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탐구 01. 사진가 안준 개인전 ‘Ephemeral Ephemeral’
The Premise No27, 2025 / 사진가 안준
이끼 덮인 구릉 사이로 뾰족한 빙산 하나가 솟아 있다. 여름의 그린란드. 가로 1.5m가 넘는 대형 프린트 앞에 서면 기이한 감각이 든다. 거친 입자와 강한 대비 탓에 이 풍경이 실제 촬영된 사진인지, 인공지능(AI)이 생성한 이미지인지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안준은 사진계에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고층 건물 난간에 걸터앉은 자신을 찍은 ‘Self-Portrait’ 연작으로 이름을 알렸고, 2022년부터는 AI 생성 이미지를 활용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카메라 앞에 자신의 몸을 던지거나 AI를 매개로 이미지를 만들어온 그가 이번에는 연출 대신 프레이밍에 집중한 풍경 사진을 선보였다.
지난 4월 3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삼청동 도로시살롱에서 열렸던 사진작가 안준의 개인전 ‘Ephemeral Ephemeral’에서 ‘Ephemeral(에페메럴)’은 ‘한시적인, 덧없는’이라는 뜻이다. 안준은 지난여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배를 타고 북상해 그린란드 해안에 닿은 뒤 아이슬란드를 돌아오는 북극 항로를 3주간 따라갔다. 그중 그린란드에 머문 일주일 동안 촬영한 풍경이 전시를 이룬다.
The Premise No53, 2025 / 사진가 안준
작가가 그린란드에 주목한 이유는 단지 장엄한 풍광 때문만은 아니다. 북극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으로 꼽힌다. 최근 연구들은 북극권이 지구 평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온난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7년 북서항로의 해빙이 크게 줄어들며 항로 접근 가능성이 높아진 일은 이 지역 변화의 상징적 장면으로 자주 거론된다. 얼음의 감소는 단순한 자연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개발과 자원, 지정학의 문제가 뒤따른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이다. 섬 면적 대부분이 얼음으로 덮여 있지만, 그 아래에는 석유와 가스, 희토류 등 각종 자원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거론돼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전후로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히며 이 지역은 국제정치의 상징적 공간으로도 떠올랐다. 최근에는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확장에 따른 냉각 수요, 북극 항로와 자원 접근성 문제까지 맞물리며 북극권의 전략적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얼음이 사람의 접근을 막아왔지만, 바로 그 얼음이 녹으면서 개발 가능성은 커지는 역설이다.
The Premise No17, 2025 / 사진가 안준
Greenlanad No05, 2025 / 사진가 안준
이 복합적인 맥락 속에서 전시는 빙산과 빙하를 다룬 ‘The Premise’와 생활 풍경을 담은 ‘Greenland’ 두 연작으로 구성됐다. 알록달록한 목조 주택이 초록 구릉 위에 들어선 마을 사진은 관광 엽서처럼 평온해 보인다. 그러나 붉은 판벽 앞에 놓인 순록의 잘린 머리는 이 땅이 오랜 시간 수렵과 어업에 기대 버텨온 삶의 현장이었음을 환기한다.
The Premise-Grids for dorossy salon(2026)와 gfdhgh(2023) / 사진가 안준
전시장 가장 큰 벽면을 차지한 것은 벽면 전용 프린터 ‘월펜’을 이용해 직접 인쇄한 가로 4.5m 규모의 빙산 이미지였다. 이 작업은 전시가 끝난 뒤 페인트로 덮여 사라졌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기 위해 존재해온 사진 매체의 속성을 떠올리면, 이 선택은 역설적으로 읽힌다. 기록을 남기는 대신 기록의 소멸까지 작업의 일부로 끌어들인 셈이다.
gfdhgh, 2023,AI생성이미지 / 사진가 안준
그 왼편에는 벚꽃 아래 선 소녀의 초상이 작게 걸렸다. 이 이미지는 AI가 생성한 것이다. 작가 설명에 따르면 전시 제목 ‘Ephemeral’은 이미지 생성 플랫폼 미드저니가 자체 기준에 따라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삭제한 이미지가 저장되는 폴더명에서 가져왔다. 여기에 또 다른 역사적 층위를 겹친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덴마크 당국이 이누이트 여성과 소녀들에게 동의 없이 자궁 내 장치(IUD)를 삽입한 이른바 ‘스피랄캄파넨’ 사건이다. 작가는 기술 시스템의 검열과 국가 시스템의 통제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특정 존재를 보이지 않는 자리로 밀어낸다는 점에 주목한다.
빙산이 녹는 일이 그린란드 주민에게 기회가 될지, 또 다른 지배의 시작이 될지는 여전히 열려 있다. 전시는 그 불확실성을 섣불리 결론내리지 않는다. 한시적인 덧없음을 마주할 때 드러나는 것은 풍경을 둘러싼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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