1.1 ExaFLOPS이지만 루빈 NVL72은 3.6 ExaFLOPS에 달한다.
총 HBM 용량은 블랙웰 때 ~13.8TB(192GB × 72)였으나 루빈 때는 ~20.7TB(288GB × 72)로 크게 올라간다. 메모리 대역폭도 블랙웰 때는 57TB/s급에서 루빈 NVL72에서는 ~1.6PB/s급으로 단숨에 페타바이트급으로 올라간다. 설계 포커스가 학습·범용에서 추론·에이전트 중심으로 옮겨가며 HBM4 288GB·22TB/s로 메모리 성능 저하, 제한까지 동시에 뚫어버린 세대 업그레이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루빈 GPU는 7개의 칩과 5개의 랙 스케일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세대적 도약”이라며 “NVIDIA는 루빈을 통해 AI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토큰 생성 비용을 기존 플랫폼 대비 약 10분의 1 수준으로 대폭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AI 수요가 폭발하는 시점에 맞춘 타이밍까지 완벽한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학습이 아니라 추론이 전쟁의 중심”이라고 못 박은 뒤 “완전한 슈퍼컴퓨터 플랫폼이자 그 정중앙에 루빈이 있을 것”이라며 “루빈은 블랙웰 대비 토큰당 비용은 10분의 1 수준이면서도 와트당 추론 처리량은 최대 10배까지 높다”고 설명했다.
NVL72 랙 기준 블랙웰과 루빈 GPU 비교. 사진=챗GPT 제작
베라 CPU도 메인 중 하나다. Armv9.2 아키텍처를 중심으로 한 88개 올림푸스 코어에 최대 1.5TB LPDDR5X 메모리를 달았다. 72코어·1TB 수준이었던 그레이스 CPU에서 코어는 22% 늘고, 메모리는 50% 향상된 수준이다. 특히 메타 데이터센터에는 베라 CPU가 이미 배포 완료된 상태로 GPU 컴퓨팅을 넘어선 엔비디아의 반도체 사업 야망을 입증하는 중요한 사례다.
이 밖에도 ▲랙 내부 초고속 패브릭을 담당하는 NVLink 6 스위치 ▲초저지연 추론 전용 칩인 그로크 3 LPU ▲스케일아웃 네트워킹을 담당하는 ConnectX-9 SuperNIC ▲KV 캐시를 공유하고 여러 사용자의 추론 요청이 같은 컨텍스트를 공유할 때 중복 연산을 제거해 효율을 극적으로 높이는 스토리지·보안 인프라 블루필드-4 DPU / STX ▲대규모 추론 클러스터의 전력·공간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기술인 이더넷 패브릭+실리콘 포토닉스 스펙트럼-6 스위치가 베라 루빈을 담당하는 7개의 칩이다.
젠슨 황 CEO는 “기본 베라 루빈 플랫폼 대비 상당한 성능 향상을 제공하는 루빈 울트라가 2027년 하반기에 나올 것이고 파인만은 2028년에 등장한다”며 “파인만은 완전 자율 AI 에이전트의 추론 및 장기 기억 요구 사항을 충족하도록 설계됐고 TSMC의 A16 1.6nm 공정 기술을 활용하고 전기적 상호 연결 방식에 비해 대역폭이 10배 향상될 잠재력을 지닐 것”이라고 말했다.
또 추론 과정을 사전 채우기와 디코딩 두 단계로 나누고 엔비디아의 베라 루빈 칩이 사전 채우기 작업을 처리하며 그로크(Groq) 기반 칩이 실제 답을 출력하는 디코딩 단계를 담당하는 시스템을 제시했다. 엔비디아의 다음 행보가 피지컬 AI, 엣지 AI, 우주, 로보틱스 등 추론 분야에서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HBM4 보급 전쟁 … ‘하이닉스 물량 우위’ vs ‘삼성 속도전’
SK하이닉스 HBM4.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당초 베라 루빈에 탑재되는 HBM4 전쟁은 SK하이닉스가 HBM3E에 이어 앞서나가는 것으로 여겨진 바 있다. 물량에서도, HBM의 질에서도 엔비디아를 꾸준히 만족시켜 왔던 것은 SK하이닉스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번 루빈 GPU에 탑재되는 HBM4의 약 2/3 수준을 공급한다고 알려져 있다.
협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당장 GTC 2026 현장에서도 도승용 SK하이닉스 부사장(DT 담당)이 ‘Building the Future of Manufacturing(제조업의 미래를 설계하다)’라는 주제로 진행될 세션 발표에서 공동 발표자로 17일 발표에 나섰다. 문동욱 팀장(AI Platform SW)은 ‘How HBM4 Unlocks Efficient LLM Serving at Scale(HBM4를 활용한 대규모 LLM 서빙 효율화 방안)’이란 주제로 메모리 대역폭과 용량을 LLM 추론의 핵심 제약 사항으로 짚고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HBM4를 활용한 해결책을 이야기할 계획이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GTC 2026 현장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좌측부터 황상준 메모리개발담당 부사장, 엔비디아 젠슨 황 CEO, 한진만 파운드리 사업부장 사장. 사진=삼성전자
다만 삼성전자 DS 동탄 연구소의 속도전도 매섭다. 지난 2월 12일 세계 최초 HBM4 양산·출하를 선언한 데 이어 이번 GTC 2026 현장에 HBM4E 샘플까지 공개에 나섰다. 이어 삼성 파운드리가 엔비디아의 그로크 3 LPU를 생산 중이란 사실이 젠슨 황 CEO 입에서 직접 언급되며 AI 분야에서의 협력은 훨씬 굳건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HBM4 양산을 통해 축적한 1c D램 공정 기반의 기술 경쟁력과 삼성 파운드리 4나노 베이스 다이 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차세대 HBM4E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어 삼성전자 DS는 영상을 통해 TCB(Thermal Compression Bonding) 대비 열 저항을 20% 이상 개선하고 16단 이상 고적층을 지원하는 HCB(Hybrid Copper Bonding) 기술을 공개하며 차세대 HBM을 위한 삼성전자의 패키징 기술 경쟁력을 강조했다.
GTC 2026 현장에는 황상준 메모리개발 담당 부사장, 한진만 파운드리 사업부장, 송용호 AI센터장 등이 방문해 AI 인프라 혁신을 이끌 엔비디아 차세대 시스템의 중요성과 이를 지원하는 삼성의 메모리 토털 솔루션 비전을 함께 축하했다.
삼성전자는 16일부터 19일까지(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리는 엔비디아 GTC에 참가해 차세대 HBM4E 기술력과 베라 루빈 플랫폼을 구현하는 메모리 토털 솔루션을 유일하게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을 앞세워 글로벌 AI리더십을 한층 강화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삼성전자 HBM4E 제품 전시 사진. 사진=연합뉴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도 3~4월 중 HBM4를 공식 출하할 예정이지만 이에 대한 소문이나 자료 등을 선포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대신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현장을 방문해 1달 만에 젠슨 황과 다시 만나는 등 우정을 다졌다. 젠슨 황 CEO는 베라 루빈 전시 제품에 “JENSEN ♡ SK Hynix”라는 사인을 남기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GTC에서 'Spotlight on AI Memory'를 주제로 전시 공간을 구성했다. 전시장 입구에 위치한 엔비디아 협업 존에서는 HBM4·HBM3E·SOCAMM2 등 SK하이닉스 메모리 제품이 엔비디아 AI 플랫폼에 실제 적용된 사례를 모형과 실물 형태로 구현했다.
GTC 2026 SK하이닉스 부스에 전시된 엔비디아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 엔비디아 젠슨 황 CEO의 사인이 남아 있다. 사진=SK하이닉스
최 회장은 “우리가 만드는 메모리가 단순 부품을 넘어 고객 시스템과 서비스 기획 단계부터 함께 논의되는 수준까지 왔다”며 “AI 인프라 발전을 돕는 파트너라는 관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고 기술 혁신을 지속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엔비디아는 우리의 큰 고객 중 하나”라며 TSMC에 대해서는 “매우 좋은 파트너이고 TSMC 없이 베라 루빈 등 솔루션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회장은 GTC 2026 행사 전반에 걸쳐 AI 생태계 주요 기업들의 기술 성과를 둘러보고 SK하이닉스의 글로벌 파트너십 확장 기회를 모색했다. 엔비디아 전시 부스도 방문해 루빈, 루빈 울트라로 이어지는 차세대 GPU 라인업과 기술 로드맵, 가속기 성능 시연, 자율주행 및 로보틱스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섹션을 두루 살펴봤다.
이 밖에도 AI 팩토리의 전력 및 발열 관련 설루션을 구축하는 폭스콘 등 AI 인프라 생태계의 핵심 파트너사 부스를 방문했다.
한편 재계 인사들도 이번 GTC 2026 현장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허태수 GS 회장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사업이 마땅하게 없는 GS그룹이지만 한국경제인협회에서 AI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허 회장은 이번 미국 출장 중 AI 기술과 관련 산업 적용 사례 등을 직접 보기 위해 GTC 2026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내 AX 등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거론된다.
LG디스플레이도 처음으로 GTC를 찾아 가상설계(VD)와 AI 기반 신제품 로드맵을 소개하고 신성장 동력을 찾을 예정이다. LG디스플레이는 엔비디아의 물리 기반 AI 플랫폼 ‘피직스네모’를 활용한 디지털 트윈 패널 툴(DPS)을 개발했는데, 이번 GTC에서 성과를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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